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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행

영조대왕의 사모곡이 스며있는 곳, 고령산 보광사

by 포리시스 2026. 5. 25.

[ 영조대왕의 사모곡이 스며있는 곳, 고령산 보광사 ]

 

불기 2570년. 부처님 오신날이다. 어느 사찰을 방문해 볼까 생각하다 파주 보광사로 정했다. 차로 약 50여 분을 달려다.

 

아래쪽 일주문 - 방문 차량이 엄청나다.

 

사찰의 가까이에 다다랐음인지 이미 많은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짐작은 했던터라 1.3km의 거리. 갈까 말까 고민하다 주변에 주차를 하고 걷기로 했다.

 

만년고찰고령산보광사

 

사찰의 입구에서 많은 분들이 교통정리를 해 주고 계신다. 그 넓은 주차장에도 빼곡하게 차량들이 들어서 있다.

 

윗 길로 가면 나오는 일주문 - 원래의 길이였던 것 같다.

 

제법 무더위가 느껴진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맞으며 사찰의 숲길에 놓여진 테크길을 걸었다.

 

그늘 숲 아래 작은 계곡

 

작은 계곡에 시원스레 드리워진 그늘 숲 아래 어딘가의 작은 새소리를 들으니 절로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 같다.

 

사찰에 오르는 숲 속 테크길이다.

 

어렴풋이 민요의 한 가락 소리가 들려온다. 사찰에서 스며나오는 듯 싶다. 이 좋은 소리를 멀리하고 벌써 내려오시는 분들도 있다.

 

담쟁이넝쿨이 참 많이도 자랐다.

 

대웅보전의 앞 마당에 드리워진 연등 아래 무대가 있다. 은은하게 울려주는 대금 소리에 더위를 식혀 보았다.

 

금강문

 

불교음악을 전공해 보고자 한다는 기타리스트의 공연과, 트롯가수의 열창무대가 이어졌다.

 

대금 공연

 

사찰을 둘러보기로 했다. 단청의 색상이 많이 퇴색되어 있는 ‘대웅보전’,... 눈으로 보아도 굉장히 오래된 건물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대웅보전 앞 무대

 

건물 한쪽 벽면에 커다란 유리 시설을 한 것으로 보아 중요한 문화재를 보호하고 있음이겠다.

 

저 아래에서 들렸던 소리의 주인공인 듯 싶다.

 

사찰 뒤쪽 고령산 등산로 입구에는 곧게 뻗은 전나무 군락지가 있다. 이 쉼터에서 사찰을 내려다보며 쉬어가도 참 좋은 곳이다.

 

많은 불자님들의 예불

 

이 곳 사찰이 품고 있는 문화재에 대한 내용은 현장 안내문에서 옮겨왔다. 너무 많은 분들이 방문하여 사실 다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불교 음악 전공하시는 기타리스트

 

[ 보광사 대웅보전 -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

보광사는 통일신라 진성여왕 8년(894)에 왕명으로 도선국사가 지은 사찰이다.

 

소원을 응원합니다.

 

고려 고종 2년(1215)과 우왕 14년(1388)에 다시 지었으나, 임진왜란(1592)으로 모두 불타 없어졌다.

 

목조석가여래좌상 - 우에서 두번째

 

조선 광해군 14년(1622)에 다시 지었으며,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수리를 하였고 새로 건물을 짓기도 하였다.

 

작은 마당에 내방객분들이 가득했다.

 

영조(재위 1724~1776) 대에는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복을 비는 절로 삼기도 하였다.

 

영조대왕읭 친필로 확인된다는 '대웅보전' 현판

 

보광사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트롯 가수님

 

양쪽 옆면과 뒷면은 모두 두꺼운 나무판으로 벽을 만들었는데, 보통의 벽이 회벽인데 비해 특이하며 양 옆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트롯 가수님

 

앞면 3칸은 모두 4짝의 문을 달았으며 이 문들은 모두 열어서 들어올릴 수 있도록 짜여졌다.

 

보광사 대웅보전 앞 풍경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앞.뒷면에는 각 칸에 3구씩, 양쪽 옆면에는 각 칸에 2구씩 배치되었다.

 

명부전 앞 무영탑

 

그 수법이 매우 정교하고 화려하게 조각되어 조선 후기의 장식적인 성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만세루 앞 정원 풍경

 

또한 정면의 기둥위에는 용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내부에는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이 모셔져 있다.(현장 안내문)

 

'고령산보광사' 현판

 

[ 파주 보광사 지장시왕도 -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

지장시왕도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과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열 명의 왕(시왕)을 그린 불화이다.

 

'만세루' 현판

 

조선 순조 2년(1802)에 제작되어 보광사의암자인 수구암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19세기 전반 경기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경욱과 채호, 경은, 석윤 등의 화승(그림을 그리는 승려)이 그렸다.

 

만세루 뜰에서 본 '불이문'과 '종각'

 

머리에 투명한 두건을 쓴 지장보살은 오른손은 어깨높이로 들어 투명한 보주를 들고 왼손은 무릎 중간에 놓은 채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다.

 

사찰 뒤쪽의 전나무 숲 - 몸과 마음이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라 여긴다.

 

시왕들은 대부분 머리에 관을 쓰고 손에 홀(제례 때의 의식의 순서를 적은 글)을 들고 있는데, 예외적으로 염라대왕은 책이 올려진 관을 쓰고 오도전륜대왕은 새 날개 모양의 투구를 쓰고 있다.

 

산책로의 불자님

 

몇몇 왕들은 마치 이야기를 나누듯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길쭉한 얼굴에 가는 눈, 코, 입과 작은 입술 등에서 18세기 후반 ~ 19세기 초반 경기도 지역 불화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으며,

 

석불전

 

불화를 그린 화승, 불화가 제작된 시기와 봉안된 곳이 명확하게 밝혀져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현장 안내문)

 

멀리 안심당

 

[ 어실각 - 御室閣 ]

“영조대왕의 사모곡이 스며있는 곳”

조선 제19대 숙종의 후궁이며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 동이의 위패를 모신 전각이다.

 

보광사 풍경

 

숙빈 최씨는 7세에 궁에 들어가 궁녀가 된 후 숙종의 승은을 받아 숙빈에 봉해지고 1694년(숙종 20) 영조를 낳았다.

 

사찰 뒤 전나무 숲

 

어실각은 1740년(영조 16) 보광사를 숙빈 최씨의 묘소인 소령원의 기복사찰로 삼으면서 건립되었다.

 

영각전 불화

 

건물은 정면, 측면 모두 1칸 규모의 사모지붕 건물로 어실각 안에는 숙빈 최씨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영각전' 현판

 

어실각 앞쪽에 영조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300년 된 향나무가 있다.

 

'응진전'과 '대웅보전' 그리고 멀리 '영묘암'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시고 있는 ‘어실각’과 그 앞에 서 있는 향나무를 보며 드라마 ‘동이’의 이야기를 잠시 되뇌어 보았다.

 

대웅보전 앞 마당

 

[ 파주 보광사 동종 ]

파주 보광사 동종은 조선 후기 종을 만드는 장인 중 가장 솜씨가 좋았던 승려 천보가 1643년(인조 12)에 제작한 작품이다.

 

보광사 풍경

 

이 동종은 파주 보광사에서 사용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사찰 풍경

 

원래의 봉안 사찰을 떠나 옮겨지는 경우가 많은 다른 동종들과 달리 보광사에서 그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며 잘 보전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이다.

 

대웅보전

 

사찰의 동종은 일반적으로 범종이라고 부른다. 예불 시간을 알려주거나, 대중을 한 곳에 모이게 하며, 또는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한다.

 

사찰 풍경

 

장엄하게 울리는 종소리는 종교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하여 이 소리를 듣는 사람에게 자신이 행한 악한 행위를 뉘우치게 하거나, 깨달음을 얻게 해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안심당

 

또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듯 부처님의 가르침이 온 세상에 펼쳐진다는 뜻도 담겨 있다.

 

종각 앞 풍경

 

동종의 꼭대기에는 종을 매다는 고리인 ‘종뉴’가 있는데, 두 마리 용이 하나의 몸으로 이어져 머리를 반대로 돌리고 있다.

 

남사당 사물놀이패

 

몸통에는 다채롭고 아름다운 문양을 장엄하였는데, 윗부분에는 연꽃잎을 형상화한 연판무늬가,

 

남사당 사물놀이패

 

그 아래로는 내 개의 사다리꼴 연곽(종신의 사방에 붙어 있는 9개의 연꽃 장식으로,

 

남사당 사물놀이패

 

한국 동종에서만 보이는 고유한 특징)을 두었고, 사이사이에 4구의 보살상과 범자문(인도 산스크리트어 문자로 된 불교의 진언)을 장식하였다.

 

남사당 사물놀이패

 

아랫부분에는 구름 사이에서 노니는 용과 함께 보광사가 임지왜란으로 황폐화되자 승려들이 힘을 합쳐 사찰을 다시 일으키는 과정이 자세히 적혀 있으며,

 

남사당 사물놀이패

 

아울러 1634년 무게 300여 근을 들여 동종을 제작한 사실과 동종 조성에 참여한 많은 후원자를 비롯해 장인 등이 기록되어 있다.

 

대웅보전 앞 풍경

 

파주 보광사 동종은 안정적인 균형미를 갖추고 역동적인 조각과 생동감이 있는 장식을 보여주는 17세기 동종 중에서도 최고의 수작으로 손꼽힌다.

 

남측면 판벽화

 

또한 동종을 조성할 당시의 사회상도 알 수 있어 역사적. 학술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다.(현장 안내문)

 

남측면 판벽화

 

아래 보광사에 대한 창건 자세한 내용과 성보문화재 등에 대한 설명을 사찰의 홈페이지에서 옮겨 왔다.

 

남측면 판벽화

 

[ 보광사의 창건 ]

보광사는 신라시대인 894년(진성여왕 8년) 왕명에 따라 도선국사(道詵國師)가 국가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창건하였다.

 

남측면 판벽화

 

고려시대인 1215년(고종 2년) 원진국사가 중창을 했으며, 법민대사가 목조불보살상 5위를 조성하여 대웅보전에 봉안하였다.

 

북측면 판벽화

 

1388년(우왕 14년)에는 무학왕사가 중창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1622년(광해군 4년)에 설미, 덕인 두 스님이 법당과 승당을 복원하고 도솔암을 창건하였다.

 

북측면 판벽화

 

1634년(인조 12년)에 범종( 현 숭정칠년명동종) 봉안 불사가 이루어졌다. 1667년(헌종 8년) 지간, 석련 두 스님이 대웅보전, 관음전 등을 재건하는 등 절을 중수하였다.

 

북측면 판벽화

 

[보광사의 재건]

1740년(영조 16년)에는 보광사 인근에 숙종의 후궁으로 영조 임금을 낳은 숙빈 최씨의 묘인 소령원의 능침사찰이 되면서 대웅보전과 광응전을 중수하고 만세루를 창건하였다.

 

대웅보전 뒤 판벽화

 

1863년(철종 14년)에는 쌍세전, 나한전, 큰 방, 수구암 등을 새로 짓고, 지장보살과 시왕상, 16나한상 등 각 전각의 탱화 등을 나한전과 쌍세전에 봉안하였으며,

 

대웅보전 뒤 판벽화

 

1898년(광무 2년)에 인파 스님이 상궁 천시 등의 지원을 받아 대웅보전과 만세루를 중수하고 그 후 순빈 엄씨와 상궁 홍씨의 시주로 단청하는 등 절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대웅보전 뒤 판벽화

 

근대에 들어서는 6.25 한국전쟁 때 별당 등 일부 전각들이 소실되었으나 이 후 복원불사가 이루어졌고, 1957년에 수각을, 1973년에 종각을 세웠다.

 

대웅보전 뒤 판벽화

 

1981년에는 거대한 호국대불을 세우고 1994년에 지장전과 관음전을 새로 지었다.

 

대웅보전 뒤 판벽화

 

[목조석가여래좌상]

대웅보전에 모셔진 다섯 분의 부처님 중 본존으로 높이 106cm, 어깨폭이 68cm이다. 고려 1215년(고종 2년) 원진국사가 중건할 당시 법민대사가 목조불보살상 5위를 봉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실각

 

본존인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좌상과 아미타여래좌상으로 이루어진 삼세불과 그 옆 협시불로 자씨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이 입상으로 모셔져 있다.

 

영조대왕이 심은 향나무

 

[ 대웅보전 편액 ]

가로 152cm, 세로 40cm 크기의 목판에 양각으로 조각하였다. ‘甲子中秋 玉澗書’라는 관지가 있으며, 글자의 구조가 단정하고 필선이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영조의 친필로 전해진다.

 

어실각 내 숙빈 최씨 신위

 

[ 숭정칠년명동종 - 국가지정문화재(보물) ]

대웅보전 앞에 있는 이 범종은 1634년(인조 12년) 승려 천보와 상륜, 경립 등에 의해 조성되었다.

 

어실각과 향나무

 

이 종은 조선 후기 범종 양식을 갖춘 중형 범종으로 명문에 의하면 미지산 설봉자가 희령, 경립과 함께 제작하였다고 적혀 있으며, 중종장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산신각의 불자님들

 

전체 높이 98.5cm, 입지름 63cm의 중형 종으로서, 전체적으로 푸른 녹빛이 감돌고 입체감과 안정감이 있다.

 

보광사 동종

 

이 종은 우리나라 종의 특징인 음통(音筒)이 없는 대신 중국 종의 특징인 두 마리의 용으로 표현된 종을 거는 용뉴가 있다.

 

보광사 동종

 

[ 대웅보전 외부 판벽화 ]

전각의 벽체는 흙이나 회를 바르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벽체는 모두 판자를 끼운 판벽이다. 판벽은 회벽에 비해 내구성이 떨어져 그곳에 그려진 벽화들의 수명이 오래가지 않는다.

 

남사당 줄타기 공연 - 예전에 공연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이 벽화는 짧은 내구성에도 불구하고 남측 면에 불교의 호법선신인 위태천을 그린 ‘위태천도’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동자의 모습을 묘사한 ‘기사문수동자도’, ‘금강역사도’ 등 3점,

 

줄타는 사람을 '어름'이라 한다.

 

동측 면에 ‘용선인접도’, ‘괴석도’, ‘대호도’, ‘노송도’, 연화화생도‘ 등 5점,

 

부자가 함께,....

 

북측 면에 선재동자와 함께 그려진 ’백의관음도‘ 6개의 상아를 가진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동자를 표현한 ’기상동자도‘ 등 2점을 포함해 모두 10점이 남아있다.

 

얼쑤~~~

 

[ 대웅보전 - 大雄寶殿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3호이다.

남사당 사물놀이패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모신 본당으로 지금의 건물은 1740년(영조 16년)경 거의 새롭게 중건 되었다.

 

만세루 풍경

 

높게 쌓은 석축기단 위에 서향으로 앉은 다포계양식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에 기품이 장중한 건물로 마당 건너 만세루와 마주보고 있다.

 

불자님

 

주춧돌에 맞춰 자연스럽게 깎아 세운 배흘림기둥, 그 위에 안초공을 두어 창방과 평방머리를 감싸고 있다.

 

부도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중앙에는 평반자를, 측면에는 빗반자를 두었다. 단청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일주문 풍경

 

[ 어실각 - 御室閣 ]

대웅보전 오른편 위쪽에 있으며 영조의 생모인 숙빈최씨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사찰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만난 녀석,.... 섬초롱꽃인 듯 싶다.

 

어실각 바로 앞에 영조가 생모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심었다는 향나무가 자라고 있어 영조의 애틋한 효심을 엿볼 수 있다.(보광사홈피)

 

섬초롱꽃

 

독특한 문화재를 품고 있는 사찰이다. 영조대왕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가까이에 계신분. 주변을 여행하시는 분들이라면 사찰의 문화재도 둘러보고 전나무 숲에서 잠시 몸과 마음을 쉬어 가심도 참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