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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행

#경기 강화 #강화향교 #시유형문화재 제34호 #학궁 #강화향교예절교실

by 포리시스 2012. 5. 8.

<향교>는 현유(賢儒)의 위패를 모신 지방 교육기관으로, <강화향교>는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34호이다.

 

강화향교 외삼문

 

이정표를 따라 가다보니 강화여고 건물이 가로 막는다. 좌.우측 확인도 않고 주민에게 물어보니 좌측길로 가란다.

 

외삼문 앞 비석군

 

이내 100여 미터 좁을 길을 지나자 향교 건물이 보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 보았음직한 일이다.

 

외삼문

 

코 앞에 두고 질문이라니,.... ㅠㅠ 향교 앞 우측에는 한참 비의 단을 조성중인 듯 싶다.

 

강화향교

 

기단의 난간석들이 널부러져 있고, 향교를 둘러쌓은 나즈막한 담벼락 덕분에 모든 건물이 시야에 잘 들어온다.

 

강화향교

 

뒤쪽 산 아래에 <강화여중>이 자리하고 있다. 향교 건물은 지역에 따라 건물 양식 등 다소의 차이가 있어 보인다.

 

강화향교

 

대부분의 건물이 뒷쪽에서 앞으로 대성전(문묘), 동.서무, 명륜당, 동.서재, 외삼문 등으로 배치되고 그 외 부속 건물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동재(좌)와 동무(우)

 

대성전(문묘)에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가장 윗쪽에 자리하고, 동.서무에 현유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하는 공간,

 

동재(좌)와 동무(우측 위)

 

명륜당은 글을 배우고 익혔던 강학공간으로, 동.서재는 양반과 서민으로 나뉘어 합숙하던 공간으로 이루어진다.

 

대성전 앞 내삼문

 

강화향교는 고려 1127년(인종 5)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을 위해 고려산 남쪽에 세워졌다가 1232년 갑곶리로 옮겨지고 몽고의 침입으로 서도면으로 이건,

 

중문

 

그 후 강화군으로 옮겨오고 1624년(인조 2)에 강화유수 심열이 동소문 밖의 송악산(북산) 옆에0 복원하였다.

 

내삼문 뒤로 대성전

 

1629년에 명륜당을 세워 완전한 체계를 갖추어 <학궁>이라 하였다.

 

내삼문 뒤로 대성전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서재, 내.외 삼문이 남아 있고, 동.서무는 터만 남아 있다.

 

중문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내부에는 중국의 5성과 송조 6현, 한국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고 하고,

 

강화향교예절교실

 

대성전에는 공자의 위패만 모시고 동.서무에 한국의 여러 유현들을 모셨으나 한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내삼문과 대성전

 

동.서무의 터만 남아 있음이 이유이겠다.

 

서재(좌)

 

향교는 오늘날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고 초하루, 보름에 분향을 한다고 ,....

 

예절교실 뒷 건물

 

하지만, 이 기록이 이후 다소 건축물의 변경이 있었던 듯 싶다. 대성전 앞 좌.우에 동.서무로 보이는 건축물이 있고 앞쪽으로 내삼문을 나오면 좌.우측에 동.서재가 있다.

 

대성전(좌)과 동.서무

 

이후 중문을 나서면 바로 외삼문이다. 동.서재의 사이에 명륜당의 건물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 이전의 기록인 듯 싶다.

 

작은 건물은 해우소가 아닌가 싶다.

 

서재의 담방 밖으로 <강화향교예절교실> 건물이 있고, 그 뒷쪽으로 부속건물 2동이 있는데,

 

서재

 

앞쪽의 건물에는 현재 사람이 거주하는 것으로 보여지고 뒷쪽 건물은 혹여 해우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마도 이 향교와 관련이 있을거라는 생각이다. 내삼문 앞에 세워져 있는 안내문을 밖으로 옮겨 내력을 알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