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22) = #서오릉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경릉 #창릉 #익릉 #명릉 #홍릉
서오릉은 사적 제198호 이다.
또한 조선 42기의 능 가운데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태조 원비 신의왕후의능), 후릉(정종과 정안왕후의 능)을 제외한 40기의 능이 남한에 있는데, 500년이 넘는 한 왕조의 무덤이 이처럼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은 세계에 그 유례를 찾기 힘들며 문화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조선왕릉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서오릉 안내도 = 5릉, 2원, 1묘가 있다]
[경릉] : 추존 덕종과 소혜왕후의 능
덕종은 제7대 세조의 맏아들로 1455년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즉위하기 전 20세에 세상을 떠났다.
[경릉의 홍살문과 정자각]
의경세자(덕종)는 둘째 아들 성종이 임금이 되어서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정자각을 중심으로 능침 배치는 좌측에 소혜왕후, 우측에 덕종의 능침으로 반대이다]
소혜왕후는 서원부원군 한확의 딸로 1455년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1475년 의경세자가 덕종으로 추존되자 인수대비가 되었다.
[소혜왕후의 능침 - 능의 형식으로 석물을 모두 갖춤]
성품이 총명하고 학식이 깊어 부녀자들의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내훈"을 책으로 펴내고 한문 불경을 한글로 풀어쓰기도 했다.
[덕종의 능침 - 원의 형식을 갖춤]
[창릉] : 조선 제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능
예종은 제7대 세조의 둘째 아들이다.
[창릉 홍살문과 정자각]
세자였던 형(의경세자)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세자로 책봉된 후 19세에 왕위에 올랐다.
[정자각과 능침]
예종은 재위 1년 2개월 동안 각 도의 병영에 속한 전답인 둔전을 일반 농민이 경작하게 하여 백성들을 경제적 곤궁에서 벗어나게 하는 등의 업적을 세웠다.
[안순왕후의 능침]
안순왕후는 청천부원군 한백륜의 딸로, 1463년에 세자 후궁 소훈이 되었고, 1468년 예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예종의 능침]
[익릉] : 조선 제19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의 능
인경왕후는 광성부원군 김만기의 딸로 1671년 11세 때 세자빈이 되었다가 1674년 숙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익릉의 홍살문, 정자각, 수복방]
20세 때 천연두를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공주 둘을 두었으나 모두 오래 살지 못했다.
[계단으로 이어진 향로, 어로]
[명릉] : 조선 제19대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 제2계비 인원왕후의 능
숙종은 제18대 현종의 아들로 1674년에 현종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다. 숙종 대의 조선 정치는 그 어느 때보다 정쟁이 심했지만, 숙종은 각 붕당의 정쟁 위에서 왕권을 강화하고 사회체제 전반을 정비하는 큰 공적을 남겼다.
[명릉의 홍살문과 정자각]
인현왕후는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딸로, 숙종의 원비인 인경왕후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1681년 가례를 올리고 숙종의 두번째 왕비가 되었다. 인현왕후는 기사환국으로 폐위되었다가 갑술환국 때 복위되었다.
[향로, 어로 양 옆으로 신하들이 걸었던 변로가 특색이란다]
인원왕후는 경은부원군 김주신의 딸로 인현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1702년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영조가 왕위에 오른 후 대왕대비가 되었다.
[정자각 뒤쪽 숙종과 인현왕후, 좌측에 인원황후 능침]
[홍릉] 조선 제21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의 능
정성왕후는 달성부원군 서종제의 딸로 1704년 숙종의 둘째 아들인 연잉군과 가례를 올렸다.
[좌측 왕의 능침 자리가 비어 있다. 영조의 능을 조성하려 했으나 동구릉에 조성 되었단다]
1724년 경종이 세상을 떠나고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엉겅퀴]
평생 숙종과 경종의 왕비를 극진히 모시며 내명부를 지켰다. 1757년에 소생 없이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내림마루 위의 잡상]
[순창원] : 조선 제13대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의 공회빈 윤씨의 원
순회세자는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의 아들로 7세 때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3세에 세상을 떠났다.
[순창원 홍살문과 정자각]
공회빈은 윤옥의 딸로 1561년에 세자빈이 되었으나 순회세자가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왕비가 되지 못하였다
[정자각과 능침]
[수경원] : 조선 제21대 영조의 후궁이자 추존 장조(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의 원
영빈 이씨는 이유번의 딸로 1701년에 궁녀가 되었고, 영조의 후궁이 되어 1730년에 영빈이 되었다.
[수경원]
영조 사이에서 1남 6녀를 낳았으며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대한제국 선포 후인 1899년에 사도세자가 장조의 황제로 추존되자 영빈도 추존되어 시호를 소유, 원호를 수경이라 하였다.
[대빈묘] : 조선 제19대 숙종의 후궁이자 20대 경종의 어머니 옥산부대빈 장씨(장희빈)의 묘
옥산부대빈은 장형의 딸로 1686년에 숙종의 후궁이 되었고 1688년에 경종을 낳아 희빈이 되었다. 기사환국으로 인현황후가 폐위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가 갑술환국 때 다시 희빈으로 강등되었다.
[대빈묘]
인현황후가 세상을 떠난 후 왕후를 무고한 죄로 43세로 세상을 떠났다. 경종이 왕위에 오른 후 옥산부대빈으로 추존되었다.
[장희빈의 묘역]
익릉에서 홍릉으로 넘어가는 소나무길 아래 예종의 첫째 아들인 <인성대군초장지>가 있다. 처음 인성대군이 세조 9년에 세상을 떠나자 의경세자(덕종)의 무덤 근처에 묘를 조성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서삼릉 경내 왕자.왕녀묘역으로 이장되었다.
[인성대군 초장지]
인성대군은 예종과 장순왕후 한씨의 아들로 세조 7년에 원손으로 태어났으나, 세조 9년 3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세조는 어린 손자에게 효소라는 시호를 내리고, 인성군으로 추봉하였다.
[산책하는 시민들 ]
성종 즉위 후 어머니 왕후로 추존되자 1472년에 대군으로 다시 추봉하였다는 안내문의 내용이다.
[손자랑,,.....]
요즘같은 무더위에 다소 힘은 들겠지만, 지인분들과 그늘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걸으며 담소하는 것도 참 좋은 듯 싶다. 서어나무길, 소나무길, 대빈묘 구간은 다소 언덕이라 땀을 좀 흘릴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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