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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기행

#경남 김해 #봉황동 유적지 #황세바위 #여의각 #회현리 패총 #김해 가볼만한 곳

by 포리시스 2010. 1. 24.

2009년 한창 개구쟁이 아이들과 함께 한 김해 여행기이다. 멀리서 조상님을 알현하기 위함이 제일 큰 목적이였고, 아이들에게 역사를 들려주자는 의미의 함께 하였다.

 

김해 봉황동 유적지 안내문과 이정표

 

[봉황동 유적지]

원래 사적 제2호는 김해 회현리패총 이었다. 바로 옆에 봉황대 유적(과거 경남 문화재자료 제87호)이 있었는데, 이 두 유적이 서로 관련이 크다는 지적이 있어왔고,

 

김해 봉황동 유적

 

2003년에 둘을 합쳐서 사적 제2호[김해 봉황동 유적]으로 재지정했다. 패총(조개무덤)과 봉황대는 김해 봉황동 유적의 일부분이 되었다.

 

가락국천제단

 

[봉황대]

봉황대는 본래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7호였는데, 사적 제2호로 통합되었다. 금관가야권 최대의 생활유적지. 가야시대 주거지가 발굴됐고 2005년 망루, 가옥 등을 복원해 가야시대 건축물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하였다.

 

#황세바위

 

옛날부터 가라대, 망해대, 여의현, 독현, 회현 등으로 불려왔다. 조선 고종 김해부사 정현식이 봉황대란 이름을 지은 뒤로 봉황대로 불린다. 경주시의 신라왕릉급 거대무덤 봉황대와는 이름만 같고 관련은 없다.

 

봉황대에서 내려다 본 김수로왕릉의 전각들

 

[황세와 여의 이야기]

봉황대에는 황세와 출여의의 못 이룬 사랑 이야기가 전한다.

 

황세바위

 

가락국 제9대 겸지왕 때 남대정동에 사는 출정승과 북대사동(대성동)에 사는 황정승은 자식이 태어나면 혼인을 시키기로 하였다.

 

호현구진사회연지석

 

황정승은 아들 황세를 낳고 출정승은 딸 여의를 낳았다. 그러나 황정승의 집안이 어려워 지자 출정승은 마음이 변하여서 자신은 아들을 낳았다고 속였다.

 

여의바위

 

여의는 남자 옷을 입고 서당에 다녔으나 티가 났다. 황세는 이를 수상히 여기고 여의에게 황세바위에 올라가 오줌 멀리 누기 대결을 하자고 하였다.

 

여의각

 

여의는 바위 뒤로 돌아가 마침 그곳에 있던 삼대로 오줌을 누어 정체가 탄로나는 것을 피했다. 여름 어느 날 여의는 거북내에서 목욕을 하다 상류쪽에서 황세와 마주치게 되었다.

 

가락국정절출여의낭자여의각유공회원비

 

더 이상 여의는 숨길 수 없어 편지를 물에 거슬러 띄워 황세에게 이 사실을 고하였고 이후 둘은 연인이 되었다. 출정승도 결국 결혼을 허락하였다.

 

가옥들

 

얼마 후 신라군이 가락군을 침범해 오자 겸지왕은 군사를 모집했는데, 황세는 자진해서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다.

 

망루

 

왕은 황세에게 '하늘장수'라는 칭호를 주었고 자신의 딸인 유민공주와 결혼을 시켜 부마로 삼고자 하였다.

 

가야시대 가옥

 

이미 약혼한 사이였던 황세는 결혼을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왕은 출정승을 불러 파혼하라고 요구하였고, 결국 황세는 유민공주와 결혼하게 되었다.

 

사적 제 2호 봉황대 유적지

 

여의의 부모는 딸에게 다른 곳으로 시집가기를 권유하였으나 여의가 거부하였다.

 

여의각

 

하지만 어머니 마저 숨을 거두자 여의는 더욱 슬퍼하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황세는 이 소식을 듣고 여의를 잊지 못하여 슬퍼하고 괴로워하다가 마찬가지로 유명을 달리하였다.

 

패총 유물

 

사람들은 둘 연인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여의와 황세가 놀던 개라암에 작은 바위를 얹었는데 서남쪽의 것은 황세바위, 동남쪽의 것은 여의바위라 불렀다.

 

봉황동 유적 패총 전시관

 

한편 홀로 남은 유민공주는 황세와 여의의 영혼을 기리며 평생을 살겠다고 하여 경운도사와 함께 임호산에 들어갔다고 한다.

 

망루

 

위의 이유로 임호산을 유민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75년 여의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여의각을 설치하였다. 봉황동 황세바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전철이 건설되는가 보다

 

[회현리 패총]

패총, 즉 초기 가야 사람들이 조개를 까 먹고 조개껍데기 등 각종 쓰레기를 버린 구덩이로 수많은 중요한 유물이 발굴되어 주목 받았다.

 

가야시대 건물

 

수많은 김해식 토기(주로 취사용), 각종 철기, 잡아먹은 동물뼈, 일본계 수입품 등 중국 신나라 때 동전이 나와 당시 시대의 국제교역 상황을 알 수 있고,

 

개구쟁이

 

우리나라 최초로 불에 탄 쌀이 출토되어 쌀 농사 기원 연구에도 도움이 됐다. 패총 전시관이 있다. <네이버 나무위키>

대 대표적인 조개무지인 "회현리패총"과 더불어 "김해 봉황대 유적"이 2001. 2. 5. 문화재로 지정되었다시골길 같다는 생각이다. 양갈래 길에서 좌측 구릉으로 오르니 '가락국천제단'이 나온다. 시가지를 내려다 보니 한눈에 쏘옥! 건너편의 분산성. 새로 계획된 경전철 고가가 한창 건설중이고, 수로왕릉의 많은 전각들의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황세바위]

 

   천제단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곳에 "황세바위"가 있다.

 

 

 

   황세는 가락국의 9대 임금 겸지왕(숙왕)때의 인물로 황정승의 아들이다. 황정승과 친구사이인 출정승은 각기 아들을 낳으면 의형제를, 아들과 딸을 낳으면 서로 결혼시키기로 약속하였으나, 황정승의 집안이 몰락하자 출정승은 딸인 여의를 아들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여의각]

 

   의형제를 맺은 황세와 여의는 어릴때부터 같이 자랐는데, 어느날 황세가 여의에게 오줌멀리누기 시합을 제의하자 여의는 삼대줄기를 사용하여 위기를 넘겼는데, 이 시합을 한 곳이 바로 "황세바위"다.

 

 

   여의가 자라면서 점점 여인의 모습을 띠게 되자 이를 수상히 여긴 황세가 거북내(해반천)에서 멱을 감자고 하였의는 할 수 없이 자기가 여자임을 밝히고 둘은 결혼을 약속하였다.

 

 주민들이 건립한 여의각이다. 여의각 옆 비석에는 "駕洛國貞節出如意娘子如意閣有功會員碑"의 비문이 세겨져 있다.

 

 

[섬섬대?]

 

   황세바위를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가파른 곳에 이런 비석이 하나,..

   : 纖纖臺섬섬대西記二二八年

     섬섬과해선아시가가야금

     공부한곳으로기악이

     대성한다   許   錦

 

 

 

 

   봉황대의 동쪽 기슭에는 고상가옥촌이 자리하고 있다. 서쪽의 가옥촌에 작은 연못을 만들고 배를 띄워 해안의 포구를 연상시키는 공원을 조성한 반면, 이 곳에는 아주 오래전의 것으로 알려진 조개묻이(패총)가 있어 또 다른 구경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망루]

 

   마을의 어귀나 목책의 인근에 시설하여 적의 침입을 확인하기 위하여 높다란 망루를 설치한 듯 싶다.  제법 규모가 커 보여 이 곳에 한 번 올라보려 하였지만, 아래 기단의 오르는 부분을 봉쇄하여 전혀 위로 통과할 수 가 없다.

 

 

 

 

[움집]

 

 

 

 

 [창고]

 

 

[조개패총 전시관]

 

 

 

 

[ 회현리패총 유적지]

 

   봉황동 253번지 일원의 가야시대의 대표적인 조개무지이다. 1920년 우리나라 고고학상 최초로 발굴 조사되어 소위 김해식토기와 각종 철기 골각기 등과 함께 중국 왕망시대 (AD 9∼22)의 "화천"이라는 동전이 출토되어 당시의 교역상황을 나타내 주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 최초로 불에 탄 쌀이 출토되어 쌀농사의 기원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김해시청 홈피에서,..>

  

 

 

[봉황대 서쪽 공원에 조성된 가야시대 포구를 재현해 놓은 연못]

 

   이 곳에는 가야인들이 당시 해상활동을 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가야인의 배'가 포구에 정박되어 있다. 호수에 얼음이 꽁꽁 얼어 도져히 움직일 수 없는 배의 모습이 당시의 시간을 멈추어 놓은 듯 싶다. 포구 주변으로 역시 고상가옥이 즐비하게 연출되어 있다.

   주변에는 가야를 대표할 수 있는 '기마무사상'이 주변의 많은 군사를 호령하며 용맹을 떨치고 있는 듯 하다.

 

 

 

 

   500여년 동안 철기문화를 앞세워 발전하였던 가야. 아직도 새로운 역사의 발굴이 아쉽다. 많은 노력으로 새로운 가야인의 모습이 우리들의 곁에 태어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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