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기행
#경기 연천 #호로고루성 #재미산 #임진강
포리시스
2023. 3. 9. 15:40
경기 연천의 <호로고루성>은 사적 제467호이다. <연천 당포성>처럼 임진강변의 자연 수직 절벽을 성벽으로 하고 그 위 평지의 동쪽에 성벽을 쌓아 만들어진 성이다.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유명한데, 성벽에 올라 바라보는 주변의 풍경이 참 아름답다. 성벽의 안내문과 전윤호 시인님의 시를 함께 올려본다.
[연천 호로고루 동벽]
호로고루 동벽은 평지로 이어져 적의 침입이 쉬운 성의 동쪽 부분을 방어하는 성벽이다. 성벽은 높이가 10m이고 아랫부분의 폭이 40m, 길이가 90m에 달할 정도여서 마을 주민들이 성이 아니고 <재미산>이라고 부를 정도로 웅장하다.
동벽을 만드는데 들어간 흙과 돌의 양이 대략 15,996㎡에 달한다고 하니 엄청난 토목 공사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호로고루 동벽은 고구려에 의해 처음 만들어져 사용되었지만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고 이어 벌어진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승리하자 신라가 점령하여 사용하였다.
신라군이 점령할 당시 호로고루 동벽은 오랜 전쟁으로 말미암아 성벽의 곳곳이 무너져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신라군은 고구려성벽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둔 상태에서 성벽을 덧붙여 쌓는 방식으로 부수하였는데, 고구려성벽은 신라성벽에 가려져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의 포대가 설치되면서 성벽의 윗부분과 남쪽 부분이 크게 훼손되었고 고구려 유적으로 알려지기 이전 마을 주민이 뱀을 잡기 위해 중장비로 남쪽 치의 상부를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고구려 성벽 일부가 외부로 노출되게 되었다.
소중한 문화유산이 후대의 인위적인 원인으로 훼손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호로고루 동벽은 한 곳에서 고구려와 신라의 성벽을 모두 관찰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장소가 되었다.
[호로고루 동벽 남쪽 치]
치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성벽 앞으로 내어 쌓은 구조를 말하는데, 호로고루 동벽에는 남쪽과 북쪽에 두 개의 치가 있다.
남쪽 치는 성벽의 상부가 훼손되면서 내부의 모습이 겉으로 들어나 성벽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다.
치의 제일 안쪽 가장 높은 성벽은 고구려의 체성벽으로 바깥쪽에 기대어 쌓은 보축성벽으로 보호되고 있다.
고구려 보축성벽에서 바깥쪽으로 약간의 간격을 두고 편마암으로 쌓은 성벽이 보이는데 이는 후대의 신라가 쌓은 성벽이다.
이 성벽 앞으로 네모나게 바깥쪽으로 내어 쌓은 성벽이 있다. 이것이 동벽의 남쪽치다. 치는 다시 현무암의 기초를 가진 반원형의 성벽으로 다시 둘러져 있는데, 치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쌓은 것으로 보인다.
고루려 성벽은 95%이상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무암으로 쌓은데 반해 신라 성벽은 주변에서 구하기 어려운 편마암이 사용되었다.
현무암은 돌이 질기고 깨기가 힘들어 다루기가 쉽지 않은데, 오랫동안 임진강 일대를 지배하며 현무암을 다루는 기술을 터득한 고구려의 석공들에 비해 새롭게 임진강 지역을 차지한 신라의 석공들은 그 기술을 단기간에 익힐 수 가 없어서 다루는데 익숙한 편마암을 멀리서 가져와 성벽을 쌓는 수고를 했다고 한다.
[호로고루]
이 절벽에 성을 쌓고
천 리 강물 내려다보면
네가 보일까
나라 잃은 설움 안고
황포 배들이 머문 포구
당에서 말갈에서
기병들이 몰려오는데
깃발을 올리고 북을 치면
네가 들을까
머물 곳 없는 슬픔이 현무암을 쌓고
스스로 문을 닫으니
백만 대군이 와도 열 수 없으리
임진강이 마르고
좌상바위가 평지가 된다 해도
내 마음은 무너지지 않으니
그대여 어서 돌아와
회군의 나팔을 불어주게
호로고루 호로고루
연천벌을 지나서 고구려까지
푸른 바람이 부는구나
- 시인 전윤호 작 <봄날의 서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