제주도 기행
#하멜표류기 #하멜보고서 #하멜 #효종
포리시스
2021. 5. 11. 23:45
산방산 남쪽 해안가에 커다란 범선모양의 <하멜상선전시관>이 있다. 2층 구조의 전시관 내부에 예쁜 범선과 우리의 판옥선. 거북선의 모형이 있다. 하멜에 대한 기록을 옮겨 보았다. 하멜은 1630년 네덜란드 호르쿰시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 불고 있었던 해양 열풍에 휩쓸려 네덜란드를 떠나 1651년 7월 4일 바타비아(자카르타)에 있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선박의 포수로 입사했다.
하멜은 병졸에서 조수를 거쳐 곧바로 서기로 승진됐고 1653년 스페르웨르호를 타고 대만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도중 일행 36명과 함께 제주도에 표착, 13년간 조선에서 생활하다 조국으로 돌아갔으며 경위를 보고하고자 쓴 <하멜일지>는 조선의 내부를 세계에 최초로 알린 것이다.
1651년 동인도 회사에서 소속 선박의 포수로 일하였다. <동인도 회사>는 지리상의 발견에 이어 해외진출의 제1선에서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등을 무대로 국가 세력을 배경으로 활약하여 17세기에 이르러 아른 유럽 국가들의 동인도 회사를 앞질러 가장 융성하였다.
당시 네덜란드 상인들은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동방의 생산물을 입수하였으나 직접 동양의 여러 지역과 거래를 하기 위하여 1594년 암스테르담에서 첫 번재 상선대가 파견되었다.
그 후 같은 종류의 여러 회사가 네덜란드 각지에 설립되었으나 1602년에 이들 회사를 모두 통합하는 합동 동인도 회사, 즉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결성하여 정부로부터 동양무역의 독점권이 부여된 것 외에도 조약 체결, 군대 편성 등의 권한이 부여되어 국가 권력의 대행기관이 되었으며 1800년에 이르러 해산되고 식만지는 본국정부에 인계되었다.
1653년 바타비아(자카르타)에서 출항하는 스페르 웨르호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중 일행 36명과 함께 8월 21일 제주도에 표류하였다. 대정현 해안에 표착한 일행은 표류물을 봉인하고 말을 타고 이동하였다. '대정현'이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1653년 8월 22일 이른 새벽 다시 여행을 시작하여 명월진, 애월진을 지나 제주목에 도착하였다. 도착 후 제주목사 이원진에게 조사를 받았다. 1654년 5월말 서울로 이송하라는 왕의 명령서가 도착하였다.
1654년 6월 하멜 일행은 당시 조선의 국왕이었던 효종을 알현하기 위해 서울(한양)로 이송된다. 일행은 네 척의 배에 나뉘어 태워졌고 두 다리와 한쪽 팔은 배에 묶여 갔다고 한다.
이는 하멜 일행이 배를 탈취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는데, 훗날 하멜은 보고서에서 실제로 묶이지만 않았더라면 그러했을 것이라고 서술하였다.
1654년 6월 26일 하멜 일행은 서울(한양)에 도착해 조선의 국왕 효종을 알현하게 된다. 이들은 일본으로 보내줄것을 간청했지만 효종은 당시 추진 중이던 북벌계획에 대한 보안 문제와 일본에서 불고 있던 기독교도들에 대한 탄압을 염려해
'외국인을 국외로 보내는 것은 이 나라의 관습이 아니므로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아야 하며 대신 너희들을 부양해 주겠다.'라고 답한다. 이후 훈련도감에 배치되어 호패와 무기를 지급받고 군인으로 생활하였다.
1656년 청나라 사신에게 노출이 될까 염려한 조정은 하멜 일행을 전라도 병영으로 옮겨 생활하게 한다. 여러 수령을 거치면서 초반 관청의 잡풀을 제거하는 등 노역에 시달리지만 이들은 이곳에서 7년간 생활하며 점차 조선에서의 생활에 적응해 나름대로 안정을 이룬다.
1663년 하멜 일행은 여수와 순천 그리고 남원으로 분산 수용된다. 안정됐던 병영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여수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 하멜 일행은 이전보다 빠르게 현지 생활에 적응하게 된다. 그리고 이곳 여수의 새 생활은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하멜 일행은 철저한 준비 끝에
1666년 9월 3일 표류 13년 만인 현종 7년 동료 8명과 함께 배를 구해 간신히 조선을 탈출하게 된다.
그리고 나가사키 항구에 상륙하여 관리의 조사를 받았다. 1667년 하멜 일행은 일본을 떠나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나가사키를 출발하여 바타비아(자카르타)에 도착하였다.
1668년 하멜보고서로 알려진 기행문을 출간하였다. 기행문의 내용이다.
<조선의 정치> 정치체제 면에서 조선은 국왕제이며, 조선 국왕의 권위는 그가 비록 청국에 신하의 예를 갖추긴 하지만 조선에서는 절대적이라고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