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강화도령'이라 비꼬아 부름을 당했던 그가 왕위에 오르지만, 세도정치의 정쟁속에 권위마져 잃어버리고 39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철종>의 이야기 이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441번지에 위치한 <용흥궁>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이다. 강화경찰서의 담장을 따라 좌측으로 약 200여 미터를 가다보면 '청도식당'이 나온다. 그 옆에 용흥궁이 있다.
외부에서 보면 '궁'이라는 이름처럼 화려하거나 웅장한 규모의 건물은 아니다. 대문의 좌측으로 두 개의 비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하나는 <상국정공원용청덕애민영세불망비>이과 또 하나는 <관찰사정공기세영세불망비>이다. 이 두 비의 주인공은 정원용과 정기세로 서로 부자지간이다.
<정원용>은 본관은 동래, 자는 선지, 호는 경산. 이조판서 정기세, 목사 정기년, 부사 정기명 등의 아들을 두었다. <정기세>는 그의 첫째 아들로 이 곳 강화유수를 지냈다.
<용흥궁>의 안내문이다. 조선 철종(哲宗,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거쳐하였던 잠저(潛邸)로 강화유수 정세기가 철종 4년(1853)에 지금과 같은 건물을 짓고 「용흥궁」이라고 하였다.
좁은 골목 안에 대문을 세우고 행낭채를 두고 있어 창덕궁 낙선재와 같이 소박한 분위기를 풍긴다. 궁 안에는 철종 잠저임을 기록한 비석과 비각이 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내전 1동, 외전 1동, 별전 1동 등이다.
좁은 대문의 처마 밑에 흰 바탕에 <용흥궁>이라는 현판의 글씨체가 정말 맘에 든다. 대문을 들어서면서 가로 막혀진 담장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좌측으로 공간은 잠저의 비석과 비각의 공간과 생활공간을 나눔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골목의 풍경을 몇 담고 들어서려는데 관리인으로 보이는분께서 폐문시간이란다. 어렵게 부탁을 하여 내부를 둘러 보았다.
명색이 내전, 외전, 별전이라 명명하였겠지만, 사대부가와 비교하기란 무리가 있겠다. 좁디좁은 공간이라 느껴지는 용흥궁,....
좁은 마당의 한 켠 담장 밑에는 늘상 깨끗하게 닦아 온 듯한 장독대가 놓여져 있다. 굳게 닫힌 곳은 창고일거고, 각각의 문들이 모두 잠겨 있다.
비각으로 출입하는 문고리도 잠겨 있다. 'ㄱ'자 모양의 집이 내전일거고, 그 건물의 뒷쪽으로 보이는 지붕이 아마도 외전일거라 추축된다.
그 왼쪽으로 붉은색을 입은 작은 건출물이 비각일텐데, 담장에 가려져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잠저의 안내문이다. 이곳은 조선 철종(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거쳐하였던 잠저이다.
잠저는 왕세자와 같이 정상법통이 아닌 다른 방법이나 사정으로 임금으로 추대된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과 그 살던 기간을 말한다고 하는데, 새로 나라를 세우거나 반정으로 임금에 추대되는 사람,
또는 후사가 없어 종실에서 왕위를 잇게 하는 경우, 이들이 왕세자의 궁인 동궁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동궁과 구분해서 <잠저>라 하였다고 한다. 또 이를 용이 못에 잠입해 있다가 승천함에 비유하여 <잠룡>이라고도 하였다는 내용이다.
임금에 오른 뒤에는 대개 궁으로 승격하여 보호하였다고 하는데, 강화유수 정기세가 철종 4년(1853)에 원래는 초가의 집이였으나 이를 헐고 지금과 같은 건물을 짓고 <용흥궁>이라고 하였단다.
좁은 골목 안에 대문을 세우고 행낭채를 두고 있어 창덕궁 낙선재와 같이 소박한 분위기를 풍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잠저로는 <太祖>의 <咸興 本宮>과 <開成 敬德宮>, <仁祖>의 <儲慶宮>과 <於義宮>, <哲宗>의 <龍興宮>과 <英祖>의 <彰義宮> 등이 있었다고 한다.
[철종] 위 변. 초명 원범. 자 도승. 호 대용재. 전계대원군 광의 셋째 아들로, 조부는 장조(장헌세자)의 아들인 은언군이다. 비는 철인왕후 김씨.
1844년(헌종 10) 형 회평군 명(明)의 옥사로 가족과 함께 강화에 유배되었다가, 1849년 대왕대비 순원왕후의 명으로 궁중에 들어와 덕완군에 책봉되었으며, 1849년 19세로 헌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즉위 후 대왕대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였으며, 1851년 대왕대비의 근친인 김문근의 딸을 왕비로 삼았다. 문근은 국구로서 정권을 장악,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하였다.
1852년부터 왕의 친정이 시작되었으나 정치에 어둡고, 김씨 일파의 전횡으로 삼정의 문란이 극도에 달아혀 극심한 민생고를 유발, 경상도 진주, 함경도 함흥, 전라도 전주 등지에서 대규모의 민란이 일어났다.
조정에서는 속출하는 민란을 근본적으로 수숩하려는 의욕조차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 같은 사회정세에서 최제우가 주창한 동학사상은 학정에 허덕이는 민중 속으로 놀라운 속도로 파급, 새로운 세력으로 확대되었으며,
만민평등을 주장하는 천주교의 사상도 일반 민중은 물론 실세한 양반층에까지 침투되어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철종은 결국 재위 14년간 세도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색에 빠져 정치를 바로잡지 못한채 병사하였다. 능은 예릉이다. (네이버에서 옮김)
비각와 외전의 구역을 둘러보지 못한 아위숨이 있다. 햇님은 어느덧 밝은 빛을 조아려 나뭇가지와 담장 너머로 붉게 물들이고 있다. 나뭇짐을 지고 사립문을 들어서던 모습이 그림자에 드리워지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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