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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행

#경기 파주 #화석정(花石亭) #율곡 #이이 #화석정시(花石亭詩) #경기 유형문화재 제61호

by 포리시스 2013. 7. 17.

<화석정>은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산 100-1에 위치한 임진강가에 세워진 정자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1536~1584)가 제자들과 함께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던 곳이다.

 

 

화석정 안내문

 

원래 고려 말의 문신인 야은 길재의 유지가 있던 곳에 1443년(세종 25) 율곡의 5대 조부 이명신이 정자를 건립하였는데, 1478년(성종 9) 이이의 증조부 이의석이 중수하고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화석정

 

율곡도 이 건물을 다시 지었다고 하는데, "화석정"이란 이름은 당나라 재상 이덕유의 별장 평천장의 記文(기문)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많이 봄직한 글씨체 화석정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뒤 80여년간 빈터로 남았다가 1673년(현종 14) 이이의 증손이 복원했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다시 복원한 것으로 건축양식은 팔작지붕 겹처마에 초익공 형태로 조선시대 양식을 따랐다는 안내문의 내용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쓴 화석정 현판

 

잔차를 타고 도착한 곳에 임진강의 커다란 물줄기와 자동차의 전용도로가 보이기는 하지만, 화석정의 이정표를 찾기가 힘들었다. 언덕의 작은 고갯길이 있어 혹여 다른 곳의 산을 넘는 길은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애써 오르고 인기척이 없는 길을 따라 가다보니 이내 내리막의 언덕에 주차장이 보인다.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대여섯대의 주차가 가능한 곳의 한켠에 어르신이 운영하는 자그마한 매점과 뒷편으로 화장실의 건물이 자리하고, 문화재 안내문과 함께 강변을 바라보며 정자가 서 있다.

 

시원스레 펼쳐진 임진강 상류쪽 풍경

 

화석정이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정자의 양쪽 느티나무 그늘에서 망중한을 보내며 더위를 식히고들 있다. 화석정에 올라 주변 풍경을 보노라면 자연스레 시원한 강바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임진강의 하류쪽 풍경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사각의 기둥을 세웠는데, 따로 난간 등의 꾸밈 시설을 하지 않아 평범하고 아담하게 느껴진다.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의 화석정

 

<화석정>,... 현판에 새겨진 흰색의 굵직한 필체는 여타의 곳에서 간혹 보아오던 글씨체이다. 끝 부분에 고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이 씌여져 있다.

 

 

시원스레 흐르는 임진강변에 풍경이 좋은 화석정

 

정자의 내부에는 빼곡한 글씨들로 채워진 편액들이 걸려져 있고, 그 중 세로 여덟 줄의 싯구가 보이는데 화석정시일거다. 안내문의 내용을 옮겨 보았다.

 

화석정 시

 

임정추이만 소객의무궁

산속의 정자에는 가을이 이미 깊었는데, 시인의 마음은 끝없이 펼쳐지네

 

시원한 그늘에서 망중한을 보내는 관람객들

 

원수연천벽 상풍향일홍

멀리 강물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서리맞은 단풍은 해에 닿을 듯 붉구나

 

주변 풍광이 정말 좋은 곳이다.

 

산토고륜월 강함만리풍

산은 외로운 둥근 달을 토해내고, 강은 만리에서 불어온 바람을 머금었네

 

아름다운 연인의 모습

 

새홍하처거 성단모운중

하늘 가에 나는 기러기는 어디로 가나, 끼룩거리는 소리 노을구름 속에서 그친다

 

 

화석정 내부

 

정자에 걸려 있는 이 시는 8세 때 율곡이 썼다는 '화석정에 부친 시' 이다. 어린 나이에 썼다고는 하지만 시상과 표현이 정말 아름답다.

 

화석정 내부

 

옛 풍경만큼 남아 있지는 않겠지만 커다란 물줄기가 휘돌아 가는 모습과 넓은 들녘에 꽂힌 산, 그리고 희밋한 뭉게구름을 보며 나름 싯구에 맞추어 보았다.

 

 

화석정 시 - 이이가 8세때 지었다고 한다.

 

"단 한가지의 정의롭지 못한 일을 행하고 무고한 단 한사람의 생명을 희생하여 천하를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자경문에서)

 

화석정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8년전 공부하는 천재와 실천하는 학자 율곡 선생은 49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죽음을 앞두고 동생에게 구술하여 변방대책인 '육조방략'을 쓰게 하였다고 합니다.

 

 

화석정 시 한 편 읊조리면 좋겠다.

 

율곡선생의 부음이 전해지자 선조는 궐 밖에서 들릴 정도로 "어진 재상이 서거하니 내 마음이 몹시 아프다." "사흘 동안 조회를 열지 않겠다. 수라상에 고기를 올리지 말라.

 

보호수 느티나무와 화석정

 

나라를 위해 몸이 여위도록 애쓴 경이야 무엇이 슬프리오? 큰 물 가운데 노를 잃어버린 나야말로 애통하다." 라며 대성통곡을 하였다고 한다. 1623년 영의정에 추증되고 이듬해 문성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율곡 이이를 되새겨 보면 좋을 것 같다.

 

선생에 대한 아련한 역사속의 기억들을 되새겨줄 것만 같은 화석정,....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파주의 관광명소이자 역사의 장이라 여겨 보았다. 삼천리 금수강산~~~~ 역사를 안고 있는 우리 강산 참 아름답다 뇌여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