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풍경
모내기가 끝난지 이미 몇 주는 흐른 듯 싶다. 모든 들녘에 황무지란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대다수의 농작물은 이미 제자리를 찾아 뿌리를 내렸다. 저 파아란 하늘로부터 작렬하게 내리쬐는 태양빛이 전원의 모든 생명체에 골고루 다가가 신선한 에너지를 공급할 것이다.
작년 이맘때에도 그 작년의 이맘때에도 농부의 발걸음을 같았을 것인데, 올 한해 또 농부의 마음을 어떨런지,.. 녹음은 더욱 더 짙어만 가고 배불리 먹었으면 좋았을 보리고개가 이쯤 시작되었을라나?
예전에는 마을사람들 여럿이 모여 품앗이를 했다. 서로서로 남의 일을 도와주는 오늘날의 봉사활동 같은 것이겠다. 오늘은 갑동이네 일,.. 내일은 을동이네 일,.. 일이 끝나면 모두 모여 품팔이를 계산하면서 그 동안의 수고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모내기 논에는 논뚜렁 양쪽에서 못줄잡이가 줄을 팽팽하게 당겨주면 못줄에 표시된 붉은색의 눈끔자리에 모를 심는다. 어른들의 손놀림이 빨랐다. 요즘에는 이양기가 그 것을 대신해 주면서 짧은 시간에 많은 논에 모를 낸다.
못짐을 짊어지고 온 이는 모를 심는 사람들의 빈 자리에 모춤을 던져 그 자리를 매꿔줘야 한다. 모가 모자라면 못줄이 넘어갈 수 없어 모내는 일이 더뎌지기 때문이다. 어릴때 그 역할을 해 보았는데 쉬운 일은 아니였다.
잘 못 던져 모춤의 끈이 풀어지기도 하고, 모춤이 모내는 사람들의 옆에 떨어져 진흙물이 튀기도 한다. 어른들께서 소리를 지르면,.. 조심스레 모춤을 양손에 들고 논으로 걸어 들어가 살며시 내려 놓기도 하고,... 모내는 사람들의 뒤쪽으로 엇비슷하게 던지면 물이 덜 튄다는 요령도 터득했다.
논뚜렁에서는 못줄을 잡고 있던 한쪽의 사람이 "어이~"하고 소리치면 반대쪽 사람도 "어이~"하며 맞장구를 치며 줄을 넘기는데, 미쳐 못줄의 눈금에 모를 심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옆 사람이 재빨리 도와 주기도 한다.
새참을 먹을 때가 제일 좋았다. 칼국수를 많이 먹었는데 거의 모든 집에서 공통된 메뉴였다. 전날 어머니는 참거리로 밀가루를 만죽해서 칼국수를 썰어 놓는다. 아침 일찍부터 일을 시작하므로 점심 전에 일꾼들을 시장기를 해결해 줘야 한다. 이 때에 논 주인은 일꾼들에게 커다란 눈깔사탕을 한 옴큼씩 나눠준다. 아마도 일을 하면서 피곤한 몸을 이 달콤한 사탕의 맛으로 잊어 보라는 것일거다.
내 주머니에는 사탕이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받은 것 보다 부모님의 사탕이 이 곳에 들어와 있다. 작은 입속에 들어온 커다란 사탕은 입속에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차츰 표면에 붙은 설탕가루가 떨어지고 단맛을 느낄때쯤이면 작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해가 중천에 오르면 서서히 배고파지는데, 주인은 어느 틈엔가 뚝방 너머 나무 그늘진 곳에서 진수성찬 준비를 하고 있다. 평편하지도 않은 곳에 옹기종기 모여서 식사를 하는데, 그 맛은 정말 꿀 맛 같다. 혹 주변으로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면 누구랄것 없이 "어이~ 밥 먹구가~"라며 소리를 친다. 술이라도 한 잔 받고 갔던 시골의 풍경이다.
점심시간에는 모든 사람들이 모인 만큼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야사가 등장한다. 어려서는 뭔 소리인지 잘 몰랐지만,.... ㅋㅋ
가끔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흠잡기가 시작되기도 하고,... 지난 밤에 일어난 일,... 시장에 갔더니 누구의 소문이 어떻하더라,... 그러면 옆에서 맞장구치는 아줌마 아저씨의 익살스런 맛대응과 이에 질세라 어르신의 한 말씀. "과관이다.~" ㅎㅎ
논 주인은 해 떨어지기 전에 모내기를 마칠 심사로 질퍽한 흙논을 왔다갔다하며 마름질 하기에 바쁘다. 소 두마리가 끄는 써래와 한 마리가 끄는 서래는 윗 논 아랫논에서 이리저리 맴 돈다. "이랴~ 이랴~, 어디루~ '' 소를 모는 아저씨의 혼내는 소리와 흥얼 흥얼 노랫소리가 구성지게 울려퍼지고, 돼새김질 하는 어미소는 눈만 끔뻑끔뻑 고삐의 방향을 따라 여유있는 행보를 한다. 젓먹이 송아지는 배고품을 참지 못하고 진흑을 뒤집어 쓴 채 어미 옆을 떠나지 않는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날 어머니께서는 양념된 토막고등어를 우엉잎에 싸 주신다. 그 것은 저녁에 내가 먹을 반찬이다. 해는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을 쯤이면 모내기를 하던 사람들은 모두들 쟁기와 연장을 챙겨긴다. 우마차에 몸을 얹고 덜컹거리는 그 길을 따라 간다.
<지난 달에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지난 날 고향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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