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룡보루는 호랑이와 용처럼 용맹하게 고장을 지키겠다는 뜻을 가진 보루로, 남북 간 이념 대결로 인해 무력충돌로 치닫던 우리나라의 아픈 현대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1949년 광복 이후 이념 갈등이 격화되면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자 치안 유지를 위해 장수경찰서 산서지서 양쪽에 축조하였다.

서쪽보루는 한국전쟁 때 무너졌고, 지금은 동쪽 보루만 남아 있다.

하부에는 방어를 위해 성벽처럼 원통형 석축을 쌓고 총을 쏠 수 있도록 여러 개의 작은 구멍을 냈다. 상부에는 주변 감시를 위해 육각형 건물을 세웠는데 1999년에 복원한 것이다. 보루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돌이나 콘크리트 따위로 튼튼하게 쌓은 구축물이다. <안내문>

이 시설물은 남북 분단 후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하던 시기에 공산당 세력의 만행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축조한 보루이다.

석재를 사용하여 벽체를 축조하였으며, 벽체 중간마다 총구를 내었는데, 상·중·하단에 각각 4개의 총구를 엇갈리도록 설치하여 사방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국전쟁 직후 향토방위대가 이곳에서 경찰과 함께 지리산 빨치산에 대적해 전투를 벌여 승리를 거두는 등 광복 이후 무력 충돌로 치닫던 이념 대결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국가유산포털>

[향토수복 기념비]
1950년 6.25동란의 동족상잔으로 붉게 물들었던 조국강토가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에 의하여 그해 9월 26일 수복되었으나 우리 고장 산서면 일대는 패잔공비에 의하여 양민이 학살되고 밤낮없이 재물을 약탈당하는 등 갖은 만행으로 말미암아 민생은 전율과 도탄에 빠졌다.

이를 보고 분연히 일어선 100여 명의 피 끓는 의용동지들은 1950년 12월 3일 마침내 향토수복방위대를 조직하고 치밀한 작전계획을 세운 다음 류동렬, 이근우 두 분의 적극적인 지원 요청에 의해 파견된 경찰병력 50여명과 합세하여 수차에 걸친 크고 작은 소탕전에서 공비 70여명을 사살 또는 생포하고 약 1,000여명을 격퇴 소탕하여 우리 고장의 안녕을 되찾고 평화로운 삶의 터전을 굳히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치열했던 공비 소탕전 중 열다섯의 경찰관과 무명용사가 희생되었으나, 조국을 위해 꽃다운 청춘을 장렬히 산화한 그들의 헌신은 불멸의 신화가 되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본 향토수복비를 2003년 12월 8일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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