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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행

인천 강화(25) - #장정리 오층석탑 #봉은사지 오층석탑 #고려 광종 #고려 태조 #전설

by 포리시스 2018. 8. 1.

   인천 강화(25) - #장정리 오층석탑 #봉은사지 오층석탑 #고려 광종 #고려 태조 #전설



   <강화 장정리 오층석탑>은 <봉은사지 오층석탑>으로도 불리며 보물 제10호 이다. 봉은사는 개성에 있던 고려시대의 국가사찰로 고종 19년(1232)에 수도를 강화도로 옮길 때 함께 옮겨졌다.



   발견당시 주변에 흩어져 있던 석재를 1960년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세웠다. 3층 이상의 몸돌과 5층의 지붕돌, 상륜부가 유실되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부분의 높이는 3.5m이다.



   만든 수법으로 보아 고려후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봉은사는 고려 광종 2년(951)에 창건되어 태조 왕건의 진영을 봉안한 국가사찰이었는데, 고종 19년에 몽고의 침입을 피해 수도를 강화로 옮기면서 개성 봉은사와 같은 이름의 절을 이곳에 세웠다고 전한다.



   고려 고종 36년에서 46년까지 매해 2월 연등회를 개최하였으며, 고종에 이어 등극한 원종 역시 7차례 연등회를 개최하였다고 한다. 폐사의 시기는 확실치 않으며, 사지에는 오층석탑과 방형의 우물이 있다.



   [재미있는 전설이 담긴 오층석탑]

   고려시대, 마을 사람들이 빨래를 하러 오는 연못이 있습니다. 어느날 한 여인이 빨래를 하러 가니, 함이 떠 있는게 아니겠어요. 그 함 안에 사내아이가 있더랍니다.



   그 여인은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임금님께 아이를 바쳤습니다. 임금님은 그 아이의 이름을 '봉우'라 짓고 잘 기르라고 하였답니다.



   봉우는 자라서 나라에 많은 공을 세웠고 후손인 봉천우는 그 부인을 위해 봉은사를 짓고 석조여래입상과 오층석탑을 세워 고마운 마음을 기렸다고 합니다.



   멀리서 올려다 보니 여러층의 석축 위로 탑신이 조금 보인다. 육안으로 보아도 많이 훼손되었음을 알 수 있겠다. 층을 지어 쌓은 5~6 단의 석축은 서로의 폭이 좁아 건축물이 자리하기는 무척 어렵겠다.



   탑의 위치와 우물터 자리를 제외하면 사찰의 건축물이 얼마나 들어설 수 있을까 의아하기도 하다. 규모가 큰 사찰이었을텐데 아마도 탑의 위치로 보아 울창한 숲의 뒤쪽으로 더해져 전각들이 서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동쪽으로 내려다 보는 이 곳 마루터에도 잠깐 동안 비를 머금은 대지는 이내 녹음이 짙어지는 느낌이 든다. 뿌옇게 피어오르는 안개와 푸르름은 다소 축축한 느낌이지만, 이름 모를 부인의 고마움을 기렸던 봉천우의 마음은 어떠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