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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기행

강원 양양(3) - 양양진전사지

by 포리시스 2010. 10. 27.

   양양진전사지[襄陽陳田寺址]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산 27 외 3필지의 절터로 강원도기념물 제 52호 이다.
 
   진전사는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건립 연대를 알 수는 없고, 최소한 8세기 말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선종의 대찰로 신라 구산선문의 하나인 가지산문의 개조로 알려진 도의국사(道義國師)가 중국 당으로 유학을 갔다가 821년(헌덕왕 13) 귀국하여 오랫동안 이 곳에서 은거하였다고 한다.

 

[진전사지 오르는 돌계단]

 

   이 사찰은 도의국사(道義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터 주변에서 ‘진전(陳田)’이라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절의 이름이 밝혀졌다고 한다.
 
   이 곳에서 염거화상, 지눌 등이 사자상승(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법이 이어져 전해 감)하였으며 일연도 이 곳에서 체발득도하였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세조 때까지는 건재했던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언제 폐사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법당의 주춧돌이었으려나]

 

   폐사 시기가 <<범우고>>나 <<동국여지승람>>등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16세기경에 이미 폐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진전사지]

 

   전설에 따르면,

   사회 혼란기에 도적떼가 설악산 권금성을 무대로 활동하면서 신흥사와 진전사를 노략질하여 결국 폐사되었다고 하는데, 진전사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예전에 도적굴이었다는 동굴이 남아 있다고 하나 확인해 보지는 못했다.

 

[당간석으로 보여지는 돌]

 

   1974~79년 6차례 단국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 당시 절의 이름을 알 수 있는 '진전'이란 글씨가 새겨진 기와 조각과 연화무늬 수막새, 당초문 암막새, 물고기무늬 기와 조각 등이 출토 되었다.

 

[절터를 지키고 있는 삼층석탑]

 

   지금은 삼층석탑과 석조 부도만 남아 있는데, 삼층석탑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때 훼손. 방치되었다가 1962년 2월 28일 국보 제 122호로 지정된 후 1968년 4월 복원되었고, 같은 연대의 부도 보물 제 439로 지정되었다.

 

[둔전리저수지]

 

   진전사지에서 300여미터 가량 지점에 둔전저수지가 있다. 양쪽 산의 허리를 가로 막은 방죽이 좁은 골짜기에 제법 거창스럽게 자리하고 있어 시원함을 준다.

 

[진전사 오르는 길]

 

   저수지 옆으로 산중턱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가면 법당의 기둥에서 향내가 풍길 것만 같은 새로 건립중인 '진전사'를 만날 수 있다. '진전사지'에서 약 4~5백여 미터 떨어져 있는데, 아직 법당의 내.외부에 단청 작업이 한창이라 공사차량과 인부들 서넛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다.
 
   이 사찰은 조선 1467년까지는 존속하였으나 어느 시기에 폐사되어 일제강점기까지 '둔전사'로 불리어 왔다고 한다. 2005년 6월 이전가지는 폐사지였으나 2005년 6월에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본사 신흥사에서 복원불사를 일부 완공하여 상량식을 마침으로써 비로서 진전사로 거듭나게 되었고, 2009년 3월 30일 전통사찰(제46호)로 지정되었다.

 

[건물 내.외부 작업중인 법당 적광보전]

 

   기록이 없어 진전사지의 옛 절터의 사찰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새로 지어진 이 절은 법당, 종무소, 해우소 등이 있는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절이다.

 

   하지만 절 앞에 세워진 <진전사지 중창복원 계획 조감도>를 보니 방대한 절의 증축이 계속될 것으로 보여진다.

 

[법당과 종무소]

 

   종무소 앞에는 그 옛날 절터의 자리로 여겨지는 여러개의 주춧돌과 터가 남아 있다. 아직은 신자나 방문객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듯 사찰의 경내를 다니는 동안 인부들끼리 '관광객'인가 보다며 서로들 속삭인다.

 

[땔감]

 

   이 절을 찾았던 두서넛 불자들이 스님과 함께 이 절을 지키고 있는 한 마리 백구의 마중을 받으며 차에 오른다. 좋은 말씀을 들으셨는지 신자들의 얼굴색이 무척이나 밝아 보인다. 잘 가라는 스님의 말 솜씨가  친구인 듯 다정다감하다. 뭐 보기는 좋다. ^^

 

[종무소 뒷쪽으로 장독대] 

 

   장독대의 커다란 독이 엎어진 것을 보니 아직은 겨울 채비가 덜 되어 보인다. 뒷 쪽의 산으로 단풍이 내려 오려면 몇 일을 더 걸리겠지만,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로 보아 이 장독대에도 겨울을 준비하는 분주한 내음이 전해지겠다.

 
   아무것도 없는 이 절터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왔던 저 아래 절터의 삼층석탑과 새로 지은 절의 앞쪽 능선에 서 있는 우리의 보물을 소개해야 겠다.
 
   진전사지삼층석탑(陳田寺址三層石塔)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100-2번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국보 제 122호 이다.

 

[진전사지 3층석탑]

 

   탑은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 놓은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날아갈 듯한 옷을 입은 천인상(天人像)이 있으며, 위층 기단에는 구름위에 앉아 무기를 들고 있는 웅건한 모습의 8부신중(八部神衆)이 있다.

 

[위층 기단의 8부신중]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1층 몸돌에는 각기 다양한 모습의 불상 조각들이 있다.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려져 있어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3층 지붕돌 꼭대기에는 받침돌만 남아있을 뿐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다.

 

[아래층 기단의 천인상]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으면서 지붕돌 네 귀퉁이의 치켜올림이 경쾌한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탑 가운데 하나이다. 기단에 새겨진 아름다운 조각과 1층 몸돌의 세련된 불상 조각은 진전사의 화려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국보 표지석과 석탑]

 

   불국사 삼층석탑장중함이 이 탑에서는 아담함으로 바뀌었으며, 불국사 삼층석탑이 중대 신라 중앙 귀족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이 탑은 지방 호족의 새로운 문화 능력을 과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진전사지부도[陳田寺址浮屠]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산 1번지에 있는 도의선사의 묘탑으로 추정되는 부도로 보물 제 439호 이다. 

 

[진전사지부도]

 

   멀리 동해바다가 내다보이는 진전사터 안의 작은 언덕 위에 서 있는 탑으로, 진전사를 창건한 도의선사의 묘탑으로 추정된다. 도의는 선덕왕 5년(784)에 당에서 선종을 이어받고 821년에 귀국하여 설법을 시작하였으나, 당시는 교종만을 중요시하던 때라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이 절로 들어와 40년 동안 수도하다가 입적하였다.

 

[4각 기단과 8각 탑신]

 

   이 부도는 일반적인 다른 부도와는 달리 8각형의 탑신(塔身)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아래부분이 석탑에서와 같은 2단의 4각 기단(基壇)을 하고 있어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문짝 모양의 조각]

 

   2단으로 이루어진 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 모양을 새기고, 그 위로 탑신을 괴기 위한 8각의 돌을 두었는데, 옆면에는 연꽃을 조각하여 둘렀다. 8각의 기와집 모양을 하고 있는 탑신은 몸돌의 한쪽 면에만 문짝 모양의 조각을 하였을 뿐 다른 장식은 하지 않았다. 지붕돌은 밑면이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으며, 낙수면은 서서히 내려오다 끝에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위로 살짝 들려 있다. 
 


   석탑을 보고 있는 듯한 기단의 구조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도의선사의 묘탑으로 볼 때 우리나라 석조부도의 첫 출발점이 되며, 세워진 시기는 9세기 중반쯤이 아닐까 한다. 전체적으로 단단하고 치밀하게 돌을 다듬은 데서 오는 단정함이 느껴지며, 장식을 자제하면서 간결하게 새긴 조각들은 명쾌하다.
 
   일부러 찾아  가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특별한 주변의 볼 거리, 먹 거리도 없다. 하지만 금수강사 구석구석 누비는 마음으로 이 골짜기를 찾았다. 기분만은 참 조오~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