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신라진흥왕순수비 [北漢山新羅眞興王巡狩碑]
북한산 신라진흥왕순수비는 북한산 남쪽 <승가사>의 서남방에 위치한 비봉 꼭대기에 있다. 이 비가 세워진 봉우리로 <비봉>을 뜻함이겠다. 비의 높이는 1.54m, 너비는 0.69m, 두께는 0.16m이며, 신라 제 24대 진흥왕이 순수(巡狩)한 기념으로 세운 비로 국보 제3호 이다. 원래의 비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이 곳에 세워져 있는 비는 문화재청이 2006. 4. 19.에 새로이 복제비를 세운 것이다.
[국보 제3호 북한산진흥왕순수비]
이 비의 부근에 승가사가 있고, 조선 태조 때의 국사였던 무학의 탑비가 있어서 종래 '무학의 비', '도선의 비'로 알려져 왔으나 비석 측면에 1816년(순조 16)과 그 다음해에 완당 <김정희>가 실사내독한 사실이 [此新羅眞興大王巡狩之碑丙子七月金正喜金敬淵來讀, 己未八月三十日李濟鉉龍仁人, 丁丑六月八日金正喜趙寅永同來審定殘字 六十八字]로 기록되어 있으며, 비로소 진흥왕순수비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남방에서 본 비]
지금까지 발견된 4기의 진흥왕순수비[창녕비(561), 황초령비(568), 마운령비(568)] 중 하나라고 한다. 화강암으로 된 이 비석의 형태는 다른 비와는 달리 직사각형으로 가곡된 석재를 사용하여 자연암반 위에 2단의 층을 만들고 세웠다. 비신의 상단에 1단의 촉을 만든 것으로 보아 원래는 개석을 덮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봉에 오르면서 본 비]
비문은 비신을 연마한 후 정면에 12행을 새겼으나 윗 부분은 심하게 마멸되었고 제12행은 판독이 불가능하며, 그 밖에도 자획이 분명하지 않은 곳이 많다. 따라서 1행의 자수도 확실하지 않은나 30자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자체는 육조식의 해서이고 자경은 3cm이다.
[비봉으로 오르는 길에]
글 뜻은 다른 3비의 비문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전반부는 순수의 사적에 관한 것이고, 후반은 수행한 인명을 열기한 듯하다. 비에는 일척간(一尺干 : 伊飡의 별칭)의 고위관등을 가지고 있던 내부지(內夫智)의 이름이 보이며, 또한 남천군주(南川軍主)의 직명도 보이고 있어 신라시대 인물과 관직제도 연구에 참고가 된다.
[비봉 능선에서]
현재 많은 부분이 절단 또는 손상되어 있고, 비신의 뒤쪽에는 무수한 총탄 흔적이 남아 있다. 비문에 명기(明記)되어 있었을 연호 간지(干支)가 마손되어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비봉 아래에서]
진흥왕 16년 왕이 북한산에 순행한 사실이 있으나 이를 곧 비의 건립연대로 보기는 어렵고, 남아 있는 글자의 내용을 검토하면 568년(진흥왕 29) 이후 진흥왕 생존시의 일로 추정된다. <네이버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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