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나 만의 택리지를 꿈꾸며,...
서울 기행

서울 강서(4) - 궁산

by 포리시스 2012. 5. 17.

   궁산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나즈막한 산으로 파산, 성산, 관산, 진산 이라고도 불리운다. 궁산에는 옛날 백제의 <양천고성지> 가 있고, 조선조 화가인 겸재 정선이 양천 현령으로 재임(1740~1744)하면서 그림을 그렸던 <소악루> 가 있으며, 오랜 세월 이 고장의 인물을 배출한 <양천향교> 가 있다.

 

[궁산 산책로]

 

   또한 임진왜란때 의병들의 집결장소 였으며, 6.25동란 때에도 국군이 주둔하였던 군사적 요충지이며 조선시대 이 고장의 행정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산의 높이는 74.3m 이다.

 

[산책로에서 본 소악루]

 

   <양천고성지>에 관한 안내문이다.

   사적 제 372호 / 통일신라시대.

   이 성은 조선시대 양천현의 주산이었던 궁산에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이 성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으나,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소악루 전경]

 

   궁산은 한강변에 있는 해발 74m의 나지막한 봉우리로 산의 남쪽에 안양천이 흘러 한강과 만난다. 한강 건너편 북쪽에는 행주산성이 있어 방어에 유리하다. 이 성은 궁산의 정상부에 있는 둘레 200m 가량의 평지를 둘러 만든 것으로 보인다.

 

[소악루 현판]

 

   기록에 따르면 성벽의 길이는 218m 이다. 성벽은 돌로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토루를 쌓은 토석혼축성으로 추정된다. 몇 차례의 지표조사에서 통일신라시대의 토기조각과 기와조각이 다량으로 채집되었고, 강 건너에 있는 행주산성이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볼 때 양천고성도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강변을 바라보며 핀 꽃]

 

   이 성은 행주산성, 파주의 오두산성 등과 함께 한강 어귀를 지키던 중요한 성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에서 대승을 거두기 전에 이 성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

 

   <소악루>

   소악루는 조선 영조(1724~1776, 재위) 때 동복 현감을 지낸 이유가 양천 현아 뒷산 기슭 강변 <악양루터>에 재건한 것이다.

 

   소악루 한강변의 난간에는 겸재 선생이 이 곳에서 그렸을 것으로 보여지는 <목멱조돈>, <안현석봉>의 그림 2점과 이에 대한 설명이 있다.

 

   <목멱조돈>에 관한 글이다.

   겸재가 영조 16년(1740) 초가을 양천 현령이 되어 양천쪽에서 본 남산의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강 건너로는 삼각산 연봉이 백색의 신비로움을 자랑하며 줄기줄기 내려와 북악과 인왕으로 이어진 장관이 한눈에 접하고, 남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통쾌하다.

 

   남산 밑으로 낮게 깔린 구릉들은 만리재, 애오개, 노고산, 와우산 등의 윤곽이 보인다. 지금은 난지도에 가려 만리재, 애오개 등은 볼 수가 없지만 날씨가 맑은 날이면 멀리 남산자락이 한눈에 들어 온다.

 

   새벽빛 한강에 떠오르니,

   언덕들 낚싯배가 가린다.

   아침마다 나와서 우뚝 앉으면,

   첫 햇살 종남산에서 오르리라.

   <겸재의 화재가 된 사천 이병연의 시>

 

[소악루에서 본 풍경]

 

   <안현석봉>

   겸재는 양천현의 진산인 파산에 올라 현재 이화여대 뒷산인 안현, 즉 갈마재에서 피워 올리는 저녁 봉화 불을 바라보고 그 아름다움에 취하여 이를 사생했다.

 

   탑산과 광주바위(지금의 구암공원 부근)를 앞으로 끌어낸 것을 보면 파산에서 탑산과 안현을 바라본 경치를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계절 맛 참 좋을 때 발 걷으니 산 빛이 저물었구나.

   웃으며 한 점 별같은 불꽃을 보고, 양천 밥 배불리 먹는다.

   <사천 이병연이 겸재를 생각하고 지은 시>

 

   당시 이 누각에 오르면 안산, 인왕산, 남산, 관악산 등이 한 눈에 보이고 탑산, 선유봉 및 드넓은 한강줄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등 진경이 펼쳐져 조관빈, 윤봉구, 이병연 등 당대 명사들이 이곳을 찾았다 하며,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정선이 이 곳의 현령으로 있을 적에 그린 산수화 <경교명승첩>에서 당시의 경관을 볼 수 있다.

 

[멀리 노을.하늘공원]

 

   소악루의 원위치는 <여지도서>, <양천군읍지>와 정선이 그린 소악루, 소악후월 등의 그림으로 짐작해 볼 때 강서구 가양동 산 6-4 (일명 세숫대바위) 근처로 추정되나 주변의 변화가 극심하여, 한강변 경관 조성 및 조망을 고려하여 현위치에 1994년 신축하였다.

 

[시민들의 쉼터]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화강석 8각 주초에 민흘림의 원주를 세우고 5량집 겹처마구조로 단층 팔작기와지붕으로 하고 주위에 난간을 둘러 한강경관을 조망토록 배치했다.

 

[관산성황사]

 

   <성황사>

   이 사당은 성황사 신의 신위를 모신 묘당이다. 성황사의 신은 여신으로 우리 마을 사람들은 옛부터 도당할머니로 모시고 있다. 일찍이 조선시대 중종 25년(1530)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르기를 <성황사 재성산>이라 하였다.

 

[한강]

 

   지금부터 실로 400여년 전의 기록이다. 성황사 신께서는 산아래에 거주하는 민초들의 번영과 행복을 이루도록 도와주시고 여러 악귀를 몰아내시고 재앙과 돌림병을 막아주시니 산아래 사는 민초들은 이에 보답하고자 매년 음력 10월 초하루 날 제물을 차려 산신제를 올리고 굿을 한다.

 

[멀리 행주산성]

 

   황진 시

   옛 산봉우리 매우 험한 것은 저절로 된 것이고

   한강물이 밀물을 맞아서 띠를 띠웠더라.

   산 위에 남아 있는 성의 담장도 다 없어졌는데

   신령님을 숭배하는 마음으로 옛사람을 본 따서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굿을 하더라.

 

[입구 안내도]

 

   올라보니 참 나즈막한 산이다. 오랜 세월속에 묻혔는지 산성의 자취는 알 수 없다. 포장된 넓진한 산책로와 봉우리의 평편한 공원을 둘러보며 산성의 옛 자리가 아니였나 짐작만 할 뿐,.. 뿌옇게 변한 하늘만 아니라면 주변의 경관이 참 좋아 보이겠다. 유유히 흐르는 한수,.. 강변의 수 많은 개발로 옛 역사가 묻혀 버렸을 거다. 황진의 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