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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행

#인천 강화 #강화산성 북문 진송루 #강화산성 남문 안파루 #강도남문 #강화산성 동문 망한루

by 포리시스 2010. 4. 29.

땅 위로 수분이 촉촉한 것을 보니 봄이 오고 있음이다. 바람막이를 입었지만, 따사로운 햇살을 먹음으며 성곽을 오르다 보니 이내 덥다는 생각이다.

 

강화산성 안내도

 

늘 그러하지만 초록의 풍경이 펼쳐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생동감이 느껴지고, 풍경도 잘 담아지기에,....

 

성곽의 밖에서 본 강화산성 북문(진송루)

 

강화산성 전체구간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북문(진송루)에서 남문(안파루)까지의 트레킹 이야기이다. 북문에서 동쪽으로 성곽을 오르면 북산의 정상이다.

 

강화나들길 이정표

 

아마 이곳에 남산의 정상과 더불어 장대가 있었을 것이지만, 잔존 유물은 없는 듯 싶다. 성곽도 대부분 무너져 낮은 석축의 경계만 보일 뿐이다.

 

북문의 동쪽 성벽

 

북산의 정상에 오르니 주변의 풍광이 시원스레 펼쳐 진다. 멀리 바다의 모습과 강화 읍내의 모습이 잘 조망되는 곳이다. 

 

성곽의 안내문과 북문(진송루)

 

전체 구간을 탐방하지 못하여 다음 기회에 나머지 구간을 걸어봐야겠다. 강화도에 내성, 중성, 외성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북장대로 이어지는 성곽

 

강화산성은 내성인데, 강화 해안으로 외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함께 기록해 본다. 아래의 글은 문화재청의 내용을 옮겨 왔다.

 

진송루의 문루에서 본 서쪽으로의 성곽

 

[강화산성]

강화읍을 에워싸고 있는 고려시대의 산성이다. 몽골의 침입으로 백성과 국토가 수난을 당하자, 당시 실권자인 최우는 1232년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다.

 

북문 주변 풍경

 

왕궁과 성. 관아 시설은 1234년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 때 개경의 궁궐과 비슷하게 지어 산의 이름도 송악이라 지었다.

 

북문 좌.우로 성곽이 또렷해 진다.

 

성은 흙으로 쌓았고, 내성. 중성.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성이다. 중성은 내성을 지키기 위해 쌓았으며, 외성은 1233년 강화 동쪽해안을 따라 쌓았다.

 

많이 허물어진 성곽

 

이 외성은 몽골군이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하게 한 가장 중요한 방어시설이자 정부가 39년간 육지로부터 물자를 지원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북문의 성곽

 

고려 원종 11년(1270) 개경으로 수도를 다시 옮기면서 몽고롸 강화조약을 조건으로 성을 모두 헐게 되었다. 조선 전기에 내성이었던 강화성을 축소하여 다시 지었다.

 

북산의 정상이 보이고, 이곳에도 뭔가 시설이 있었을 것 같다.

 

1637년 병자호란 때 청군에 의해 다시 파괴당하였고, 숙종 3년(1677)에 성을 보수하면서 모두 돌로 쌓고 넓혀 지었다.

 

북문으로의 성곽

 

남문인 안파루, 북문인 진송루. 서문인 첨화루와 동문인 망한루가 있으며, 비밀통로인 암문 4개 그리고 수문이 2개 남아 있다.

 

북산 정상에서 본 풍경 - 멀리 들판의 끝에 연미정이 있다.

 

높은 곳에서 망을 보기 위한 장대와 성위에서 몸을 감추기 위한 여장 등의 방어시설도 갖추고 있었으나 여장은 모두 무너졌다.

 

북산에서 동문으로의 성곽

 

현재 성의 동쪽 부분은 없어졌으나, 남북쪽 산자락은 복원 정비되어 있다. 조선 후기 병인양요. 신미양요와 일본 침략에 의한 강화조약을 체결한 수많은 외세침략의 역사적인 현장이다.

 

북산의 정상

 

[강화외성]

강화외성은 고려 23대 고종이 1232년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한 뒤 고종 20년(1233) 해안 방어를 위해 적북돈대로 부터 초지진까지 23km에 걸쳐 쌓은 성이다.

 

멀리 보이는 산이 남산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고종 24년(1237)에 강화외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조선시대에도 비상시에 국왕의 피난처인 도성의 외성으로 광해군 10년(1618)에 보수하여 사용하였다.

 

동문으로의 성곽

 

그러다가 숙종때 병자호란기(1636)에 허물어진 외성을 돌을 이용하여 다시 쌓았고 돈대를 설치하였다.

 

북산으로의 성곽 - 낮은 곳에 암문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영조때 강화유수 김시혁이 비가 오면 성의 흙이 흘러내려 나라에 건의하여 영조 19년(1743)에서 이듬해에 걸쳐 벽돌을 이용하여 다시 쌓았다고 한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성곽의 터

 

2001년 동양고고학연구소에서 실시한 오두돈 주변의 전축성 구간에 대한 지표조사 결과에 의하면,

 

동문을 지나온 남문과 이어지는 성곽

 

뻘층을 기초로 머리돌을 올리고 그 위에 대형석재로 석벽의 중심을 삼고 그 위에 머리돌을 올리고 다시 전돌을 여러 단 쌓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문 - 문루의 강도남문 현판이 있다.

 

이 성은 높이 20척, 폭 5척이며 6개의 문루(조해루, 복파루, 진해루, 참경루, 공조루, 안해루)와 암문 6개소, 수문 17개소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남문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성곽

 

강화외성은 고려 후기 ~ 17 세기 후반 도성의 구조와 축성기법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성 안에서 본 남문(안파루)

 

특히, 이 성은 벽돌로 개축한 전축성이 오두돈 주변(남측)에 남아 있어 수원 화성(사적 제3호)과 더불어 전축성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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