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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기행

강원 평창(3) - 이승복 기념관을 다녀오다

by 포리시스 2012. 2. 27.

   이승복 기념관을 다녀오다.

 

   강원 평창군 용평면 운두령로 500-11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1975. 10. 4.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대관령휴게소에 <이승복반공관>으로 처음 건립되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은 그 해 10. 14. 영동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석하면서 이 반공관을 순시하였다는 내용의 글이 있다.

 

[매표소 앞에서]

 

   그 후 1982. 10. 26.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이승복기념관>으로 개관하였다. 오래전 한 때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면서 강릉행 마지막 휴게소인 이곳에 들러 몇 번 둘러본 적이 있다. 이 곳으로 이관 후 아이들과 처음 방문이다.

 

[복원 생가 모형]

 

   이 집은 이승복군의 생가를 복원시켜 놓은 모형 전시물로, 실제 생가터는 이 곳에서 북쪽으로 약 5km 떨어진 계방산 노동계곡에 있으며 그 곳에도 이 집과 같이 복원시켜 기념관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가옥내부]

 

   문패(이석우)는 이승복군의 아버지 이름이다. 이 집은 귀틀집(통나무로 쌓아 만든 전통적인 산간지방 집구조)이며 지붕은 산간지방 특성에 맞게 억새로 잇었다.

 

[농기구.가재도구]

 

   이 집 뒷쪽으로 양지바른 곳에 이승복군을 포함하여 당시 참살 당한 일가족 4명의 묘소가 있다. 화장실(뒷간)도 당시의 모습을 복원시켜 놓은 것이라고 한다<안내문> 

 

[화장실-뒷간]

 

   매표소를 지나면서 우측으로 이승복상, 복원된 생가 모형, 강원도 홍보관, 본관 전시실, 자연학습장, 학교의 건물, 민속자료관 으로 관람하면 되겠고, 전시관 앞 뜰에는 각종 조형물이 있다.

 

[대관령휴게소 자리에 있었던 이승복반공관]

 

   전시관 내부를 둘러본다. 한참 자랄때에는 반공관련 학교 및 지역 행사가 무척이나 많았던 것 같다. 아마도 전쟁직후 이러한 도발이 잦아지면서 일련의 일들을 되새겨 보고 의식을 함양하자는 의미였을 거다.

 

[단란했던 가정의 모습일 거다]

 

   한 동안 법정에까지 거론되었던 이 때의 일들에 대해서 나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양 당사자의 상이한 마음을 다 이해 할 수는 없지만, 조금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고 또 과장이 되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훈장증과 훈장]

 

   전시관 한 켠에 걸렸던 아이들의 글 몇 개를 소개해 보려 한다. 연도별 표식이 없어 아쉽지만, 내가 소학교때 이런 글짓기를 하였던 일들을 생각해보며 글을 쓴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은 느껴 보고 싶은 마음에서,..

 

[뜰에 위치한 건립비 같다]

 

   무궁화로 다시태어나,..

                                       경남 하북국교

                                       윤 전 화

   붉고 어린

   풀꽃 한 송이가

   밤 새 떠도는

   이리떼에 짓밟힌 채로

   우리 가슴에

   남았다.

 

   사랑하는

   들판 이름 부르며

   자라나던 풀꽃은

   거룩한 죽음으로

   이젠 우리 가슴에

   무궁화로 환생하였다.

 

[자연학습장 내 나비 표본]

 

   휴전선

                                       대구 경북여고

                                       조 한 별

   여보게들

   이제 그만 날 풀어주게

   나의 동지들도 모두

   길을 달리해

 

   이 넓은 세상에

   나. 오직 나홀로

   외로이 서 있네.

 

   나를 경계로

   가슴을 뜯으며 사는

   자네들을 보면서

 

   나는 그만

   죽고 싶었다네.

 

   아아!

   제발 날좀 풀어주게

 

   억만겁 세월속에

   설움의 바다위에

 

   왜 이다지도

   길게

   나를 세워 두는가.

 

   총포가 축포로

   바뀌고.

   자네들의 눈물이

   그치는 날.

 

   자네들의 발 아래

   어그러진다 하여도

   나는 고운 흙이 되어

   나의 긴 세월을 축복하겠네.

 

[이승복군이 다니던 학교]

 

   형제의 일출

                                       강원 양구여중

                                       박 보 미

   형은 소떼 몰고

   북으로 가는데,

   아우는 검은 이빨 드러내고

   숨어서 오는구나!

 

   소떼에게 사랑과 희망 실어

   보냈는데, 너는 어찌 이 가슴에

   못을 박느냐!

 

   하늘에 뜬 장마 구름

   부모님의 한이 서려, 장대 같은

   눈물을 쏟고, 나도 주저 앉아

   울고 싶구나.

 

   그 옛날 전설인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양보하며 사이좋던

   그 때 그 시절

 

   바다 속에 숨어서

   굶주림에 떠는 아우야!

   어서 어서 문을 열고,

   가슴을 열어라.

 

   이제 곧 통일의 해가

   떠오른단다!

   우리 함께 어린 시절처럼

   온몸으로 저 해를 맞이하자꾸나!

 

[전시관 앞 잔디공원]

 

   넝쿨나무 두 그루

                                       충남 서령중

                                       이 승 구

   운동장 스텐드옆

   넝쿨나무 두 그루

   오래 전부터 형제처럼 나란히 서있다.

 

   누군가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둘이 의지해 잘 버티라고

   그래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라고

   심어 놓았다.

 

   그러나

   두 그루 다 날이 갈수록

   쑤셔넣은 전기줄 마냥

   줄기들은 뒤엉키기만 했다.

 

   다른 줄기를 받쳐주면 그 줄기를 의지해

   더 멀리, 더 높이 올라가

   무성한 잎들을, 꽃들을,

   그리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텐데,..

 

   두 나무는 오직 자신보다 앞서 나가는

   줄기가 못마땅한 건지

   붙잡아 두려고만 한다.

 

   결국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두 나무는 차가운 쇠막대기에

   앙상한 줄기 몇 가닥만을 매단채

   오늘도 하루해를 보낸다.

 

[이승복 상]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참 많이도 세월이 흐른것 같다. 나 또한 전후 세대다. 전쟁을 겪은 세대와 지금의 세대는 이 곳을 돌아보며 어떤 의미를 담아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