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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족보

서문(1)

by 포리시스 2010. 7. 14.

   호적법이 많이 바뀐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 페이지를 만든 것은 뭐 씨족의 자랑이니 가문의 영광이니 이 것보다 각자 우리의 조상을 한번쯤 기억해 보자는 의미와 최소한의 촌수. 친족 등을 생각해 보고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사이에 모두 한 가족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 입니다. 보시는 분들의 오해가 없으시기 바라고요.

    요즘 아이들에게 본관 등을 물어보면 잘 알고 있지 못해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그 만큼 어른들의 무관심의 결과라 보여지더라구요. 또 여자는 족보에 없다고 하나 저희집 족보를 살펴보니 이름이 올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시집을 오신 분들은 배우자 옆에 본관.성씨가 기록이 되어 있더군요.

   아무튼 족보를 따지다 보면 상호 한민족임에는 틀림이 없을 겁니다. ㅎㅎ

   아래 서문을 지으신 분은 저의 백부님 이십니다. 

 

 

序 文

 

   족(族)은 동족지친(同族之親)을 말함이요 보(譜)는 합록지적(合錄之籍)을 말함이니 즉(卽) 족보(族譜)라함은 동족지족(同族之族)이 선조(先祖)의 소목(昭穆)과 덕업(德業)을 승계(承繼)하고 종족간(宗族間)의 돈목(敦睦)의 의리(義理)를 소술(紹述)한 문헌(文獻)을 일으키는 것이다. 만고(萬苦)에 보(譜)가 없다면 어찌 분산(分散)된 지파(支派)를 알 것이며, 근원(根源)을 같이하는 종족(宗族)이라고 할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선현들께서도 사인불망본(使人不忘本)이니 명보세족(明譜世族)이라 하였으니 족보(族譜)의 소중(所重)함을 가히 알 수 있다.

 

   사회발전(社會發展)에 따라 수보(修譜)하는 기간(期間)이 옛날과 달라지는 것이 순리(順理)다. 옛날에는 한 씨족(氏族)이 지방(地方)에 정착(定着)하면 안토중천(安土重遷)하여 수세기(數世紀) 동안에 번행창대(蕃洐昌大)한 종족(宗族)이 일가(一家)가 되어 장구(長久)한 세월(歲月)이 지나더라도 탈계루적(脫系漏籍)될 폐단(弊端)이 없으므로 삼십년(三十年)을 일세(一世)로 수보(修譜)함도 가하다고 할 수 있으나 금일(今日)에 와서는 산업(産業)의 발달(發達)로 윤택(潤澤)한 생계(生計)를 영위(營爲)하고자 향리(鄕里)를 떠나 전국각지(全國各地)에 파월(播越)한 가족(家族)은 부지기수(不知其數)이며 해외(海外)까지 진출중(進出中)에 있으니 종조목족(宗祖睦族)의 도(道)를 돈연(頓然)히 잊어버리게 되고 나아가서는 금후세보(今後世譜)에서 탈락(脫落)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것이다.

 

   이를 우려(憂慮)한 나머지에 여러 족인(族人)들이 목종합족(牧宗合族)에 급급(汲汲)하여 삼십년일보(三十年一譜)에 구애(拘碍)하지 말고 수시(隨時)로 상황(狀況)을 참작(參酌)하여 수보(修譜)하자고 한 것이니 가락천구백삼십삼년(駕洛一九三三年(西紀 一九七四年))에 가락중앙종친회(駕洛中央宗親會)에서 김해김씨선원대동보(金海金氏璿源大同譜)를 수보(修譜)하였으나 권질수(卷帙數)가 방대(尨大)할 뿐만 아니라 가격관계(價格關係)로 매가호(每家戶)마다 보서(譜書)를 봉장(奉藏)하지 못하였고 우금십여년(于今十餘年)에 자손(子孫)이 번행(繁洐)하여 전술(前述)한바와 같이 원지(遠地)로 병산(迸散)하여 종족(宗族)을 수습(收拾)하기 지난(至難)한 바이다.

 

   우리 종문(宗門)에서는 안경공파영순(安敬公派永貞) 손(孫)인 승지공(承旨公) 휘(諱 ) 세준파(世準派)(子 福壽 義壽) 계보(系譜)만 수보(修譜)하였으니 편책(編冊)이 간약(簡約)하여 물력(物力)에 부담(負擔)이 적고 봉안(奉安)과 고람(考覽)하기에 편리(便利)하여 누구나 봉람(奉覽)하면 비록 이동타향(異同他鄕)에서라도 일가(一家)를 對한듯이하여 행열(行列)과 생년(生年)으로써 친족간(親族間)의 형제숙질(兄弟叔姪)을 판별(判別)하게 되며 후일(後日) 상봉시(相逢時)라도 구면(舊面)과 같이 인정(仁情)이 관흡(款洽)하여 돈종목종(敦宗睦宗)의 도(道)를 다 할 것이니 금차수보(今次修譜)의 대의(大義)이다. 願컨대 첨종(僉宗)들의 관념(管念)을 바라며 후일(後日)의 속편(續編)있기를 기대(期待)하는 바이다.

 

駕洛一九五二年(西紀 一九九三年) 癸酉 五月 日

 

駕洛太祖王 七十二世孫 鍾萬謹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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