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나 만의 택리지를 꿈꾸며,...
경상도 기행

경남 김해(3) - 김해읍성

by 포리시스 2010. 6. 12.

   김해읍성

 

   김해시 동상동 824번지 일대의 조선시대 성곽이다.

 

   읍성의 전체길이는 1,950m이며 평지성(平地城)으로 동(해동문 海東門), 서(해서문 海西門), 남(진남문 鎭南門), 북(공진문 拱辰門)의 4대문이 있었으나, 성과 성문은 고종 32년(1895년) 이후 거의 살거(撒去)되고, 현재는 동상동 818번지 일대에 20여m가 남아 있다. 잔존 높이 2.5m로 내탁부(內托部)는 모두 훼손되었다.

 

[김해 읍성 북문 공진문]

 

   북문지의 경우 성벽이 일부 남아 있으나, 이미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상황이다. 현재 부산시립박물관이 북문지에서 동쪽으로 약 80m정도 떨어진 동상동 824번지 일대를 조사하고 있다. 이는 김해읍성의 북쪽 성벽에 해당 되는 것으로, 건물의 철거과정에서 잔존성벽의 상부는 이미 훼손 되었고, 기단부만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해시청 홈피>

 

[성문 옹성]

 

   경남 김해시 동상동 314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김해읍성은 <세종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 16년(1434) 석성으로 축조되었으며, 문종 원년(1451)에는 둘레 4,418척, 높이 13척, 여장(성 위에 설치하는 구조물로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 931개소, 적대(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측면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곳) 20개소, 옹성(성문 보호를 위하여 외부에 설치한 이중 성벽)을 갖춘 문 4개소, 냇물 한 곳, 우물 28곳, 해자(성벽 주변의 인공 하천)는 둘레 4,683척의 규모를 갖추었다고 한다.

 

 

   <김해읍지>에 나타난 읍성 4대문의 명칭은 각각 해동문, 해서문, 진남문, 공진문으로서 북문인 공진문은 현종 7년(1666)에 부사 이화악이 중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해읍성은 일제강점기에 읍성철거정책으로 고종 32년(1895) 이후 거의 흔적이 없어졌다.

 

   현재의 김해읍성 북문은 동상동 현 위치에 성벽과 옹성 일부가 잔존하던 것을 2006년부터 2년간 전면 발굴을 하여 하부고조및 축성기법을 조사, 분석하고 <김해부내지도> 등의 고지도류와 각종 문헌자료를 참고하여 2008년 3월 복원하였다. <현장안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