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성당]
<백령도는 천주교 선교사의 해로 입국 거점>

한국천주교회의 초기에 몇몇 선교사들이 중국의 변문과 의주의 관문을 통하여 조선에 입국하였다.

파리외방선교회 소속 앵베르 주교, 모방, 샤스탕 신부가 1839년에 잡혀 문초받는 과정에서 선교사들이 의주를 통하는 육로로 입국한 사실이 드러났고, 그 후 정부의 경계강화로 인하여 육로입국은 매우 위험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이미 입국하여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페렐을 주교는 1846년에 김대건 신부에게 해로를 통한 밀입국로를 개척하라고 지시했다.

김대건 신부는 백령도를 거점으로 하는 밀입국로를 페레을 주교에게 건의했다.

백령도는 중국 산동반도와 가깝고 매년 봄에는 그 근해 어장에 중국 어선들이 모여드는 것에 착안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중국 어선으로 백령도 근해에 도착하고 이곳에서 조선 교우들의 도움을 받아 입국하는 방안이 채택되었다.

1846년 5월 14일 김대건 신부는 서울 마포를 출발, 백령도에 도착하여 앞으로는 선교사들이 백령도를 통한 밀입국로를 이용하라는 페레을 주교의 서한을 중국선원에게 전달한 후 순위도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의 착안과 개척의 덕으로 백령도는 1846년부터 1880년까지 프랑스 선교사 17명의 해로 입국거점이 되었다.

그리고 그중 6명은 김대건 신부와 함께 1984년 서울 여의도에서 요한 바오로2세 교황님이 집전한 한국천주교 창립 200주년 기념 미사중에 성인품에 올랐다. (안내문)

1997년 9월 20일, 천주교 인천교구 백령도 성당

백령도를 거쳐 입국한 선교사들의 이름과 입국년도는 다음과 같다.

1) 메스트르 신부, 1852
2) 베르뇌 성인주교, 1856

3) 프티니콜라 신부, 1856
4) 푸르티에 신부, 1856

5) 랑드르 신부, 1861
6) 조안노 신부, 1861

7) 리델 신부, 1861
8) 칼레 신부, 1861

9) 오메트로 성인신부, 1863
10) 위앵 성인신부, 1865

11) 볼리외 성인신부, 1865
12) 도리 성인신부, 1865

13) 브르트니에르 성인신부, 1865
14) 블랑 신부, 1876

15) 드게트 신부, 1876
16) 뮈델 주교, 1880

17) 리우빌 신부, 1880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에 있는 인천교구 소속의 가톨릭 천주교회이다.

백령도는 섬이라는 특수성과 강한 무속 신앙 때문에 천주교가 오랫동안 전파되지 못했다.

1947년 장연 본당의 이호연, 정만원 가족 등이 백령도에 정착하면서 백령 공소가 설립되었다.

홍인강, 장인균 등이 합세해 공과책으로 백령도 첫 종교적 모임인 첨례를 했다.

이후 소속 본당의 잦은 변경으로 전교 활동에 어려움이 있던 중 1959년 메리놀 외방전교회 모펫트(부영발) 신부가 백령도에 파견되고, 그해 백령 본당을 설정했다.

초대 주임 신부로 모멧트 신부가 부임했다. 1961년 3월 본당을 시공해 12월 완공하였고, 1964년에는 본당 사제관을 축성했다.

1974년 2월 사목권이 메리놀 외방 전교회에서 인천교구로 이관되었으며, 수녀회가 여러 번 교체되었다가 1985년 3월부터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분원 수녀 4명이 파견되었다.

<백령도>는 우리나라 최북단의 섬으로, 인천에서 서북쪽으로 191.4km 떨어져 있다.

원래 이름은 <곡도>였으나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나는 모습처럼 생겼다하여 백령도라 불렀다. (인천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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