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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기행

#서울둘레길 #북한한둘레길 #도봉구 #연산군 묘 #사적 362호 #폐비신씨 #중종반정

by 포리시스 2021. 3. 20.

서울둘레길 마지막 코스인 도봉구 방학동 <묘역길 구간>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다. 주택가와 인접해 있는 재실과 묘역 아래에는 아름드리 멋진 은행나무가 서 있다.

 

연산군 묘역 - 앞줄 능양위 구문경 부부 묘, 가운데 태종 후궁 의정궁주 묘, 뒷쪽 연산군 부부 묘

이 묘역에는 조선왕조의 10대 임금이었던 연산군과 부인 폐비신씨, 그리고 태종의 후궁인 의정궁주, 연산군의 사위 능양위 구문경과 부인이자 연산군의 딸 휘순공주의 묘가 함께 자리한다.

 

가운데 의정궁주의 묘가 먼저 있었으나 훗날 뒷쪽 연산군 묘가 이장되었다고 한다.

연산군은 재위기간 실정으로 인해 관민의 원성과 반발을 사게 되면서 15069월 중종반정으로 축출되어 폐주가 되었다. 군으로 신분이 강등되어 강화도 교동도로 귀양을 갔다.

 

문인석,장명등

2개월 후 그 해 11월 사망을 하여 교동도에 묻혔으나 1513년 연산군의 아내 폐비 신씨의 청이 받아들여져 대군 신분의 예우로 이곳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연산군 묘

폐비 신씨는 1488년 왕세자인 연산군과 혼인하여 황세자빈이 되었고, 1494년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다. 하지만 연산군이 폐출당하면서 거창군부인으로 강등되었고, 1537년에 사망한 후 연산군묘 옆에 안장되었다.

 

폐비 신씨 묘

연산군은 재위 도중 반정으로 폐위되었고 군으로 강등됨에 따라 재위한 임금임에도 불구하고 묘소 명칭을 이 아닌 이다. 묘비에도 연산군지묘라고 간결하게 새겨져 있다.

 

연산군지묘

통상적인 왕의 능침 형태보다 소략한 것이 특징으로 봉분과 담장, 묘비 각 1, 혼유석와 망주석 각 1, 장명등 1, 향로석 1좌를 갖추었다.

 

거창군부인지묘

연산군과 폐비신씨의 묘 앞에 태종의 후궁인 의정궁주 조씨의 묘가 있다. 나이가 많았던 태종과 혼인을 하려다 혼례도 치르지 못하고 태종이 사망하자 과부가 되었다.

 

문인석

원래 의정궁주의 묘가 먼저 있었지만 강화 교동에서 죽은 연산군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하면서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고 한다.

 

문인석

능양위 구문경은 1501(연산군 7) 연산군의 딸 휘순공주의 부마가 되었다. 같은 해 7월 능양위로 임명되었고, 중종반정 후 연산군이 폐위되자 구문경과 공주의 직첩을 거두고 폐하여 서인이 되었다.

 

의정궁주 조씨 묘

1506(중종 1)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공을 세웠던 아버지 구수영은 조정에 연산군과 절혼할 것을 청하여 구문경과 공주가 이혼을 하게 되었고,

 

연산군 사위 구문경 묘

당시 사헌부에서 구수영이 연산군의 총애를 받은바 있어 자신에게 화가 미칠까 두려워 절혼하게 했다고 비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고 이후 중종은 구문경 부부를 다시 합하도록 하였다 한다.

 

연산군 딸 휘순공주 묘

재위 중 폐위된 임금으로 노산군과 광해군이 있다. 노산군 묘는 숙종 때 장릉(단종)으로 복위되었으므로 연산군과 광해군의 묘만 조선왕릉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문화재에는 등록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