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강화(19) - #용진진(龍津鎭) #참경루 #강화외성 #효종
<용진진>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215번지에 위치한 시 기념물 제42호 이다. 갑곶진에서 동쪽 강화해협을 따라 남쪽으로 약 3km 지점의 용진진삼거리를 지나면서 국도변의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평평한 주변 농경지 보다 조금 높다 여겨지는 곳에 축성을 하고 포대를 시설하였다. 도로에서 솟아 올라 쉬이 볼 수 있다.
[용진진 전경 - 이곳 역시 축대를 쌓고 복토를 한 후 성곽을 쌓은 것 같다]
<진>이란 군인이 머물러 있던 무장 성곽도시를 이른다고 한다. 녹음이 물들어가는 이 계절에 아들과 함께 이 용진진에 도착을 하니 성곽의 주변으로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제거하기 위해 여러분들이 어깨에 제초기를 둘러메고 주변의 수초를 제거하느라 분주한 모습들이다.
[남쪽 성문 참경루와 용진진 사이의 성곽길이 계단이다]
성문을 바라보며 좌측으로 성곽은 끊겨져 있고, 우측의 성곽을 따라 원형의 용진진이 형성되어 있다. 성문 위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지붕의 내림마루와 추녀마루 곳곳에 시멘트가 떨어져 방치되어 있는데, 관리가 아쉽다는 생각이다. 문루에서 성곽의 계단을 따라 오르면 원형의 진이 있다.
[돈대 내부]
광성보와 연미정 등에서 보았던 둥그런 진이나 돈대에 연결되어 축성된 성곽,.... 조금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지만 지형에 맞게 돈과 진을 시설하고 강화도의 해안을 따라 가면서 <강화외성>의 터가 간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과 연결하였을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용진진의 성문 참경루 - 성의 외곽]
이 진은 조선 효종 7년(1656)에 쌓았다고 한다. 원래 병마만호 1인, 군관 24명, 사병 59명, 돈군 18명 도합 102명의 병력이 주둔하였으며 포좌 4문, 총좌 26개소의 시설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4문의 포좌는 있으되 성곽의 상부에 있어야 할 여장 등 시설물이 없어 총좌의 시설물 등은 확인 할 수 없다.
[참경루 내부에서]
이 진에서는 가리산, 좌강, 용당 등 3개 돈대를 관리하였다는 설명이지만, 돈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성곽을 따라 우측으로 성문이 있고 문루에는 江村 선생이 쓴 [참경루(斬鯨樓)] 현판이 걸려 있다. "고래를 참하다"라는 뜻 일텐데,.... 진정한 의미가 맞는지 모르겠다.
[참경루]
진은 둥근 원형이고, 각 포좌의 윗쪽에는 네개의 긴 석주를 얹어 놓아 상부에 있는 사람들의 이동이 용이하게 해 놓았지만, 깔아 놓은 넓직한 돌들이 흔들려 흙으로 채워 고정되도록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포좌의 중간 중간에 성곽으로 오르도록 계단을 시설해 놓았고, 작은 출구는 서쪽의 방면으로 한군데 시설되어 있다.
[서쪽으로 난 수구]
주변의 성곽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이 <진>은 성문이 내려다 보이고 주변을 경계하고 감시하는 역할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성곽의 문이 바다와 마주보게 쌓은 것이 아니라서 우측으로의 없어진 성곽이 해안으로 돌출되어 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추축해 보았다.
[성문 천정에 그려진 두 마리의 주작 같다]
원래 석축 대부분이 없어지고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 두 곳만 남아 있었다고 하는데, 1999년 문루와 좌강돈대를 복원하였다는 안내문이다. 성문의 천정에 그려진 두 마리의 새는 주작인 듯 싶다. 짧은 성곽의 성문은 굳게 닫혀져 있지만, 많은 사람들 발걸음은 끝없이 이어질거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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