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현사> 는 1843년(헌종 9) 제주목사 이원조가 조선조 세종 때 한성판윤을 지낸 영곡 고득종을 봉향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1831년(순조 31) 제주목사 이예연이 김진용을 영혜사에 배향하였다가, 1849(헌종 15)에 제주목사 장인식이 김진용을 향현사로 옮겨 병향하였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이 서원. 사우 대동철폐령에 의하여 철사된 후 제주 유생들이 고득종과 김진용의 덕행과 공적이 후세에 깊이 묻혀 잊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오현단 내에 <향현사 유허비>를 세우고 제향하였다.
<고득종, 1388~1452>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제주. 자는 자부, 호는 영곡. 시호는 문충이다. 1413년(태종 13) 효행으로 천거 받아 음직으로 직장이되고, 1414년 친시 을과로 급제하였다.
대호군. 예빈시판관 등을 거쳐 1427년(세종 9) 다시 문과 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동지중추원사와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고, 1448년 도전운사가 되어 충청도와 전라도의 쌀을 평안도로 운반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문장과 서예에 뛰어났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사후에 정문이 세워졌다. 공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경기도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에 영모사 및 오현단 향현사 등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김진용, 1605 ~ 1663>
본관은 광산. 자는 진숙. 호는 명도암. 구좌읍 한동리에서 태어나 처가인 봉개리의 명도암으로 옮겨 살았다.
제주에 유배 온 실학자 이익에게 수학하였다. 1635년(인조 13) 진사시에 합격하여 1643년(인조 21) 숙녕전참봉에 천거되었으나 고향에서 후생을 가르치기로 결심하여 이를 사양하고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1679(효종 10)에 김진용의 건의로 당시 제주목사 이회가 교육을 진흥하기 위하여 고득종의 옛 집터(현 오현단)에 장수당을 건립하고, 장수당에 은거하면서 삼읍(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의 학생들을 훈학하는데 힘썼다.
그로 인해 제주의 유학이 왕성해지고, 풍속이나 교화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후인들은 김진용이 살았던 곳의 이름을 빌어 명도암이라 칭하였다. (출처 : 안내문.다음.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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