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번 다녀온 곳인 듯 한데, 조금은 낮설기도 하다. 아마도 시간이 꽤나 경과되어 그러한 것 같다.
금강산 화암사 일주문
벼화(禾)자와 빛날화(華)자, 그리고 엄할엄(嚴)자와 바위암(巖)자의 글자가 각각 상이하게 기록되어 있어 어느 이름으로 불러야할지 약간 고민해 보았다.
일주문의 현판 - #금강산 화암사
일주문에는 '禾巖寺'라 적혀있고, 사찰의 입구 커다란 바위엔 '華嚴寺'라 쓰여있으니 말이다. 이 사찰의 연혁을 보니 본디 화엄사로 명명되었다.
일주문을 지나 만나게 되는 부도군
오랜 세월 화재로 인한 피해가 거듭되었고, 이후에 화암사로 바뀌었다. 수바위에 전해져오는 쌀이야기로 미루어 화암사가 된 것은 아닌가 싶다.
열반송 - 허백/명조(1561~1647) : 삶과 죽음의 얽매임에서 벗어난 후 사명스님에게 귀의하여 임란에 참가하여 전승을 남긴 후 묘향산 불영대에서 입적
단풍이 많이 내려오기는 하였지만, 이 사찰의 어귀까지는 초록의 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니 며칠은 더 있어야겠다.
오도송 - 퇴옹/성철(1912~1993) : 경남 산청 출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법어로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큰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게 한 정신적인 거인. 십년을 장좌불와하고 4개국을 독파하여 선교에 막힘이 없었고 깨달음의 경지를 한층 높인 눈 밝은 선지식.
그늘진 숲길 옆으로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싯구와 주인공에 대한 기록을 음미해 보며 걸었다.
열반송 - 혜림/향곡(1912~1978) : 그가 지녔던 기용은 대방무외하여 산과 바다를 누르고 한 번 할을 하면 산악이 무너지고 봉을 휘두르면 바다가 뒤집히고 입으로 백억화신을 토해내던 걸림이 없었던 선지식.
싯구 하나 하나 읽다보니 금세 사찰이 가까워졌다. 단풍이 곱게 물들면 풍경이 정말 아름답겠다 싶다.
약사대불 조성 대시주공덕비
주말을 맞아 가족단위, 연인사이, 그룹을 지어 많이들 찾아왔다. 단풍의 적기에 왔더라면 정말 기쁨도 두 배가 되지 않았을까?
열반송 - 나옹/혜근선사(1320~1376) : 젊은날 친구가 죽는 것을 보고 출가한 고려시대 눈 맑은 선지식. 중국으로 건너가 지공을 친견하고 평산처림선사를 만나 인가를 받았다. 평산을 만나 인사를 하자 누구를 만났느냐고 묻자 지공을 만났다고 했다. 지공을 항상 무엇을 쓰더냐 묻자 천검을 쓰고있다고 대답하니 지공의 천검은 그만두고 너의 검 하나를 가져오너라. 스님은 좌구를 가지고 평산선사를 치자 이 도둑놈이 나를 죽인다 소리쳤다.
과거엔 사찰의 규모가 꽤나 컸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여러차례 화재와 전란으로 소실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아래의 내용은 네이버에서 옮겨왔다.
오도송 - 효봉/찬형(1888~1966) : 평남 양덕 출신. 일본 와세다 대학 법학부 졸업. 평양 등지에서 고등법원 판사역임. 치열한 정진 끝에 견성을 체험하고 나서 죽음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체득. 비구.대처 통합종단 초대 종정 역임.
[화암사] 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769년(혜공왕 5) 진표가 창건하여 이름을 금강산 화엄사(華嚴寺)라고 하였다.
오도송 - 성림/월산(1913~1997) : 젊어서 삶과 죽음을 고민하다가 해탈을 얻은 후 집착을 내려놓고 자유인이 되어 많은 사람들 마음 속에 영원한 평화인 안신입명을 깨닫게 한 푸른 눈을 가진 선지식.
사적기에 의하면, 당시 금강산으로 들어온 진표는 금강산의 동쪽에 발연사를, 서쪽에 장안사를, 남쪽에 이절을 각각 창건했는데, 화엄사라고 한 까닭은 이곳에서 <화엄경>을 강하여 많은 중생을 제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열반송 - 동곡/일타(1929~1999) : 깨침을 이룩하기 위해 연비를 하고 훗날 태운 손가락 마다 사리가 출현한 선통을 보였고 삼장에 해박했을 뿐 아니라 선교에도 해안이 번득이었던 특별한 기용을 갖춘 선지식
당시 <화엄경>을 배운 제자 100명 가운데 31명은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갔으며, 나머지 69인은 무상대도를 깨달았다고 한다.
오도송 - 원광/경봉(1892~1982) : 경남 밀양 출신. 깨달음을 얻고부터 일체만물과 더불어 걸림이 없었고 선적 낭만과 풍류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깨달음을 맛보게 한 한국불교 최고의 선승
또 진표는 이 곳에서 지장보살을 친견하고 그 자리에 지장암을 창건하여 이 절의 부속 암자로 삼았다고 한다.
설악무산(1932 ~ ) : 경남 밀양 출생. 현재 설악산 신흥사 조실 시인. 그가 지닌 기용은 때론 산과 바다를 누르고 사람의 마음에 해와 달을 뜨게도 한다.
그 뒤 941년(태조 24) 월영암을 창건했으며, 1401(태종 1) 지장암을 동쪽으로 옮기고 미타암으로 이름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