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기행
#경기 평택 #평택농악 #유네스코 세계유산 #국가무형문화재
포리시스
2023. 10. 15. 22:19
23. 9. 23. 양주별산대공연장에서 특별 공연되었던 평택농악의 공연 내용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이란 커다란 글씨가 새겨진 깃발을 내세워 사물놀이를 펼치던 모습들을 많이 보아왔을 거다.
농악은 농번기에 육신의 노동으로 인한 피로를 풀기 위함이었을 거고, 풍년을 기원하는 두레의 희망이기도 하였을거고, 마을 사람들의 화합을 위함이였을 거다.
이번 평택농악의 공연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우리의 문화라는 아주 기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류의 문화 가운데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존하여야 하는 명실상부한 우리의 문화이다.
앞서 기록했던 <양주별산대>도 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좋은 우리의 문화재들이 세계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평택농악>에 대한 공연 내용을 기록해 본다.
아래의 내용은 <평택농악보존회>에서 옮겨 왔다.
[평택농악]
평택농악의 발상지인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평궁리는 예부터 지신밟기, 두레굿 등 농악이 발달했습니다.
이러한 "평택농악"이 전국무대에 선을 보인 것은 한국전쟁 직후 이승만 정부시절 대통령 생일을 기념해 열리는 전국 농악경연대회였습니다.
평택농악의 초대 인간 문화재였던 최은창 명인은 당시 평택군의 요청으로 농악패를 구성해
"평택농악"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광화문인 중앙청 앞에서 열린 이 대회에 참가하여 1958년과 1959년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평택농악은 두레농악과 걸립농악을 가장 잘 계승한 웃다리 지역을 대표하는 농악으로 두레농악에서 하던 지신밟기,
두레굿과 더불어 난장굿, 절걸립, 촌걸립 등 걸립패에서 하던 전문연희적 요소를 함께 갖고 있습니다.
[#인간문화재] - 평택농악보조회이 인간문화재
[#최은창]
지금의 평택농악이 있기까지 큰 업적을 남긴 최은창 선생은 1914년 4월 18일 평택에서 태어나 마을 두레패 상쇠에게서 꽝과리를 배웠고, 16세 때는 두레패의 상쇠를 쳤습니다.
이후 전문연희패에서 활동하였으며, 직접 절걸립 행중을 꾸려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평택농악을 결성하여 현재 연희하는 평택농악의 원형을 완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1985년 평택농악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평택농악 인간문화재가 되었습니다.
이후 평택농악을 알리고 후진양성에 힘쓰다 2002년 작고하였습니다.
[#이돌천]
최은창 선생과 함께 평택농악을 이끌어 온 이돌천 선생은 1919년 5월 26일 천안에서 태어나 12세 때부터 무동으로 농악을 시작하였습니다.
18세 때에는 남운룡 밑에서 법고를 배워 남운룡 농악단의 법고수로 활동하였습니다.
1980년 평택농악을 공식 결성할 때 합류하여 1985년 평택농악 인간문화재가 되었으며 평택농악을 알리고 후진 양성에 힘쓰다 1994년에 작고하였습니다.
[#김용래]
평택농악의 현 인간문화재인 김용래 선생은 1939년 4월 19일 천안에서 태어나 13세 때 난장패에 사미로 들어가 처음으로 농악을 시작하였습니다.
18세 때 상모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스승이 바로 평택농악의 명일 이돌천 선생이었습니다.
1987년 평택농악 전수교육조교(현 전승교육사)로 지정받았으며, 2000년 평택농악의 인간문화재로 인정받아 현재까지 평택농악의 보존과 전승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 평택농악에서 연희하고 있는 무동놀이의 체계를 확립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사라진 무동놀이 기술 복원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황홍엽]
1937년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 평택으로 이주하였습니다.
평택시 포승읍 홍원리의 마을 두레패에서 농악을 시작하였으며, 19세 때 마을의 할아버지로부터 호적을 배웠습니다.
1982년 평택농악에 합류하여 최은창의 호적을 이어받았으며 2002년 전수교육조교(현 전승교육사)로 지정받았고, 2021년 평택농악 인간문화재(명예보유자)로 인정받아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