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기념관을 둘러보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 243-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3층 규모의 기념관에는 1층 양천현아실.기획전시실, 2층 겸재정선기념실.진경문화체험실.원화전시실.영상실, 3층 각종 프로그램실이 있다. 기념관 안내문의 내용을 기록해 보았다.
[3층 규모의 기념관 전경]
겸재 정선의 생애와 활동
주역의 겸괘에서 따온 호 겸재 처럼 평생 겸손하고 온화하게 처신하며 예술에만 정진해온 화가 겸재 정선은 1676년 음력 1월 3일 한성부 북부 유란동(청운동)에서 태어났다. 원래 사대부 출신이었으나 집안이 쇠락하였다.
[정선의 그림으로 재 구성된 양천현아 모형 - 1층 양청현아실]
경제적 어려움에도 정선은 타고난 그림 재능과 청풍계 외가의 도움, 당대 문인으로 유명하던 김창흡선생과의 인연으로 사상.예술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진경시의 대가인 사천 이병연과는 평생 동안 교유를 유지하고 시화를 서로 교환하며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양천현아]
정선은 20대에 연안 송씨와 혼인하여 29세에 장남 만교를, 35세에 차남 만수를 낳았다. 같은 해에 친구 이병연 등과 금강산을 여행하고 이듬해 1711년에 <<신묘년풍악도첩>>, 1712년에는 <<해악전신첩>>, 1719년에 <<사계산수도첩>>을 제작하였다. <<해악전신첩>>으로 정선은 당대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고 젊은 정선은 대상을 뚜렷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등 패기만만하고 치밀한 화풍을 가지고 있었다.
[종해청조 - 현아의 뒷산인 궁산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하양현감(46-51세)과 청하현감(58-60세)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접했던 경기도와 강원도 지역 이외에 영남, 충청지방의 여러 명승지를 널리 답사하여 개성적인 진경산수화풍을 확립시켰다.
[소악루]
1735년 청하현감을 마치고 인왕곡으로 돌아와 60세부터 65세까지 청풍, 단양, 영춘, 영월 등 충청도 사군 지역을 여행하며 <<사군첩>>, <<관동명승첩>> 등의 작품을 남겼다. 이들 그림에는 정선이 창안한 수직준법, 미점법, 일렁이는 파도, 번잡하지 않고 정돈된 구도 등 정선 특유의 진경산수화법을 거침없고 장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양천현아]
이에 정선 진경산수화의 전형적 면모들이 완성되어 나타난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더욱 원숙한 경지로 올려놓은 중요한 계기는 그의 나이 65세부터 70세까지 지금의강서구 가양동 향교 부근에 위치한 양천 읍치의 현령을 지내면서부터이다. 이때 정선은 이병연과 시화를 교환하고 <<경교명승첩>>과 같은 기념비적 역작을 남겼다.
[강화도령 철종의 양천길 어가 행렬 재현]
정선은 화가로서 드물게 84세까지 장수하였다. 그래서 보통 화가들이 도달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하였고, 대자유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정선은 만 70세에 다시 그린 <<해악전신첩>>에는 실제 경치를 자유롭게 회화적으로 응용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개화산에 있는 사찰 개화사]
이런 자유로운 경지는 만년에 갈수록 더 심화되어 형상을 극도로 단순화시키거나 추상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76세에는 평생 수련한 필묵법의 정수가 유감없이 드러난 명작 <인왕제색도>를 남겼다. 만년의 정성은 자유자재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수정(좌)과 소악루(우)]
양천현아실
정선이 양천현령(65~70세, 1740~1745년) 재임시 머물렀던 양천현아를 북원. 이들 현아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정선이 그린 강서구 일대의 승경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다.
[설평기려 - '눈덮힌 벌판을 나귀 타고 가다'라는 뜻. 양천평야와 내발산동 우장산의 모습]
정선은 양천현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강서 지역의 뛰어난 승경을 <<경교명승첩(1740~1741)>>, <<양천팔경첩 (1742)>>에 담았다. 강서지역은 예로부터 한강의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여왔으며 중국과의 문화교류의 통로가 되었던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고장이다.
[공암층탑 - 공암 주변의 풍경]
기회전시실
겸재정선기념관은 개관이래 <개관기념 초대작가전>, <오늘에 되살린 진경산수 - 손장섭의 삶과 산야전>, <겸재 진경산수화 모사전 - 고정한 ㅣ 겸재정선, 한강을 다시 그리다>, <김동욱전 - 신 한양진경>, <방혜자전 - 마음의 빛 ㅣ 타는 불꽃. 번지는 광휘> 등 다양한 전시를 기획함으로서 새로운 시각의 감상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기획전시실은 대관을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소악후월 - 소악루에서 달을 기다린다]
겸재정선기념실
정선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시기별로 정리 해설하고, 정선 및 관련 화가들의 작품을 함께 비치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고려시대부터 실경산수화의 전통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정선은 이런 전통의 바탕 위에 18세기 전반에 진경산수화를 확립시켰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그 이전에 비해 대상 소재가 엄청나게 넓고 다양해졌으며, 양식상 한국의 예술적 특징을 완비하였다.
[이호신 작가의 개화산 약사사]
진경문화체험실
진경산수화에 대하여 쉽고 친근한 접근을 위한 디지털 체험공간이다. 정선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림 속에 비친 사람들, 터치스크린을 이용하여 정선의 그림에 알록달록 색을 칠해 나만의 산수화를 볼 수 있는 내가 그린 산수화, 스탬프 찍어보기, 진경 속 여행(움직이는 산수화)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금강내산도]
원화전시실
겸재 원화를 수집하여 관람객이 감상할 수 있게 하고, 원화 연구에 도움을 주기 위해 수집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고, 정선의 삶과 예술세계를 종합영상으로 구성하여 이를 상영하는 영상실이 있다.
[창의문]
겸재정선기념관에서는 <겸재문화. 예술아카데미대학>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진행되는 어린이 교육프로그램 <어린이겸재진경교실>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전통회화를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 궁중진채. 민화 등의 과정, 저자와 함께하는 미술.인문학 강좌, 재미있는 동서양미술사 강좌 등을 개설하여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필운상화 - 인왕산에서]
겸재 정선과 양천현아
겸재 정선은 <진경산수화>라는 우리 고유 회화양식을 창안하여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데 성공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이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65세 무렵 원숙한 경지에 올라 절정의 진경산수 작품들을 남겼다. 이때가 바로 정선이 양천현의 현령으로 근무하였던 때이다.
[말징박기(좌)와 자화상(우)]
양천현은 오늘날의 강서구 일대로, 겸재정선기념관이 위치해 있는 궁산 아래는 정선이 만 5년 동안 근무하였던 양천현아가 있던 곳이다.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완성된 곳, 강서구에서 옛 양천현아의 모습과 정선의 작품세계를 감상해 보자.
[금강내산총도]
그림 속 양천현아
양천현아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정선이 현령으로 근무하던 당시에 정선이 그린 <양천현아> 등의 그림을 통해서 그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장안사]
그림 속의 양천현아는 동헌인 종해헌을 중심으로 내아, 길청, 향청, 사령청, 장청, 읍창 등이 둘러져 있다. 현아의 입구인 외삼문과 내삼문을 지나서면 종해헌이 나타나고, 낮은 담으로 둘러싸인 내아의 모습도 보인다. 현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양천향교와 객사인 파릉관이 위치해 있다.
[회방연도]
"양천에 떨어져 있다 말하지 말게, 양천에 흥이 넘칠 터이니
처자를 데리고 부임해 가면, 보배가 비로소 곳간에 들 것이네."
- 사천 이병연이 정선에게 보낸 시 중에서 -
[한양전경]
동헌 : 지방관이 정무를 집행하는 곳. 양천현아의 동헌은 '종해헌'이라 하였다. 종해언은 '모든 강물이
바다를 종주로 삼아 흘러 들어온다.'는 주희의 제자인 채침이 쓴 [서전] 우공편의 글귀에서 따온
것이다.
내아 : 지방관 및 식솔들이 생활하는 공간
객사 : 각 고을에 설치하였던 관사로, 객관이라고도 한다. 양천현의 객사는 '파릉관'이라 하였다.
향청 : 지방관을 보좌, 견제하는 자치기구가 위치한 건물이다.
길청 : 관아의 실무관리인 아전들이 집무를 보던 장소로 작청, 연청 이라고도 한다.
관청 : 지방 관아의 주방으로, 지방관의 식사나 잔치의 음식물을 만들었다. '관주'라고도 한다.
[시중대(좌)와 백천교(우)]
장청 : 군사 업무를 맡았던 기관으로, '장교청'이라고도 한다.
사령청 : 지방관의 명령을 수행하던 사령들이 거쳐하던 건물이다.
읍창 : 관청의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로 직물, 무기 등도 보관하였다.
형옥 : 죄인을 가두어 두는 감옥이다.
향교 :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관학 기관이다.
홍살문 : 능, 관아, 향교 등의 정면에 세우던 붉은 나무문이다. 향교나 관아의 영역을 표시한다.
[불정대]
관람하는 동안 학생들과 일반인의 방문이 이어진다. 그들 나름대로 겸재 정선의 세계를 알아보기 위함일 거다. 그림속에 빠져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새삼 옛 이야기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 역사의 한 편에서 정선과 양천현을 그려내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독서여가도를 재구성해 놓은 곳 - 촬영소품이 준비되어 있다]
누구나 겸재정선기념관을 둘러보게 된다면 옛 지명의 양천현,... 그리고 현재의 강서구에 대한 그림 속의 이해가 쉬워질 거라는 생각이다. 기념관에서 볼 수 있는 많은 겸재 선생의 걸작들을 느껴보면서 산수화에 담겨진 풍광을 되뇌여 보고 깊은 시상에 커피 한 잔 음미해 보는 것도 참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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