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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행

#인천 강화 #삼랑성(三郞城) #정족산성 #종해루 #전등사 #양헌수 장군

by 포리시스 2013. 4. 8.

삼랑성(三郞城)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위치한 사적 제130호로 지정된 곳이다. 일명 정족산성(鼎足山城)이라고도 한다.

 

삼랑성의 남문 종해루

 

성을 쌓은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하고 이름을 <삼랑성>이라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성 안쪽에서 본 남문

 

처음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지만 삼국시대에 이르러 그 위에 막돌을 맞추어가며 쌓았고 성체 안에는 막돌을 채운 튼튼한 석성으로 축조되었으며,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보강이 되었다고 한다.

 

남문에서 능선으로 시작되는 성곽

 

전등사를 에워싸며 둘러쳐진 정족산성의 남.서.북문의 골이 깊어 솟아 오른 봉우리가 혹 솥의 다리처럼 생겨 이름지어진 것은 아닌지?,.....

 

남쪽 능선의 성곽

 

성 내에는 전등사는 물론 고려시대에는 가궐(假闕), 조선시대에는 사고와 선원보각이 있었다.

 

밖으로 돌출된 곳의 성곽

 

병인양요(1866) 때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군을 물리쳐 이곳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족보인 「선원보」를 지켰다. 1976년에 남문인 종해루를 원형대로 복원했다는 안내문이다.

 

남쪽 능선의 성곽

 

성곽의 축조는 거치 활석으로 되어 있으며, 성내도 활석으로 채워 안팎을 협축하여 보은의 삼년산성(三年山城)이나 경주의 명활산성(明活山城)과 같이 삼국시대의 석성 구조를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보수중인가 보다

 

1259년(고종 46) 5월 고려 고종은 중랑장(中郞將) 백승현(白勝賢)의 풍수설에 따라 이 성 내에다 가궐(假闕)을 지었다고 하는데 현재 가궐터가 남쪽 봉우리 아래 위치하고 있다.

 

성곽길에서 - 아래쪽으로 남문 방면이다.

 

1606년(선조 39) 마니산에 사고를 설치하여 조선왕조실록을 보존해오다가 1660년(현종 1) 삼랑성 내의 정족산 사고로 옮겼다.

 

서문방면 - 이곳이 남쪽 봉우리의 정상이겠다.

 

이 때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이 같이 건립되었다.

 

남쪽의 정상에서 본 전등사 풍경

 

그러나 현재는 사고와 선원보각이 모두 없어지고 전등사만 남아 있다고 하는데, 전등사 관내도에 보면 정족사고와 취향당이 있어 후에 복원한 듯 싶다.

 

우측 산 능선으로 동벽이 지나고 있다

 

삼랑성은 고려시대에 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1739년(영조 15)에 중수를 하면서 남문에 문루를 건립하고 종해루(宗海樓)라 하였고,

 

서문으로 이어지는 성곽길

 

1746년 다시 성을 중수하였고, 조선 말기에도 계속적인 보수가 있었다. 이로 보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는 내용이다.

 

서문으로 이어지는 성곽길

 

이 산성은 1866년(고종 3)의 병인양요 때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하려던 160명의 프랑스군을 물리친 승첩지로 유명하다.

 

문루가 없는 서문 아래 평평한 곳

 

현재 성내 동문 안에는 당시 프랑스군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순무천총(巡撫千摠) 양헌수(梁憲洙)의 승전비가 있고, 1976년 남문을 복원하고 문루를 세워서 예전대로 <종해루>라는 현판을 달았다고 한다.

 

성 안에서 본 서문

 

특히 삼랑성은 마니산과 더불어 단군신화와 관련되는 흥미있는 성이다.

 

성 밖에서 본 서문

 

내가 전등사에 와서 이 삼랑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서문에서 남쪽 능선으로 성벽

 

성곽의 총 둘레는 약 1km정도이니 그리 큰 성은 아니다.

 

서문에서 북쪽으로의 성벽

 

도보로 한시간 반 가량 소요된다는 안내문을 보고 남문에서 서문 방향의 성곽길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걸었다.

 

정족산 정상으로 성곽길 - 좌측의 높은 곳이 성곽이다.

 

이 성곽의 남문이 가장 낮은 곳에 위치 하겠다. 동문과의 거리는 불과 200여 미터 남짓 성곽이 이어져 북문의 능선으로 이어지고, 서문의 방향으로도 이내 능선의 시작이라 남문은 어찌보면 골짜기에 숨어 있는 듯 위치하고 있다.

 

서문에서 남쪽으로으로의 성곽 - 앞이 볼퉁한 곳이 성문이다.

 

여타 성문의 문루가 없고 남문이 유일하게 문루가 복원된 것이기도 한다.

 

서문에서 남쪽능선으로 성곽의 모습

 

전체적인 성곽의 형태는 남서쪽의 성곽길이 계속되는 오르막이고 하나의 봉우리를 거쳐 이내 서문으로 내려가면서 잠시 평지를 이루다가 이내 정족산의 정상으로 이어진다.

 

정족산 정상 이정표

 

정상의 높이는 해발 113m이다. 정상에서 북문으로 내리막을 이루다가 다시 약간의 오르막이 이어지고 이 곳에 북문이 있다.

 

능선으로 이어진 북쪽의 성곽

 

산성의 암문과도 같이 성곽에 작은 통로의 문을 만들어 외부에서 보면 찾기 힘든 형태이다.

 

북쪽 성곽

 

북문에서 동문 방향으로 다시 고개를 이루다가 높다란 장대의 터를 기점으로 동문으로 내리막을 이룬다.

 

북쪽 성곽

 

동문의 약간 평지를 지나면서 조금 오르막기이고 다시 급경사의 성벽이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을 갖춘 성이다.

 

성 안쪽에서 본 북문 - 동.서.남문보다 규모가 훨씬 작아 암문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남서쪽에 위치한 봉우리와 정족산의 정상 그리고 동북쪽의 장대의 터였음직한 봉우리가 마치 솥의 세 다리라 여겨 봄직한 곳이다.

 

성 밖에서 본 북문

 

솥의 세 다리 안쪽으로 분지에 전등사가 위치하고 사고와 가궐지가 있었음이겠다.

 

동쪽으로의 성곽

 

이 사찰을 위해 성곽을 쌓은 것은 아니겠지만,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성곽이 있었다면 혹여 다른 중요한 건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북문에서 동쪽으로의 성벽

 

사찰이든 궁궐이든 사고든 성곽으로 둘러져 있어 더욱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 인것 만큼은 부인할 수 없겠다.

 

성곽길

 

대체적으로 남서쪽의 정상 구간 성곽이 복원중인 듯 싶고, 동.서문의 문루가 없어 아쉽지만 오랜 세월의 성곽길을 걸어볼만하다.

 

북쪽의 성벽

 

남쪽 성곽의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전등사의 풍경도 참 아름답다 느낌할거다.  여러 계절 내내 보는 그 모습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성벽

 

햇살을 받는 기와 지붕의 모습들이 정말 포근하게 느껴진다. 푸르름의 녹음이 짙어지거나 단풍의 계절, 흰 눈의 설경에도 잘 어우러질 것 같다는 생각이다.

 

동쪽의 치성같다

 

사실 이 곳 전등사 경내를 둘러보면서 <고려가궐지>와 <정족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미리 검색이나 좀 해 보고 올걸 그랬나 싶다.

 

동문으로의 성벽

 

언제일지 모르지만 계절이 바뀌거나 다른 계절을 건너뛰고라도 다시 와 봐야 갈 것 같다는 생각이다. 멀리 보이는 주변의 경관들도 참 좋다.

 

동문에서 남문으로의 성곽길

 

선명한 사진을 위한 가시거리가 조금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았지만, 웬만한 곳의 위치는 식별할 수 있어 그럭저럭 좋은 산성길을 걸었던 것 같다.

 

동문

 

그다지 큰 문은 아니지만, 문루가 없어 성곽길이 되어버린 동문과 서문의 문루 복원이 안된 것이 무척 아쉬웁지만, 언젠가 복원된 모습도 기대해 본다.  

 

동문

 

성곽길을 걷는 시간은 조금 서둘렀다고 생각하는데, 약 40여분 소요되었던 것 같다. 사찰을 구경하고 성곽길을 걷든, 성곽길을 걷고 사찰을 구경하든 둘 다 해볼만하다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