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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기행

#길상사 #법정스님 #무소유 #길상화 #대원각 - 서울 성북구 (1)

by 포리시스 2019. 12. 17.

#길상사 #법정스님 #무소유 #길상화 #대원각 - 서울 성북구 (1)


   가을 같은 겨울,....

파아랗게 드리워진 하늘에 정말 포근한 날씨다. 전각을 뒤덮은 아름드리 나무엔 아직 떨어지지 않은 색바랜 단풍이 겨울속의 가을을 느끼게 해 준다.


[삼각산 길상사]


   오래전부터 꼭 들러보고 깊은 곳이였는데 드디어 발걸음을 했다. 휴일이라 그런지 많은 분들이 내방했다. 잘 가꾸어 놓은 한옥의 정원처럼 협소한 계곡에 걸터 앉은 한옥의 멋스럼이 일품이다.


[극락전]


   경내를 걷다보면 본당을 비롯하여 주변 전각들에 단청이 되어 있지 않아 혹여 사찰일까 싶기도 하다. 법정 스님께서 생전에 사치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다고는 하지만, 시주하신 분의 마음을 헤아려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하심이 아닌가도 싶다.


[사찰같지 않다]


   이 곳에 하얀 눈이 뒤 덮여졌을 모습, 연녹의 녹음이 짙어진 모습, 오색 단풍은 물론 아름다운 꽃과 어우러져 있는 사계의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해 본다.


[보리수 아래 부처님]


   극락전 마당으로 통하는 아치형 문이 많이 훼손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풍스러운 문양과 화려한 그림으로 깔끔하게 장식되었을 이 문을 보고 있노라니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을까 궁금해진다. 이 문에서 바라다 보며 건너편에 공덕주 사당과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극락전으로 향하는 아치형 문]


   공덕비의 내용을 옮겨 보았다. [공덕주 길상화 보살, 본명 김영한 : 1916~1999] 

   김영한은 1916년 민족사의 암흑기에 태어나 16세의 나이로 뜻한 바 있어 금하 하규일 문하에서 진행이란 이름을 받아 기생으로 입문하였다.


[사찰 관람객]


   1937년 천재시인 백석으로 부터 자야라는 아명으로 불리었던 그녀는 1953년 중앙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생전에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 등의 저술을 남겼다.


[다리 건너 좌측으로 사당과 공덕비가 있다]


   1955년 바위 사이 골짜기 맑은 물이 흐르는 성북동 배밭골을 사들여 <대원각>이란 한식당을 운영하던 그녀는 1987년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회향을 생각하고 7천여 평의 대원각 터와 40여 동의 건물을 절로 만들어주기를 청하였다.


[지붕에 소복히 쌓인 단풍]


   1997년 12월 14일 대원각이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창건되는 아름다운 법석에서 김영한은 법정스님으로부터 염주 한 벌과 길상화라는 불명을 받았다.


[사철 풍경이 참 좋겠다]


   길상화 보살이 된 그녀는 "나 죽으면 화장해서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길상헌 뒤뜰에 뿌려 주시오."라는 유언을 남기고 1999년 11월 14일 육신의 옷을 벗었다.


[길상화 사당과 공덕비]


   다비 후 그녀의 유골은 49제를 지내고 첫눈이 온 도량을 순백으로 장엄하던 날 길상헌 뒤쪽 언덕바지에 뿌려졌으며, 무주상보시의 귀한 뜻을 오래도록 기리고자 2001년 11월 21일 공덕비를 세웠다.


[한옥과 잘 어울리는 풍경]


   계곡의 상류에 <진영각>이 있다. 법정 스님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 전각이다. 입구를 들어서며 우측 담장 아래 스님의 유골을 안치했다는 푯말이 서 있고, 쪽마루 옆에 잘 다듬지 않은 아주 소박한 나무의자가 내방객을 맞이한다.


[부자의 모습도 정겹고]


   아마도 생전에 스님께서 사용하셨던 것 같다. 이 전각은 숲이 우거지는 한 여름이면 첩첩산중에 묻힌 암자처럼 느껴질 것만 같다. 입구에 스님의 약력을 담아 놓았다. 옮겨본다.


[모녀의 모습도 정겹다]


   1932~2010. 전라남도 해남 출생. 한국 전쟁의 비극을 경험하고 인간의 선의지 와 진리의 길을 찾아 1956년 효봉학눌의 문하로 출가하여 수행자의 기초를 다진 후,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대교과를 졸업하고 쌍계사, 해인사, 송광사 등 선원에서 수선안거했다.


[진영각]


   1960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 불교사전 편찬, 불교 경전 역경에 헌신하였으며 1975년 송광산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수행했다. 하지만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자 1992년 아무도 거쳐를 모르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홀로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였다.


[스님이 모셔진 곳]


   1994년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를 창립하여 이끌어주었고, 무소유사상에 감동한 김영한 여사가 성북동의 대원각을 무주상보시하여 1997년 길상사를 창건하였다. 


[진영각]


   2010년 3월 11일 법랍 55세, 세수 78세로 길상사 행지실에서 입적하였다. 저서 및 역서로는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 <물소리 바람소리> <화엄경> <숫타니파타> 등이 있다.


[다듬지 않은 나무 의자]


   [길상사7층보탑]

길상사7층보탑은 조선 중기(1600~1650)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지혜와 용맹을 상징하는 네 마리의 암수 사자가 기둥 역할을 하며 입을 연 두 마리는 교를 상징하고, 입을 다문 두 마리는 선을 상징한다.



   4사자 가운데 모셔진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인은 정면에서 시계방향으로 선정인, 항마촉지인, 통인, 전법륜인을 하고 있다.



   이 탑은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님이 법정스님과 길상화보살님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종교화합의 의미를 전하고자 무상으로 기증하였으며 2012년 11월 11일 기단부에 오장경, 금강저, 오불, 108향염주, 다라니 등을 봉안하였다.



   이후 사절인연으로 미얀마의 제1보궁 우뚜리와 완사 큰 스님이 1,600년 전 고탑 해체 과정에서 직접 출토하신 부처님 오색정골사리, 구강사리, 응혈사리와 제자인 목건련존자, 마하가섭존자, 라흘라존자 등의 사리를 2013년 8월 25일 탑신부에 봉안하였다.



   불보살님의 사리가 모셔진 이 길상보탑에서 기도한 공덕으로 모든 분들이 부처님의 무량한 가피 받으시고, 이고득락하시길 발원합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데는 오직 두 길이 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을 속속들이 지켜보면서 삶을 거듭거듭 개선하고 심화시켜 가는 명상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다. 하나는 지혜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자비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