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百潭寺)
백담사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백담로 746에 위치한 사찰로 <전통사찰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다. 만해 한용운 선사와 전두환 전 대통령이 거쳐했던 사찰로도 유명하다.
[안내도 - 백담사 전경]
미니버스가 언덕에 위치한 일주문을 통과하면서 우측의 포장되지 않은 주차장에 정차를 했다. 숲에 가려진 일주문을 주차장에서 바라봄은 다소 무리겠다. 얼른 뛰어가 일주문의 모습을 담으려다 기다리는 일행들에게 수고를 끼치지 않을까 싶어 포기하고 말았다.
[일주문을 지나 사찰 안내문 - 좌측 등산로, 우측으로 경내 가는 길]
주차장 인근의 안내문을 중심으로 우측의 다리를 건너면 사찰 경내로 진입을 할 수 있고, 좌측의 길이 대청봉으로 향하는 등산로이다. 어짜피 이 사찰을 경유해야 하니 다리를 건널수 밖에,... 다리를 건너면서 제일 먼저 금강문을 들어선다. 화려하지 않은 금강문을 지나니 곧 사천왕문이다. 이곳의 사천왕상은 여타의 사찰에서 보아오던 것과는 상이하게 다름을 알 수 있겠다.
[춘성대선사비와 사리탑]
위키백과의 내용이다. 춘성스님(1891~1977)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문인이다. 출가 후 법명이 춘성이다. 별칭은 무애도인. 13세때인 1903년 출가하여 백담사에서 한용운에게 사사하였고, 송만공의 문하에서도 사사하였다. 거침없는 육두문자 풍자로 한국 불교계에 욕쟁이 스님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다리에서 보는 헌다실, 금강문, 범종루 - 좌에서]
그의 풍자 중 기독교 광신도들을 조롱하여 "한번 죽었다 살아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면, 내 *은 골백번 죽었다가 부활했으니 내 *을 믿으면 구천원 이상은 받지 않겠느냐"는 조롱이거나, "평생 한번 죽었다 살아난 것은 내 *밖에 못봤다"는 조롱들과 경찰서에 끌려가서 "내 고향은 우리 엄마 **이고, 본적지는 우리 아버지 **"라는 풍자는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단다.
[범종루와 만해기념관]
<설악산 심원사 사적기>와 한용운의 <백담사 사적기>에 의하면 백담사는 서기 647년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원년에 자장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한계사로 창건하고 아미타삼존불을 조성.봉안 하였다. 한계사로 창건 후 1775년(영조51년)까지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영취사로 바뀌다가 1457년(세조3년)과 1783년(정조7년)에 최붕과 운담이 백담사라 개칭하여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사천왕상]
전설에 의하면 백담사라는 사찰의 이름은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담이 100개가 있는 지점에 사찰을 세운 데에서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니 전면 5칸의 극락보전과 그 앞쪽으로 화엄실과 법화실이 나란히 마주하고 있다. 화엄실의 편액 아래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머물던 곳의 안내문과 더불어 방실과 마루에는 일상용품이 전시되어 있다.
[다른 사찰의 사천왕상과 다소 비교가 된다]
백담사는 내설악의 아주 깊은 오지에 자리잡고 있어서 옛날에는 사람들이 좀처럼 찾기 힘든 수행처였다. 수많은 운수납자가 불원천리하고 이곳을 찾아 백담사 계곡을 시원하게 흘러가는 맑은 물에 객진번뇌를 털어 내고 설악영봉의 푸른구름을 벗을 삼아 출격장부의 기상을 다듬던 선불장 이었다. 한용운이 편찬한 <백담사 사적기>에 의하면 부속암자로서 유지만 남아있는 곳으로 동암, 원명암, 백련암 등 8개 암자가 있었다.
[법당 극락보전과 법화실]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사는 1905년 이곳 백담사에서 머리를 깎고 입산수도하여 깨달음을 얻어 <조선불교유신론>과 <십현담주해>를 집필하고 <님의침묵>이라는 시를 발표하는 등 불교유신과 개혁을 추진하였으며, 일제의 민족침탈에 항거하여 민족독립운동을 구상하였던 독립운동의 유적지로서도 유명하다.
[화엄실 - 전두환 전 대통령이 머물던 곳]
경내에는 한용운 선사의 호를 붙인 건물들이 즐빗하다. 짧게나마 만해기념관도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짧은 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이 똥이다. 그 똥 보다 더 더러운 것이 시체이고 이 시체보다 더 더러운 것이 삼일본산의 놈들이다."라며 불교계를 질타하였던 글,.... 돈의 노예가 되어가는 듯 싶어 나름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보물 제1182호 - 목조아미타불좌상]
1988년 5월 28일 자로 전통사찰 제24호로 지정된 백담사는 보물 제1182호로 지정된 [목조아미타불좌상 복장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1928년 백담사의 복구가 끝난 당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사보(寺寶)로 현장의 유물로 전해지는 미타불상 3위(位)와 소종(小鐘) 1좌(坐)가 있고, 인조의 하사품인 칠층옥탑이 있었다.
[범종루 옆의 만해기념관]
보물로 지정된 목조아미타불은 영조 24년(1748)에 조성된 아미타목불좌상으로 18세기 전반기의 불상 가운데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높이 87cm로 백담사 극락보전에 주불로 봉안되어 있다. 머리 정상에는 계주(계주)가 큼직하게 솟아 있고 육계의 구분이 불분명하게 나발(나발)이 촘촘하게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둥글고 단아하며 당시의 사각형에 평판적인 얼굴보다 우수하다.
[기념관 앞 만해 흉상]
상체는 가슴이 넓고 어깨가 둥글어 당당한 인상을 주며, 하체의앉아 있는 형태는 넓고 큼직하며 상체와 조화를 이루는데 이러한 특징은 당시의 목조불상 가운데 대표작임을 알려 주는 것이다. 두 손은 시무외인여원인에 엄지와 중지를 맞댄 하품중생인(하품중생인)을 짓고 있고 두 발은 결가부좌하고 있다. 18세기 전반기 불상의 수작으로 평가되며 특히 복장품을 갖추고 있어서 주목된다.
[만해교육관의 마루에서 망중한의 스님들]
이외 복장유물로는 불상신조성회향발원문 1매, 다라니서입회향발원문 1매, 황참의 다리연화방거 한글발원문 1매, 자식점지 한글발원문 1매와 만자소화문황단삼회장저고리 1점 유리와 수정등의 파편 수 백점을 보자기에 싼 복장물 1괄이 보관되고 있어 당대의 복식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아름다운 단풍만큼 수 많은 돌탑들이 장관을 이룬다]
현재 백담사에는 법당, 법화실, 화엄실, 나한전, 관음전, 산신각등 6개동의 기존 건물 외에 만해 한용운 선사의 문학사상과 불교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만해 기념관, 만해 교육관, 만해 연구관, 만해 수련원, 일주문, 금강문, 만복전, 만해 도서관, 요사채, 양로실, 만해당, 헌다실, 적선당 등 16개의 건물로 구성된 한국의 대표적인 고찰의 하나이다.
[자연 속으로 물들어 가는 사찰 백담사]
백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기초선원으로 지정되어 갓 득도한 승려들의 참선수행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던 백담사 계곡,... 사찰 앞을 유유히 지났을법한 너른 물줄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강의 한 가운데 많은 불자들이 공들여 쌓았을 것 같은 헤아릴 수 없이 빼곡하게 들어섰던 돌탑들,... 그 어는 산사보다 아름다운 곳이라 여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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