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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행

경기 수원(1) - 화성

by 포리시스 2010. 4. 18.

   수원 화성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사적 제3호 이다.

 

   축성 당시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수원 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가 선왕 영조에 의해 뒤주 속에서 불운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풍수지리학상 명당 자리인 화산으로 이전하고 그 부근 주민들을 팔달산 아래 현재 수원으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화성의 지도]

 

   또한 화성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그 필요를 절감한 수도 서울의 남쪽 방어기지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당쟁이 극심했던 정세를 쇄신하고 강력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는 정조 자신의 원대한 구상을 위한 새로운 개념의 계획적 신도시로 건설된 것이기도 하다.

 

[화홍문]

 

   북수문은 편액에 화홍문[사인(士人) 유한지(兪漢芝)가 썼다]이라 되어 있다. 방화수류정의 서쪽 44보 되는 곳에 있다. 화성의 백미라고도 한다.

 

 

   광교(光敎) 언덕을 대천(大川)이 가로로 자르며 흐르고 있어, 여름 장마 때마다 범람하는 환난이 있었다. 그래서 성을 쌓기 시작할 때에 물길을 내는 일을 먼저 하였다. 넓혀서 소통을 시키고 7간의 홍예로 된 돌다리를 하천 위에 걸쳐서 설치하였다.

 

[동장대]

 

   조선시대 장수가 군사를 지휘하던 곳으로 연무대라고도 한다. 동쪽의 동북공심돈과 동암문 사이에 있다. 바닥에 돌을 깔아 말을 타고도 장대에 오를수 있게 하였다. 건물 주변에 넓은 터를 잡아 조련장을 만들었다. 이 곳에서 장용영의 군사들이 훈련을 하였다고 한다. 

 

[창성사진각국사대각원조탑비]

 

   창성사진각국사대각원조탑비 보물 제14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시대 진각국사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광교산 창성사 경내에 건립한 비라고 한다. 화홍문에서 연무대로 향하는 길목에 있다.

 

[북서포루]

 

   북서쪽에 위치한 북서포루는 검정 벽돌을 쌓아 치성과 같이 성밖으로 돌출시키고 내부는 나무판을 이용하여 3층으로 구획하였으며 포혈을 만들어 화포를 감추어 두고 위와 아래에서 한꺼번에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북서포루는 성밖으로 약 8.8m 돌출되어있으며 지붕의 형태가 성안쪽은 맞배지붕형식, 바깥쪽은 우진각 형식으로 된 것이 특징이다.

 

[서포루]

 

   서포루는 서암문의 남쪽 126보의 거리에 있는데, 제도는 동북포루와 같다. 치성이 성 밖으로 22척 8촌이 나왔다. 외면의 너비 30 척이고,현안(懸眼) 1구멍을 뚫었다. 5량으로 집을 지었는데, 판자를 깔아 누를 만들었다. 7영(七楹) 3간이고, 높이는 여장 위로 6척 8촌이 솟았는데, 전체 높이는 13척이다.

 

[서북공심돈]

 

   서북공심돈은 화서문 북치(北雉) 위에 있다. 성서(城書)에 이르기를 벽돌로 삼면을 쌓고 그 가운데를 비워둔다. 그 가운데를 2층으로 구분하여 널빤지로 누를 만들고 나무 사닥다리를 사용하며, 위아래에 공안(空眼)을 많이 뚫어서 바깥을 엿보는데 편리하게 한다.

 

   불랑기(佛狼機) 백자총(百子銃)들을 발사하여도 적으로서는 화살이나 총탄이 어느 곳에서부터 날아오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다고 하였다.

 

[채제공 초상화 - 문화원에서]

 

   채제공 초상화(시복본) 은 보물 제1477-1호 이다. 경기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 '선경도서관'에 소장 되어 있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사도세자의 신원 등 자기 정파의 주장을 충실히 지키면서 정조의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적 인물인 채제공의 초상화이다.

 

   수원시 소장 <시복본(1792년작)>은 채제공 73세상으로 사모에 관대를 한 옅은 분홍색의 관복 차림에 손부채와 향낭을 들고 화문석에 편하게 앉은 전신좌상이다. 우측 상단에 채제공이 직접 쓴 자찬문이 있고, 시의 내용대로 정조로부터 부채와 향낭을 선물 받은 기념을 표시하기 위해서인 듯 손을 노출시켜 부채와 향낭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연출되었다. 수원시에 함께 소장되어 있는 유지 초본 3점 또한 중요한 자료이며 향낭도 함께 남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