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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기행

키가 크고 힘이 센 제주 여성신에 관한 설화가 담긴, 제주돌문화공원

by 포리시스 2026. 2. 13.

<제주돌문화공원> 관람기이다. 안내도를 보니 관람 1, 2, 3코스가 있는데, 3코스를 둘러보지 못했다. TV예능프로에도 방송이 되었던 하늘연못이 있다.

 

제주돌문화공원 매표소

 

잔잔한 호수 위에 비추는 반영,.....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의 아름다움을 얻어감이 아닌가 싶다. 담아온 돌이 너무 많아 전시관 외부와 내부로 나누었다.

 

공원 안내도

 

이번 글은 제주돌문화공원 밖의 관람 내용이다. 쉴 공간이 많다. 나름 간식을 준비해 와 쉬면서 가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매표소를 들어서면서

 

이곳 제주도는 설문대할망이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제주도의 탄생설화 <설문대할망>의 이야기를 옮겨왔다.

 

박물관과 하늘연못 이정표

 

[ 정의 ]

바다 속의 흙을 삽으로 떠서 제주도를 만들었다는 키가 크고 힘이 센 제주 여성신에 관한 설화.

 

녹음이 지면 멋진 터널이 만들어지겠다.

 

[ 줄거리 ]

태초에 탐라에는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크고 힘이 센 설문대할망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누워서 자던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 앉아 방귀를 뀌었더니 천지가 창조되기 시작했다.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물장오리오름을 말함이겠다.

 

불꽃 섬은 굉음을 내며 요동을 치고, 불기둥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할머니는 바닷물과 흙을 삽으로 퍼서 불을 끄고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날라 부지런히 한라산을 만들었다.

 

전설의 통로 옆 나무 - 공원 10경중 9경이다.

 

한 치마폭의 흙으로 한라산을 이루고 치맛자락 터진 구멍으로 흘러내린 흙들이 모여서 오름들이 생겼다.

 

전설의 통로

 

또 할망이 싸는 오줌발에 성산포 땅이 뜯겨 나가 소섬이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몸속에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서 풍요로웠다. 탐라백성들은 할머니의 부드러운 살 위에 밭을 갈았다.

 

모자상

 

할머니의 털은 풀과 나무가 되고, 할머니가 싸는 힘찬 오줌 줄기로부터 온갖 해초와 문어, 전복, 소라, 물고기들이 나와 바다를 풍성하게 하였다.

 

박물관 옥상

 

그때부터 물질하는 잠녀가 생겨났다. 할머니는 헌 치마 한 벌밖에 없었기 때문에 늘 빨래를 해야만 했다.

 

하늘연못

 

한라산에 엉덩이를 깔고 앉고, 한쪽 다리는 관탈섬에 놓고, 또 한쪽 다리는 서귀포시 앞바다 지귀섬에 놓고서, 성산봉을 빨래바구니 삼고, 소섬은 빨랫돌 삼아 빨래를 했다.

 

호수의 연인을 담는 작가님을 담는 나

 

가끔은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워 발끝은 바닷물에 담그고 물장구를 쳤다.

 

맑은 하늘이면 좋았을 걸

 

그때마다 섬 주위에는 하얀 거품이 파도와 물결을 이루었고, 몸을 움직이고 발을 바꿀 때마다 거대한 폭풍처럼 바다가 요동쳤다.

 

산정상에 떠 있는 듯한 호수

 

한라산에서 엉덩이를 들고일어나 한 발로 한라산을 딛고, 또 한 발로 성산봉을 딛고, 관탈섬을 빨랫돌 삼으면, 세상은 또 한 번 다른 세상으로 바뀐 것 같았다.

 

풍경이 좋다

 

하지만 이러한 풍요로움의 근원인 설문대할망도 거대함으로 인해 불행했다. 할머니는 키가 너무 커서 옷을 제대로 입을 수가 없었다.

 

바람이 조금 아쉬웠다

 

터지고 헌 치마를 입고는 있었지만 고래굴 같은 자신의 음문을 가릴 수 없었다. 할머니는 항상 탐라백성들을 위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 주고 싶었다.

 

또 오고 싶은 곳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백성들에게 자신의 속옷 한 벌만 만들어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했다.

 

돌민속품 야외전시장

 

할머니의 속옷을 만드는 데는 명주 100통이 필요했다. 탐라 백성들이 명주를 다 모아도 99통밖에 안 되었다. 99통을 베어 짜서 속옷을 만드는데, 속옷 한 벌을 다 만들지 못했다.

 

돌민속품 야외전시장

 

인간 세상에 명주가 별로 없을 때라서, 사람들은 모자람과 안타까움 탓에 속이 상했고, 할머니는 음문이 살며시 드러난 미완성의 속옷에 부끄럽고 화가 났다.

 

선사.탐라시대 돌문화지역의 대나무숲

 

할머니는 육지까지 다리 놓는 걸 포기해 버렸고, 그때부터 제주는 물로 막힌 섬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돌문화

 

할머니는 자신의 키가 큰 것을 늘 자랑하였다. 용연물이 깊다고 하기에 들어섰더니 발등에 겨우 닿았고, 홍리물은 무릎까지 올라왔다.

 

고려시대 돌문화

 

그러나 한라산 물장오리물은 밑이 없는 연못이라 나오려는 순간 빠져죽고 말았다.

 

 

할머니의 죽음과 오백장군의 이야기가 결합된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있다. 설문대할망은 오백장군을 낳아 한라산에서 살고 있었다.

 

기름틀(봉애기) - 기름짤때 사용하는 기구

 

식구는 많고 가난한데다 마침 흉년까지 겹쳐 끼니를 이어갈 수 없었다. 할머니는 아들들에게 밖으로 나가 양식을 구해 오라고 했다.

 

고려시대 돌문화

 

오백 형제들은 모두 양식을 구하러 나가고, 할머니는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제주민간신앙

 

백록담에 큰 가마솥을 걸고 불을 지핀 다음, 솥전 위를 걸어 돌아다니며 죽을 저었다. 그러다가 그만 발을 잘못 디디어 어머니는 죽 솥에 빠져죽어 버렸다.

 

제주민간신앙

 

그런 줄도 모르고 오백 형제는 돌아와서 죽을 먹기 시작했다. 여느 때보다 죽 맛이 좋았다.

 

돌민속품 야외전시장 - 멀리 박물관이 보인다

 

맨 마지막에 돌아온 막내가 죽을 뜨려고 솥을 젓다가 이상한 뼈다귀를 발견했다. 다시 살펴보니 어머니의 뼈가 틀림없었다.

 

 

동생은 어머니의 고기를 먹은 불효한 형들과 같이 있을 수 없다고 통탄하며 멀리 한경면 고산리 차귀섬으로 달려가 한없이 울다가 그만 바위가 되어 버렸다.

 

 

이것을 본 형들도 그제야 사실을 알고 여기저기 늘어서서 한없이 통곡하다가 모두 바위로 굳어졌다.

 

 

그러니 영실(靈室)에는 499장군이 있고, 차귀섬에 막내 하나가 외롭게 있다.

 

제주전통초가

 

[ 분석 ]

설문대할망은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여신이다.

 

훈장묘

 

제주도 각지에는 설문대할망 이야기가 지역의 지형을 설명하는 이야기로 각색되어 향토색을 반영하며 전승되어 왔다.

 

훈장묘 - 문인석, 동자석이 있고, 상석 옆에 벼루 등이 놓여 있는 제주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묘이다.

 

설문대할망이 가장 보편적인 명칭이지만, 옛 문헌에는 ‘사만두고(沙曼頭姑)’, ‘선마고(詵麻姑)’ 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영실중앙무대 앞 하루방

 

민간에서는 ‘선문데할망, 설문듸할망, 설만두할망, 설명지할망, 세명주할망’ 등 다양한 명칭으로 전승되어 왔다.

 

 

설문대할망은 물속에서 흙을 퍼 올려 제주도를 만들었으므로 창조신적 면모가 두드러진다.

 

 

그러므로 <설문대할망신화>는 창세신화이며, 천지창조의 거인신화라 할 수 있다.

 

 

신화 전승의 유형으로 볼 때 <설문대할망신화>는 구전산문신화로서 문헌으로 기록되지도 않고,

 

어머니를 그리는 선돌

 

제의나 신앙에서도 제외된 채 단순히 구두 전승만을 지속하고 있는 천지창조신화라 할 수 있다.

 

 

[ 특징 ]

신화의 존재 양상을 살펴보면, 배설물로 지형을 만들거나 성기로 사냥을 하는 등의 형태로 설문대할망이 희화화되거나 죽을 끓이다가 빠져 죽는 비극적인 존재로 그려지기도 한다.

 

오백장군 군상

 

그리고 제주의 뱃사람들은 설문대할망을 그들을 지켜 주는 수호신으로 믿었음을 보여 준다.

 

우측으로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상징탑이 있다

 

이와 더불어 드문 사례이기는 하지만 표선리 당개 포구의 해신당에서는 설문대할망이 해녀들을 보호해 주고 부(富)를 가져다주는 당신(堂神)으로 나타나며,

 

오백장군 군상

 

고봉선(高奉仙) 심방 구송의 <산신굿무가>에도 설문대할망을 섬기는 사설이 포함되어 있어 무속신앙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출처 네이버>

 

 

[훈장묘]

제주시 공설묘지 내에 매우 특이한 묘 하나가 있다. 약 100여 년 전의 묘이다. 최근 세워진 묘비에는 ‘서계 안용식 거사의 묘 단기 4255년 6월 26일 순명(西溪居士安鏞植之墓檀紀 四二五五 六月二十六日 順命)’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묘에 세워진 무릎을 꿇고 앉은 동자석과 모자를 쓰고 있는 문인석은 제주도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가 아니며 상석 옆에 놓여진 돌벼루, 향석, 묘자리 또한 특이하다.

 

 

동자석의 형태나 돌벼루 등을 볼 때 글을 가르치던 이의 무덤으로 여겨진다. 제주도 내의 유일하고 귀중한 석상으로, 한 때 동자석과 문인석은 도난을 당해 문인석은 수개월 만에 제자리에 돌아왔지만 동자석 2기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 두거리집 ]

건물 두 채(‘거리’라 불림)가 정면 배치된 ‘마주 앉은 형’과 밖거리가 옆으로 ‘ㄱ자’형으로 배치된 ‘모로 앉은 형’이 있다.

 

어머니의 방 - 아이들을 위한 시설인 듯 싶다

 

마주 보게 배치된 집은 방위에 따라 여러 명칭이 있다. 출입로인 ‘올래’에서 보아 안쪽과 바깥쪽에 배치되어 있으면 안채를 ‘안거리’, 바깥채를 ‘밖거리’라고 부른다.

 

오백장군 군상

 

건물이 동서로 배치되면 ‘동녘거리’, ‘서녘거리’라 부르고, 남북으로 되어 있을 때는 ‘우녘거리’. ‘알녘거리’라 부르기도 한다.

 

우측으로 죽솥을 상징한 연못이다.

 

두거리집에는 부엌이나 고팡이 하나씩만 있어 한 가족 단위가 되기도 하나, 이 보다는 안거리와 밖거리에 각각 따로 마련되어 있어 두 가족이 침식과 경제 단위를 달리하기도 한다.

 

주차장 가는 길에

 

안거리와 밖거리에는 저마다 상방(마루), 구들(방), 정지(부엌), 고팡(창고)이 있지만,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일(상방-문전신), 제사를 준비하는 일(정지 –조왕신), 제수용 제수를 보관하는 일(고팡-안칠성) 등은 안거리에서만 할 수 있다. 그리고 안거리에 속한 안뒤에만 밧칠성(칠성눌)이 있다.

 

갈치구이

 

제주도는 아들이 결혼하면 안거리에는 부모 세대가, 밖거리에서는 아들 세대가 산다. 그리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부모 세대가 밖거리로, 자식 세대가 안거리로 들어간다.

 

맛나게 먹었던 해장국 한 그릇

 

친족의 일, 보조, 공동재산권, 당에 가는 일들 역시 안거리에 사는 사람들만 하는 등 안거리는 밖거리에 비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밖러리에 살던 자식이 안거리로 옮겨 산다는 것은 그 집안을 주도하는 세대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