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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기행

서울 강서(3) - 서울 유일의 향교(양천향교)

by 포리시스 2012. 5. 17.

   서울 유일의 향교(양천향교)

 

   서울 강서구 가양1동 234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양천향교는 서울시 기념물 제 8호 이다. 규모는 대성전(53.9), 명륜당(77.7㎡), 동재(29.4㎡), 서재(29.4㎡), 전사청(11.2㎡), 외삼문(18.5㎡), 내삼문(11.9㎡), 화장실(5.6㎡) 이다.

 

[향교 앞 홍살문과 견학온 학생들]

 

   조선왕조가 한양으로 천도함과 동시에 유학을 국시(國是)로 정하고 유학을 토대로 교육기관을 대 확장함에 한양에 성균관(成均館)과 사학(四學)을 두고 각 군.현에 지방 교육기관인 향교를 설립하였다. 본 양천향교도 당시 태종 연간(서기 1411년 경)에 건립되었다.

 

[외삼문을 지나 명륜당 - 쪽마루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

 

   향교는 공자님을 큰 선생님으로 모시고 여러 성현의 덕을 기리는 제향공간인 내삼문 안에 위치한 대성전과 큰 가르침을 펼치는 강학 공간인 명륜당, 동재, 서재 그리고 제향과 강학을 지원하는 부속시설인 교직사 등으로 구성된다.

 

[명륜당 앞 동재]

 

   양천향교는 대성전에 5성위(五聖位)와 송조 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韓國十八賢)의 위패를 봉안(奉安)하고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釋奠)을 봉행하여 문묘(文廟) 기능을 하며 유학을 연구 강론하는 지방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동재 맞은편의 서재]

 

   년중 제일 큰 행사인 석전대제는 지방수령이 석전제를 올리는 것을 전통으로하여 본 향교는 강서구청장이 초헌관으로 석전제를 올린다.

 

[명륜당 왼쪽으로 대성전 가는 계단]

 

   구한말 갑오개혁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됨으로써 인해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은 상실되고 문묘 기능만 허용되었다. 그 후 1945년 조국광복과 함께 관내 유림들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교궁 중수 및 비품 등을 구비하였다.

 

[명륜당 뒷쪽]

 

   1963년 1월 1일 행정구역 변경으로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가양리에서 서울특별시로 편입되면서 서울시의 유일한 향교가 되었다.

 

[대성전 앞 내삼문 - 출입금지]

 

   1965년 12월 4일 서울시 향교재단 인가를 받아 경기도 향교재단으로부터 양천향교의 재산을 인수하였다. 같은 해에 대성전과 외삼문을 보수하였다.

 

[대성전 우측으로 내려오며 - 동.서재와 외삼문 지붕]

 

   1977년부터 1979년까지 3년 동안 향교 복원공사 계획을 수립하고 향교 기본재산 처분 승인과 복원사업 승인을 얻어 1980년 11월에 복원공사에 착공하여 1981년 8월에 1차 보수를 하였다.

 

[명륜당]

 

   1986년 7월에 2차 보수와 1994년 6월에 3차 보수를 거쳐 2007년 10월부터 2008년 12월 전면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재와 외삼문 - 향교 보존에 힘쓰고 계신분들,..]

 

   향천향교 터는 1990년 6월 18일 자로 서울특별시 문화재 기념물 제 8호로 지정되었고, 양천향교에 보관되었던 양천현 홀기가 2009년 3월 5일 서울시 문화재 자료 제 44호로 지정되었다.

 

[외삼문]

 

   본 향교가 위치한 강서구 가양동은 고구려 시대에는 제차파의현으로 불리다가 신라 경덕왕때 공암현으로 고치고, 1310년(고려 충선왕 2)에 양천현으로 현령을 두었으며, 조선조 1895년(고종 32)에 양천군으로, 1914년 일제 지방행정 개편에 따라 김포군에 병합되었다. 1963년 1월 1일 서울시에 편입되어 영등포구 가양동이었다가 1978년 강서구 가양동으로 분리되어 현재에 이른다.

 

[서재와 명륜당]

 

   푸른 숲으로 둘러진 이 곳은 다른 곳의 향교와 달리 개방이 되어 내부 관람이 가능하다. 동재에 머물고 계시던 훈장님을 비롯하여 내부에서 화초 등 관리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던 관리자들도 만날 수 있었다.

 

[외삼문 밖의 비석군]

 

   서울의 유일한 향교와 개방하게 된 이유를 조심스레 묻자 지방교육기관인 향교가 서울에는 없지만, 행정개편 등으로 서울에 위치하게 되었다는 것과, 어느 지역을 가나 향교는 일반인 관람이 되질 않는 곳인데, 이 곳은 교육.관광 관련하여 개방하게 되었다고 하신다.

 

[담장 밖에서 본 대성전 지붕]

 

   이 곳으로 출입하던 학생들의 모습과 명륜당의 쪽마루에 앉아 여유시간을 보내시던 분들,.. 너댓명의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들에게서 많은 유적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에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향교를 방문중인 외국인들,..]

 

   참 아쉬웠다. 내가 관람을 마치고 나올무렵 외국인관광객이 훈장님을 만나 몇 마디 하는 듯 싶더니 나도 볼 수 없었던 명륜당의 문을 열어주시는게 아닌가?,... 아마 외국인이라 특별히 허용해 주신 듯 싶다. 얼렁 계단을 뛰어올라 내부 관람을 하고도 싶었지만,... 정말 아쉬웠다. 이곳의 제례행사때 다시 함 방문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다.

 

[유예당과 놀이마당]

 

   향교 앞 우측으로 아담한 한옥의 <유예당> 건물이 있다. 건물 앞에는 반원을 그리며 무대가 시설되어 있는데, 이 곳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선보이고 전수하는 공간인 듯 싶다. 전통 문화마당이라는 아름다운 글씨체의 표지판을 세워 놓았는데, 각종 문화공연을 많이 알려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