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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기행

호랑이와 용처럼 용맹하게 고장을 지키겠다는 뜻을 가진 보루, 호룡보루

by 포리시스 2026. 1. 16.

호룡보루는 호랑이와 용처럼 용맹하게 고장을 지키겠다는 뜻을 가진 보루로, 남북 간 이념 대결로 인해 무력충돌로 치닫던 우리나라의 아픈 현대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호룡보루, 향토수복기념비 - 문화재 안내문

 

1949년 광복 이후 이념 갈등이 격화되면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자 치안 유지를 위해 장수경찰서 산서지서 양쪽에 축조하였다.

 

호룡보루

 

서쪽보루는 한국전쟁 때 무너졌고, 지금은 동쪽 보루만 남아 있다.

 

호룡보루

 

하부에는 방어를 위해 성벽처럼 원통형 석축을 쌓고 총을 쏠 수 있도록 여러 개의 작은 구멍을 냈다. 상부에는 주변 감시를 위해 육각형 건물을 세웠는데 1999년에 복원한 것이다. 보루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돌이나 콘크리트 따위로 튼튼하게 쌓은 구축물이다. <안내문>

 

 

이 시설물은 남북 분단 후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하던 시기에 공산당 세력의 만행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축조한 보루이다.

 

내부에 망루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석재를 사용하여 벽체를 축조하였으며, 벽체 중간마다 총구를 내었는데, 상·중·하단에 각각 4개의 총구를 엇갈리도록 설치하여 사방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였다.

 

향토수복기념비

 

한국전쟁 직후 향토방위대가 이곳에서 경찰과 함께 지리산 빨치산에 대적해 전투를 벌여 승리를 거두는 등 광복 이후 무력 충돌로 치닫던 이념 대결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국가유산포털>

 

 

[향토수복 기념비]

1950년 6.25동란의 동족상잔으로 붉게 물들었던 조국강토가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에 의하여 그해 9월 26일 수복되었으나 우리 고장 산서면 일대는 패잔공비에 의하여 양민이 학살되고 밤낮없이 재물을 약탈당하는 등 갖은 만행으로 말미암아 민생은 전율과 도탄에 빠졌다.

 

근대문화유산 표식

 

이를 보고 분연히 일어선 100여 명의 피 끓는 의용동지들은 1950년 12월 3일 마침내 향토수복방위대를 조직하고 치밀한 작전계획을 세운 다음 류동렬, 이근우 두 분의 적극적인 지원 요청에 의해 파견된 경찰병력 50여명과 합세하여 수차에 걸친 크고 작은 소탕전에서 공비 70여명을 사살 또는 생포하고 약 1,000여명을 격퇴 소탕하여 우리 고장의 안녕을 되찾고 평화로운 삶의 터전을 굳히게 되었다.

 

호룡보루

 

안타깝게도 치열했던 공비 소탕전 중 열다섯의 경찰관과 무명용사가 희생되었으나, 조국을 위해 꽃다운 청춘을 장렬히 산화한 그들의 헌신은 불멸의 신화가 되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본 향토수복비를 2003년 12월 8일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 <안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