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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기행

강원 강릉(2) - 오죽헌(1)

by 포리시스 2010. 5. 11.

   오죽헌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위치한 보물 제165호 이다.

 

[오죽헌의 정문과 매표소]

 

[율곡선생 동상]

 

   정문을 지나면서 우측으로 율곡 선생의 동상이 있다. 앞 쪽에 '견득사의 - 이득을 보거든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글이 잘 다듬어진 표지석에 새겨져 있다. 깊이 되새겨 봄직한 글이다.

 

[자경문]

 

   광장을 지나자 오죽헌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스스로 경계를 하라는 뜻 같은데,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율곡 선생이 지은 가사로 자경별곡 []이 검색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율곡이 1576년(선조 9) 해주의 석담()에 은거하고 있을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서곡()을 비롯하여, 1곡()은 봉친(), 2곡은 군신(), 3곡은 형제(), 4곡은 남녀(), 5곡은 장유(), 6곡은 사사(), 7곡은 교우(), 8곡은 목족(), 9곡은 상장(), 10곡은 제사(), 11곡은 혼례(), 12곡은 혼가의식(), 13곡은 접빈객(), 14곡은 교린()이며, 그 밖에 우접()·신언()·거가()·질욕()·독서()의 5절로 이루어진 총 986구에 달하는 장편 가사로 4·4조가 주조를 이룬다.

 

   내용은 아전의 풍속을 바로잡기 위한 교훈을 가사체로 읊은 노래이다.

 

   작자의 시문집()인 《율곡전서()》에 수록되어 전하는 가사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다.

 

   "통분다 통분다, 불학무식 통분다, 천성으로 삼긴 심성, 물욕으로 변타 말가, 이루가치 발근 눈의, 보 거시전곡이오…".

 

 

   오죽헌은 우리나라 어머니의 사표가 되는 신사임당이 태어나고 또한 위대한 경세가요 철인이며 정치가로서 구국애족의 대선각자인 율곡 이이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율곡선생유적정화기념비]

 

[보물 제165호 표지석]

 

[문성사와 오죽헌으로 출입하는 문인데 문루에 현판이 없어 보인다.]

 

   사임당 신씨(1504~1551)는 성품이 어질고 착하며 효성이 지극하고 지조가 높았다. 어려서부터 경문을 익히고 문장, 침공, 자수뿐만 아니라 시문, 그림에도 뛰어나 우리나라 제일의 여류 예술가라 할 수 있으며, 자녀교육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현모양처의 귀감이 되고 있다.

 

[문성사]

 

   이이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이 자리에는 원래 어제각이 있었는데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 때 이를 서쪽으로 옮기고 문성사를 지었다. '문성사'는 1624년 인조 임금이 율곡선생에게 내린 시호로,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이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문성사 편액]

 

[사임당 배롱나무]

 

   강릉시의 시화로 꽃피는 기간이 100일이나 된다고 하여 백일홍이라고도 한다. 이 배롱나무는 고사한 원줄기에서 돋아난 새싹이 자란 것이므로 나이를 합치면 600여년이 넘는다. 사임당과 율곡 모자가 어루만졌을 이 배롱나무는 율곡송. 율곡매와 함께 오늘날 오죽헌을 지켜주는 수호목으로서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이 선생의 영정]

 

   율곡 이이(1536~1584) 선생은 어려서 어머니에게 학문을 배워 13세에 진사초시에 합격하고 명종 19년(1564) 생원시, 식년문과에 모두 장원급제한 후 황해도 관찰사, 대사헌 등과 이조. 형조. 병조 판서를 역임하였다.

 

[오죽헌 전경]

 

[오죽헌 편액]

 

   조선초기에 지어진 별당건물로, 원형이 잘 보존된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이 건물은 주심포양식에서 이익공양식으로 변해가는 건축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1963년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이곳 몽룡실에서 율곡선생이 태어났다.

 

[건물 내부에 걸려있는 '오죽헌' 편액]

 

[몽룡실 편액]

 

   조선 유학계에 퇴계 이황 선생과 쌍벽을 이루는 대학자로서 기호학파를 형성했고 당쟁의 조정, 10만군대의 양병을 주장하였으며 대동법, 사창의 실시에 노력하였다. 글씨, 그림에도 뛰어났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문묘에 종사되었고 선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파주의 자운서원과 강릉의 송담서원 등 20여개의 서원에 제향되고 있다.

 

[오죽헌 내부에 걸려진 많은 글들]

 

 

[오죽헌 전경]

 

   오죽헌은 강릉 유현인 최치운(1390~1440)의 창건으로 아들 응현은 사위 이사온에게 물려주었고 이사온은 다시 그의 사위 신명화(사임당의 부친)에게, 신명화는 또 그의 사위 권화에게 물려주면서 그 후손들이 관리하여 오던 중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으로 문성사, 기념관 등이 건립되어 현재와 같은 면모를 갖추고 선생의 위업과 교훈을 길이 추앙하게 된 것이다. <현장 안내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