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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행

#경기 양주 #양주 별산대 #산대놀이 #양주 가볼만한 곳

by 포리시스 2009. 11. 3.

[양주별산대놀이]

양주별산대놀이[楊州別山臺]는 서울과 중부지방에 전승되어 오던 산대놀이(탈놀음)의 한 분파로 중요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양주별산대 놀이

 

산대는 산의 형상을 본떠 만든 무대이다.

 

공연자들의 살풀이

 

기암괴석이 첩첩한 산의 형상인데, 그 괴암기석 여기저기에 동굴과 절벽이 있고, 그곳에서 잡상(雜像)들이 널리 알려진 고사 장면을 재현한다.

 

춤사위

 

따라서 여러 개의 좁은 무대가 수직으로 배치되어 있다.

 

 

춤사위

 

산대에는 한 장소에 고정시켜 놓은 대산대(大山臺)와 밑에 바퀴가 달려 있어 이동할 수 있는 예산대(曳山臺)가 있다.

 

문화체험 외국인들

 

산대는 궁정에서 주관하는 행사를 위하여 설치하였으나, 현재의 산대놀이는 궁정의 공연물을 계승한 것이 아니다.

 

공연전 관객과 신명난 어울림

 

산대놀이 연희자들이 그들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산대’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

 

 

 

별산대는 본산대와 구별하여 붙인 명칭이다.

 

 

17세기 말 궁정의 공연문화가 쇠퇴하자 전문 놀이패가 한양의 시정을 중심으로 민간 공연문화를 발흥시켰다.

 

 

녹번, 애오개[阿峴], 노량진, 사직골의 본산대놀이가 그것이다. 이 지역은 상업이 융성했던 곳이다.

 

 

 

당시 양주에서는 사직골 놀이패를 초청하여 놀이판을 벌이고는 하였는데,

 

 

그들이 지방공연 일정으로 약속을 어기는 일이 잦아지자 양주 주민들이 스스로 가면을 만들어 산대놀이를 공연하기 시작하면서 ‘양주별산대놀이’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한다.

 

 

 

양주는 목사가 주재하는 1천 여 호의 고을이었다.

 

 

그 후 본산대놀이는 전승이 끊기고 양주별산대놀이만 현재까지 전승되어 오고 있다.

 

 

 

원래의 놀이터는 마을 북서쪽 불곡산(佛谷山) 아래 사직골이었다.

 

 

 

이곳에 사직당이 있었는데 그 앞 넓은 마당에서 공연하였고, 가면과 여러 도구들은 사직당에 보관하였다.

 

 

 

그 후 사직당과 마당이 없어지자 향교 외삼문(外三門) 안마당에서 공연하다가 1977년에 현대식 전수회관이 완공되고, 1985년 전수회관 앞에 공연장이 완공되면서 공연 장소를 이곳으로 옮겼다.

 

 

 

2001년에는 새로운 전수회관을 건립하였다.

 

 

 양주별산대놀이는 앞놀아, 본놀이, 뒷놀이의 순서로 진행하였고,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놀았다.

 

 

앞놀이는 마을에서 놀이터로 이어지는 길놀이를 시작으로 놀이터에 도착해서 올리는 고사로 끝난다.

 

 

 

 이 과정에서 분위기 조성, 비용 염출, 지신밟기, 무사 기원 등이 이루어진다.

 

 

뒷놀이는 모든 참여자가 유대감을 다지는 대동놀이이다.

 

 

본놀이는 제1과장 상좌춤, 제2과장 옴과 상좌, 제3과장 옴과 목중, 제4과장 연잎과 눈끔적이, 제5과장 팔목중놀이(염불놀이, 침놀이, 애사당 북놀이), 제6과장 노장(파계승놀이, 신장수놀이, 취발이놀이), 제7과장 샌님(의막사령놀이, 포도부장놀이), 제8과장 신할아비와 미얄할미 순서로 진행된다.

 

 

제1과장부터 제6과장까지는 중마당이다.

 

 

이 부분에서 표면적으로 승려들의 파계상을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주지만, 실질적으로는 신명을 분출하게 해준다.

 

 

곧 인간의 내면에 감추어진 신명을 노래와 춤으로 발산시킴으로써 정서적 쾌락을 체험하게 한다.

 

 

목중들의 염불은 어느덧 잡가로 바뀌어 신명을 북돋운다.

 

 

 

침놀이에서 침은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기구가 아니라, 신명이 막혀 죽은 사람에게 신명이 거침없이 터져 나오도록 마음의 장벽을 뚫어주는 주술기구이다.

 

 

신명에 체하여 죽은 아들, 손자, 증손자는 침을 맞고 살아나서 신명을 거침없이 분출한다.

 

 

 

특히 일체의 대사 없이 진행되는 노장과 소무의 춤은 노장의 내면에 깊숙이 감추어져 있던 원초적 생명력, 곧 신명이 서서히 표출되어 나오는 과정을 극적으로 형상화한다.

 

 

취발이와 노장의 대결에서는 늙음에 대한 젊음의 승리, 노회한 계략에 대한 싱싱한 생명력의 승리를 잘 보여준다.

 

 

 

제7과장은 양반마당이다.

 

 

이 과장에서 양반은 위엄 있고 강직하고 점잖은 인물이 아니라, 인색하고 잔인하며 음흉하고 비속한, 그리고 가난이 꾀죄죄하게 흐르는 인물임을 폭로한다.

 

 

또한 포도부장과 양반의 대결에서는 늙음에 대한 젊음의 승리, 그리고 낡은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동시에 보여준다.

 

 

 

제8과장은 할미마당이다.

 

 

늙은 부부인 영감과 할미, 그리고 아들과 딸, 이렇게 4명이 등장한다.

 

 

영감은 옥니가 달린 깍쟁이로서 사람이 붙지 않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고, 할미는 가랑잎에 불붙듯 성미가 빠르고 급하며 도량이 작은 인물로 묘사된다.

 

 

 

그리고 아들은 빚 갚을 돈을 가지고 가출한 난봉꾼으로 설정되어 있고, 딸은 출가했지만 남편에게 버림받고 혼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생과부로 설정되어 있다.

 

 

 

아들과 딸은 부모와 연락을 끊고 살고 있다.

 

 

그런데 이 가족이 할미의 죽음으로 재결합한다.

 

 

남은 가족들은 죽은 할미의 따뜻한 자궁 앞에서 그들의 존재적 근원의 동질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추운 날씨임에도 올해 마지막 공연이라 그랬는지 아이들과 부모, 연인들, 기관에서 온사람들 그리고 외국인들로 무리를 이루었다. 우리의 것에 매료되었는지 탈춤배우기 시간에는 제법 많은 외국인들이 참여해 주었고, 공연내내 사진을 찍느라,... ㅎㅎ 별산대 공연은 매년 5월에서 10월말까지 공연을 한다고 한다. 무료입장이다. 

 

 

처음에는 경쾌하다가 후반에는 다소 숙연해짐을 느끼겠다. 길게 공연을 할때에는 3시간가량 된다고 하는데 날씨 때문인지 많이 잘린 듯 싶다. 가족과 또는 연인과 함께 관람해도 참 좋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