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복 기념관을 다녀오다.
강원 평창군 용평면 운두령로 500-11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1975. 10. 4.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대관령휴게소에 <이승복반공관>으로 처음 건립되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은 그 해 10. 14. 영동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석하면서 이 반공관을 순시하였다는 내용의 글이 있다.
[매표소 앞에서]
그 후 1982. 10. 26.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이승복기념관>으로 개관하였다. 오래전 한 때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면서 강릉행 마지막 휴게소인 이곳에 들러 몇 번 둘러본 적이 있다. 이 곳으로 이관 후 아이들과 처음 방문이다.
[복원 생가 모형]
이 집은 이승복군의 생가를 복원시켜 놓은 모형 전시물로, 실제 생가터는 이 곳에서 북쪽으로 약 5km 떨어진 계방산 노동계곡에 있으며 그 곳에도 이 집과 같이 복원시켜 기념관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가옥내부]
문패(이석우)는 이승복군의 아버지 이름이다. 이 집은 귀틀집(통나무로 쌓아 만든 전통적인 산간지방 집구조)이며 지붕은 산간지방 특성에 맞게 억새로 잇었다.
[농기구.가재도구]
이 집 뒷쪽으로 양지바른 곳에 이승복군을 포함하여 당시 참살 당한 일가족 4명의 묘소가 있다. 화장실(뒷간)도 당시의 모습을 복원시켜 놓은 것이라고 한다<안내문>
[화장실-뒷간]
매표소를 지나면서 우측으로 이승복상, 복원된 생가 모형, 강원도 홍보관, 본관 전시실, 자연학습장, 학교의 건물, 민속자료관 으로 관람하면 되겠고, 전시관 앞 뜰에는 각종 조형물이 있다.
[대관령휴게소 자리에 있었던 이승복반공관]
전시관 내부를 둘러본다. 한참 자랄때에는 반공관련 학교 및 지역 행사가 무척이나 많았던 것 같다. 아마도 전쟁직후 이러한 도발이 잦아지면서 일련의 일들을 되새겨 보고 의식을 함양하자는 의미였을 거다.
[단란했던 가정의 모습일 거다]
한 동안 법정에까지 거론되었던 이 때의 일들에 대해서 나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양 당사자의 상이한 마음을 다 이해 할 수는 없지만, 조금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고 또 과장이 되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훈장증과 훈장]
전시관 한 켠에 걸렸던 아이들의 글 몇 개를 소개해 보려 한다. 연도별 표식이 없어 아쉽지만, 내가 소학교때 이런 글짓기를 하였던 일들을 생각해보며 글을 쓴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은 느껴 보고 싶은 마음에서,..
[뜰에 위치한 건립비 같다]
무궁화로 다시태어나,..
경남 하북국교
윤 전 화
붉고 어린
풀꽃 한 송이가
밤 새 떠도는
이리떼에 짓밟힌 채로
우리 가슴에
남았다.
사랑하는
들판 이름 부르며
자라나던 풀꽃은
거룩한 죽음으로
이젠 우리 가슴에
무궁화로 환생하였다.
[자연학습장 내 나비 표본]
휴전선
대구 경북여고
조 한 별
여보게들
이제 그만 날 풀어주게
나의 동지들도 모두
길을 달리해
이 넓은 세상에
나. 오직 나홀로
외로이 서 있네.
나를 경계로
가슴을 뜯으며 사는
자네들을 보면서
나는 그만
죽고 싶었다네.
아아!
제발 날좀 풀어주게
억만겁 세월속에
설움의 바다위에
왜 이다지도
길게
나를 세워 두는가.
총포가 축포로
바뀌고.
자네들의 눈물이
그치는 날.
자네들의 발 아래
어그러진다 하여도
나는 고운 흙이 되어
나의 긴 세월을 축복하겠네.
[이승복군이 다니던 학교]
형제의 일출
강원 양구여중
박 보 미
형은 소떼 몰고
북으로 가는데,
아우는 검은 이빨 드러내고
숨어서 오는구나!
소떼에게 사랑과 희망 실어
보냈는데, 너는 어찌 이 가슴에
못을 박느냐!
하늘에 뜬 장마 구름
부모님의 한이 서려, 장대 같은
눈물을 쏟고, 나도 주저 앉아
울고 싶구나.
그 옛날 전설인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양보하며 사이좋던
그 때 그 시절
바다 속에 숨어서
굶주림에 떠는 아우야!
어서 어서 문을 열고,
가슴을 열어라.
이제 곧 통일의 해가
떠오른단다!
우리 함께 어린 시절처럼
온몸으로 저 해를 맞이하자꾸나!
[전시관 앞 잔디공원]
넝쿨나무 두 그루
충남 서령중
이 승 구
운동장 스텐드옆
넝쿨나무 두 그루
오래 전부터 형제처럼 나란히 서있다.
누군가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둘이 의지해 잘 버티라고
그래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라고
심어 놓았다.
그러나
두 그루 다 날이 갈수록
쑤셔넣은 전기줄 마냥
줄기들은 뒤엉키기만 했다.
다른 줄기를 받쳐주면 그 줄기를 의지해
더 멀리, 더 높이 올라가
무성한 잎들을, 꽃들을,
그리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텐데,..
두 나무는 오직 자신보다 앞서 나가는
줄기가 못마땅한 건지
붙잡아 두려고만 한다.
결국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두 나무는 차가운 쇠막대기에
앙상한 줄기 몇 가닥만을 매단채
오늘도 하루해를 보낸다.
[이승복 상]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참 많이도 세월이 흐른것 같다. 나 또한 전후 세대다. 전쟁을 겪은 세대와 지금의 세대는 이 곳을 돌아보며 어떤 의미를 담아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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