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강 남효온 [南孝溫, 1454~1492]
추강 남효온은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백공(伯恭). 호는 추강(秋江)·행우(杏雨)·최락당(最樂堂).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고양시정연수원 옆에 <추강남효온시비>가 있다.
강나루 주막에 묵으며
비단옷 두루고 고기반찬에 배부른 자
수양산 고사리 맛 그 어찌 알겠는가
날짐승 들짐승이 보금자리 날라하듯
나 만은 벼슬 탐하는 것 부끄럽게 여기노라
시골에 묻혀 밭고랑을 일구며
뱃전의 낚시질로 세월을 보낸다네
한 세상 사는 삶이 뜻대로면 그만이지
어찌하여 한 평생을 아등바등 지낼것가
[추강 남효온 시비]
행주 성황당에 올라
성황당 아래 떨어진 꽃잎 선연한데
압도 남쪽 언저리엔 밀물이 밀려오네
수풀에 말매고 푸른풀 깔고 앉아
강너머 들려오는 닭울음 듣노라
하늘잇닿은 행주강 흰물결 내앞에서 찰랑이고
고깃배 저어온 사공 공암가에 닻내릴라
풍광 좋은 곳에 올라 산나물로 막걸리 즐기니
병든 이내몸 눈밝아져 신선이나 되었으면
김종직(金宗直)의 문하로 김굉필(金宏弼)·정여창(數汝昌)·김시습(金時習)·안응세(安應世) 등과 친교가 두터웠다.
1478년(성종 9) 세조에 의해 물가에 이장된 단종의 생모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능인 소릉(昭陵)의 복위를 상소하였으나, 도승지 임사홍(任士洪), 영의정 정창손(鄭昌孫)의 저지로 상달되지 못하자 실의에 빠져 유랑생활로 생애를 마쳤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 때는 김종직의 문인이었다는 것과 소릉 복위를 상소했었다는 이유로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당하였다.
만년에 저술한 《육신전(六臣傳)》은 빛을 못 보다가 숙종 때 비로소 간행되었다. 1513년(중종 8) 소릉이 추복(追復)되면서 신원(伸寃)되어 좌승지에 추증되고 1782년(정조 6) 다시 이조판서에 추증, 생육신의 창절사(彰節祠)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추강집(秋江集)》 《추강냉화(秋江冷話)》 《사우명행록(師友名行錄)》 《귀신론(鬼神論)》 등이 있다.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