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탐방(2)
지난번에 성곽을 일주하려 했지만,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과 동안에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걷느라 완주하지 못했다. 전날 내린 눈으로 산성의 모습들이 눈속에 푹 담겨져 있을거다. 그져 눈 내리면 좋아하는 아이들과 이리저리 날뛰는 똥개들처럼 어릴적 그 마음을 보태서 두번째 탐방길에 나섰다.
[눈 덮힌 행궁주변 풍경]
산성역 입구에 도착하니 내린 눈 탓인지 산성으로 향하는 버스도 참 더디게 도착하는 것 같다. 이내 버스를 타기는했지만 눈길에 통제를 한다며 시내로 다시 우회 한다. 맑게 개이지는 않았지만 산 정상을 휘감아 뿌옇게 내려앉은 무리의 안개가 참으로 잘 어울린다. 공원 입구에서 다시 10여분 단위로 버스를 두어대 뜅기고 나서 산성에 도착하니 벌써 11시다.
[남문 서쪽 능선의 성곽길]
성곽의 북쪽길이 소나무가 많아 더욱 아름다울 것 같았지만, 지난번에 이미 걸었던터라 남쪽의 성곽길을 따라 걸었다. 제법 발목을 넘겨 쌓인 눈속의 바닥은 기름칠을 해 놓은 것처럼 빙판이 이루어져 있어 셀 수도 없이 미끄러졌다. 두어 발자국 앞서간 사람들이 있긴했지만 그져 상쾌한 마음으로 걸었다.
[제1남옹성]
유네스코등재 문화재로 잠정 지정되었다는 남한산성,... 완전하게 복원된 성곽이라 생각을 했지만, 내내 걸으며 복원할 곳이 참 많다는 걸 알았다. 특히 제일 보고 싶었던 남쪽의 세개 옹성과 동장대터에서 이어지는 봉암성과 한봉성에는 아직도 꾀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제1남옹성 암문]
이 옹성들과 주변의 성곽이 복원되는 날에는 성곽의 외곽길을 따라 걸어보았으면 좋겠다. 늘 성곽길을 걸을때면 느끼는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져 자연속에 새겨놓은 걸작품이란 생각을 많이 한다. 지형을 따라 가며 쉴 새 없이 많은 생각과 힘을 보태어 만들었을 예술품,... 오래도록 전해져오는 그들의 이야기가 아주 오래도록 남겨졌으면 좋겠다.
[남장대터]
지화문(남문)에서 남쪽으로 능선을 따라 오르면 세계의 옹성이 있다. 지금은 터와 성곽의 형태가 조금씩 남아 있는 상태이지만 복원을 위한 준비가 한창인 듯 복구를 위한 시설물들이 산재해 있다. 서쪽에서 동쪽의 방향으로 <제1남옹성>, <제2남옹성>, <제3남옹성>이라 부른다.
[제2남옹성]
<옹성>은 일반적으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 쌓은 이중의 성벽을 말하지만, 남한산성의 옹성은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3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하고 요충지에 대한 거점 확보를 위해 성벽에 덧대어 설치한 시설물로 다른 성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라고 한다.
[제3남옹성 방면 성곽]
남한산성에는 모두 5개의 옹성이 있다. 이 중 3개의 옹성이 산성 남쪽의 완만한 지형을 보완하고 <신남성>으로부터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되었다고 한다. <제2남옹성>은 이 3개 중 중앙에 있는 두번째 옹성이다. 둘레가 318m이며, 다른 옹성과는 달리 이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란다.
[제3남옹성]
옹서의 끝에는 포대가 있다. 그 곳으로 들어가기 위한 홍예문이 별도 시설되어 있으며, 포대는 동, 서, 남 3방향으로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본성과 연결되는 지점에는 전투시에 성내로 출입할 수 있도록 암문을 설치하였다. 남한산성에 설치된 옹성 중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좌익문(동문) 성곽길과 망월사]
성곽을 걸으며 보니 주변에 제법 많은 암문이 있었다. 제2남옹성을 바라보며 <남장대터>가 있다. 지금은 남아 있는 건축물과 부속시설물들이 전혀 없어 이곳이 남장대터였는가 잘 알 수 없지만 남서쪽으로 성남시와 동쪽으로 광주 방면의 산맥과 계곡이 시원스레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좌익문(동문)]
저 멀리 앞쪽으로 보이는 산이 검단산이겠다. <신남성>은 검단산 정상부에 장경사신지옹성보다 작은 규모로 두개의 돈대를 갖춘 소규모 방어시설이라고 한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이 이곳을 점령하여 홍이포를 설치하고 남한산성 행궁을 공격했던 곳이라고 한다.
[좌익문으로 본 설경]
은은하게 전해지는 사찰의 불경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아래에 있는 <개원사>에서 전해지는 걸거다. 성곽위와 앙상한 가지에 내려앉은 흰 눈이 곡선의 성곽길을 더욱 선명한 흑백사진으로 연출해 주는 듯 싶다. 방향만 바꾸어도 선이 휘어지고 끈긴 것 같아 보이지만 또 다시 걷다 보면 선이 이어진 성채를 발견하게 된다.
[하얀 옷 입은 좌익문 문루]
지화문에서 남장대터까지는 아이젠 없이 올랐지만, 더는 아니되겠다는 생각에 배낭에서 아이젠을 꺼내 착용을 하고 걸었다. 하지만 아이젠도 무용지물이다. 이미 반들반들해진 바닥의 얼음위에 내려 앉은 흰눈을 뾰족한 이 넘이 제대로 관통하지 못해 미끄러지기를 수도 없이 했다.
[송암정이 있던 곳의 대부송]
좌익문(동문)으로 내려오는 길은 경사가 더욱 심해 줄곳 미끄럼을 타듯 설설기며 내려와야 했다. 비료포대만 있다면 아마 시골에서 했던 것처럼 썰매를 타고 내려왔을텐데,... 한 참 뒤에 오시던 분도 연신 빙판의 이 길에서 넘어지기를 수회 반복하며 이끌리다시피 내려 왔다. 아마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져 만든 걸작품]
건너편 산허리를 감아 오르는 성곽길이 눈에 띈다. 성곽을 따라 오른쪽으로 시선을 따르니 끝은 이미 숲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왼쪽으로 내리치는 곳에는 커다란 문루가 보인다. 주변의 설경이 너무 좋았다. 아래쪽에 위치한 성문과 산 자락에 살짝 가려진 사찰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전해 주는 듯 하다. 정말 아름답다.
[장경사 풍경]
동문 근처에 내려와 잠시 고민을 했다. 계속 눈길의 성곽을 이어 가려니 눈길이 더욱 심할거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오히려 조금전에 보았던 사찰에 진사님들의 출사가 많은 곳이니 사찰 구경만 하는 것이 더욱 현명할 거란다. 하지만 계속 걷기로 마음을 정했다.
[아름다운 곡선의 성곽길]
좌익문 남쪽으로의 성곽은 끈겨져 있다. 언젠가 도로가 개통되면서 그랬을거다. 이 곳만 제외한다면 전구간의 성곽길이 이어져 있는 셈이다. 아랫쪽으로 흐르는 계곡 물길의 영향을 받은것처럼 전 구간의 성곽중 지형이 가장 낮아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장경사신지옹성]
좌익문의 성벽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송암정터>가 있다. 송암정은 우리말의 '솔바위 정자'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옛날 황진이가 금강산에서 수도를 하다 하산하여 이곳을 지나는데 남자 여럿이 기생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중 술에 취한 한 사내가 황진이를 희롱하려 하자 황진이는 개의치 않고 오히려 불법을 설파하였다.
[동장대터 오르는 곳의 군포지]
이 때 그 무리 중 감명을 받은 기생 한 사람이 갑자기 절벽으로 뛰어내려 자결하였는데, 그 후 달 밝은 밤에는 이 곳에서 노래 소리와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이 바위에 서 있는 고사목(소나무)은 정조가 여주 능행길에 '대부' 벼슬을 내려 '대부송'이라고 부르는 소나무라고 하는데 푸르름을 전하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
[동장대지와 우측의 봉암성 성책]
이 곳에는 성책이 없어도 자연스레 성벽을 이룰만큼 경사가 참 가파르다. 멀리 '대부송'을 바라보며 행궁이 위치하고 그 뒤로 '수어장대'의 봉우리가 아스라이 자리한다. 이 성을 평소에는 승군이 관리하였다고 하니 주변에 사찰도 꽤나 많이 들어서 있을것 같다. 북한산성의 탐방길에서도 이와 같은 승군의 이야기를 들었다.
[동장대지에서 본 봉암성]
눈 속에 묻힌 성곽의 묘한 라인,.. 아마도 푸르름의 계절에는 그 조차 발견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짙다. 성책길을 열심히도 담아내던 지긋한 나이의 진사님,... 분주하게 산행을 즐기던 마니아님도 이 길을 가면서 내심 묻혀버린 역사의 시간을 잠시 끄집어내지는 않았을까 여겨본다.
[봉암성 암문과 동장대지]
끈긴 듯 이어지고 이어진 듯 끈겨 보이는 성곽길,... 절묘하게 연출되는 자연속의 장면들은 분명 드라마틱한 작가의 원고보다 더 스릴있어 보인다. 수원의 화성이 이미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화성도 완주를 하지는 못했지만 일부분 걸어보며 복원이 참 탁월했다는 생각을 많이 해 보았다.
[봉암성으로 연결되는 암문]
송암정을 지나 오르막의 두려움을 가지려는 순간 이내 성곽에서 머지않은 곳에 아스팔트길이 나란히 보이고 건너편으로 다시금 오르막의 산성길이 소나무 숲에 가려져 있다. 흰 눈에 가려진 조붓한 공간에 위치한 사찰은 <장경사>다. 바쁜 마음에 제법 가까운 사찰을 경유하지 못함은 분명 길게 이어져 있을 미끄러운 성곽길 때문이었을 거다.
[북문 방면으로 두어개 군포지가 있다]
성곽길에서 멀지않은 곳에서 훔쳐 달아나듯 사찰의 밋밋한 그림자만 뷰에 담고 이내 성곽길을 거슬러 올랐다. 두어명 산행하는 사람들을 쫓고자 하였지만 나의 생각과 무관한 사람들이라 이내 시야에서 멀어졌다. 눈길에 가장 힘들었던 곳이 아닌가 싶다. 연신 언덕을 팔자걸음하며 기어 오르듯 올르려니 두어 배 힘이 더 들었다.
[푸르름의 계절에는 성벽도 아름다운 자연 속으로 숨어버릴듯,..]
가쁘게 숨이 몰아왔지만, 대여섯 발자국 걷다 뒤돌아 보며 경치를 음미하고 마음을 위로했다. 평소의 길이라면 덜 했겠지만 발자국 아래 내리꼿혀야 할 놈이 말을 듣지 않아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자그마한 암문을 발견했지만 귀찮게 여겨졌고, 한참을 오르다 뒤돌아 보며 "아하~ 그곳이 <장경사신지옹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형을 따라 선을 그린 듯 싶다]
북쪽의 능성으로 눈 높이를 가름할 만한 곳에 허름한 성곽이 이어져 있다. 아마도 <봉암성>이겠다. 고개의 가까이에 오르막길에 <군포지>가 있다. 군포는 성을 지키기 위한 초소 건물이란다. [중정남한지, (1848)]에 의하면 남한산성 내에는 125개소의 군포가 마련되어 있었다 하나, 현재는 한 군데의 군포도 남아 있지 않고 이렇게 터만 남아 있는것 같다.
[멀리 도심도 눈속에 묻혀있다]
조사결과 이 군포지는 주변보다 약간 높은 평탄한 대지 위에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보이는 초석과 벽체, 그리고 다수의 와편과 조총 탄환이 나왔다. 이를 통해 군포는 목조가구로 된 건물에 기와를 얹고 벽체는 토석벽을 둘린 건물로 보인다. 또한 군포는 초소건물 기능에 맞게 정면은 트여 있고 내부에 온돌시설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걸어도 새롭게 연출되는 성곽]
이번 정비 시에 발굴된 발굴시의 건물유구를 잘 보존하기 위하여 유구 위를 흙으로 덮고 그 위에 기존 유구와 같은 형태의 모조초석을 설치하였다.
[눈내린 산성의 외곽길을 걷는 분도 있다]
아마도 장경사에서 동장대지까지의 성곽길이 가장 힘든 구간이 아니었나 싶다. <동장대지터> 역시 특별한 건축물의 시설물은 없다. 다만 성곽의 여장 부분이 복구되지 않은 채 많이 낡아 있었고 군데군데 청테이프에 새겨진 번호표가 복구중임을 암시해 주었다.
[북문 가까이에 있던 제1군포지]
<동장대>,... 장대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 건물로 남한산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었다. 이 곳에는 남한산성에 주둔하던 수어청에 소속된 5영 중 좌영장을 지휘하던 곳이다. 동장대는 인조 2년(1624) 산성 수축시에 설치되었고 누각도 함께 건립되었으나 18세기 초에 붕괴된 것으로 보인다.
[쉴 새 없이 오르고 내려가고 휘어지고 감아돌던 성곽길]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남장대와 서장대는 다시 수축하였으나 동장대와 북장대는 다시 짓지 않았다. 한봉성과 연주봉옹성의 축성으로 동장대나 북장대는 상징적인 의미만 있을 뿐 군사적인 실효성이 없어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유난히 북쪽으로 소나무가 많은 듯 싶었다]
<동장대지> 동쪽으로 벌봉(봉암)을 에워싸며 동장대지 성곽과 연결되어 축성된 곳은 <봉암성>이다. 이 곳에 <외동장대터>와 <동림사터>가 명시되어 있지만, 성곽이 복원되는 날 둘러보아야 겠다. 봉암성에 맞물려 남쪽 한봉으로 이어진 성곽이 <한봉성>인데, 역시 복구가 덜 되어 보여 함께 둘러보면 좋겠다.
[정말 아름다운 성곽의 선]
북문으로 내리막의 성곽을 따라 가면 아주 작은 암문이 있다. 안쪽으로 터가 높아 성 밖으로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데 정말 감쪽같이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문 근처의 평지에 <군포지>와 흡사한 터가 있는데 안내문은 발견하지 못했다. 북문 가까이에 제1군포지가 하나 더 있다. 125개의 군포가 이와 같이 조밀하게 분포되어 있었던 것 같다.
[어느곳에 서 있어도 새롭게 연출되는 풍경]
이번 성곽길을 돌아보며 특이한 점이 있다면 아마도 성책의 상단 부분에 해당하는 여장이었을 거다. <여장>이란 성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이곳에 몸을 숨겨 적을 향해 효과적으로 총이나 활을 쏠 수 있게 만든 시설을 말한다.
['S'라인]
남한산성 여장은 다른 성곽에서 보기 힘든 전돌로 축조한 평여장이다. 여장은 축조시기와 위치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데, 여장재료는 일반적으로 하부는 석재로 상부는 전돌을 사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란다. 여장은 수평하게 축조된 것이 기본형식이나, 급경사지에서는 계단식으로, 일부 완만한 경사지에는 지형에 따라 경사지게 조성하였다고 한다.
[여장이 만들어 놓은 선]
여장에는 중앙에 근총안 1개와 좌우에 원총안 2개 등 3개의 총안과 여장과 여장 사이에는 활을 쏘기위한 타구가 마련되어 있고, 남한산성 여장규모는 길이 4.2m, 높이 1.3m, 폭 0.8m 내외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북문 설경]
설원 속에 잠긴 아름다운 건축물 남한산성,... 한때 의병들의 근거지이기도 했던 이 곳이 일본놈들에게 얼마나 얄밉게 보였던지 많은 문화재를 전소시켜 버린 곳이기도 하다. 유원지의 명성이 있기도 하지만 잃어버린 문화재의 복원으로 훌륭한 역사의 체험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음 여정에는 성곽 내 문화재의 탐방길을 걷고 싶다.
'경기도 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천 강화 #삼랑성(三郞城) #정족산성 #종해루 #전등사 #양헌수 장군 (0) | 2013.04.08 |
---|---|
#인천 강화 #전등사(傳燈寺) #나녀상 #대웅전 #보물 제393호 범종 #양헌수 승전비 #전등사에 전해지는 전설 #전등사 은행나무 (0) | 2013.04.02 |
경기 광주(1) - 남한산성 기행(1) (0) | 2013.01.31 |
경기 인천(8) - 강화도 마니산 (0) | 2012.10.24 |
경기 시흥(1) - 관곡지를 지나다 (0) | 2012.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