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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기행

#강원 고성 #화진포 #화진포의성 #김일성 별장 #통일전망대 #해금강 #이화진 #금구도 #고성 가볼만한 곳

by 포리시스 2010. 4. 21.

[화진포] - 송림과 해당화가 어우러진 철새도래지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와 현내면 초도리, 죽정리에 연접한 화진포는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 붙여진 이름으로 둘레 16km의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이다.

 

화진포의 성 - 김일성 별장

 

넓은 갈대밭 위에 수천 마리의 철새와 고니가 날아들고 울창한 송림으로 둘러싸여 주변경관이 빼어나 예로부터 주변에 유명한 별장들이 많았던 곳으로 지금도 이승만대통령화진포기념관&별장과 이기붕 별장, 화진포의 성(김일성 별장)이 역사안보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화진포의 성 - 김일성 별장

 

1970년대부터 겨울 철새이면서 천연기념물 제201호인 고니와 청둥오리 등 철새가 많이 날아와 호수일대에 장관을 이루고 있다.

 

화진포의 성 - 김일성 별장

 

초도리 앞 500m 해상에는 3,300여 제곱미터의 <금구도>라 이름 붙여진 이곳은 신라시대 수군의 기지로 사용하던 곳으로 섬의 북쪽에 석축 일부가 남아 있고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섬의 중심부에서 와편과 주춧돌이 1997년 4월 문화재연구소 학술 조사반에 의해 발견되기도 했다.

 

화진포의 성 내부 기록물

 

[화진포의성] - 일명 김일성 별장

일본 강점기인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에 있는 외국인 휴양촌을 화진포에 강제 이주시켰으며, 독일 건축가인 H.Weber가 1938년 건립하여 예배당으로 이용하였으며,

 

화진포의 성 내부 기록물

 

해안 절벽 위 송립속에 우아하게 자리한 모습에서 "화진포의 성"으로 불리워졌으며, 1945년 이후에는 북한이 귀빈 휴양소로 운영하였고, 당시 김일성의 처 김정숙과 김정일 형제가 묵고 간 적이 있어 지금까지 "김일성 별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음.

 

화진포의 성 내부 기록물

 

[화진포 설화]

먼 옛날 화진포 마을에 이화진이라는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인색하고 성격이 고약해 마을에 구두쇠로 소문이 자자했다.

 

화진포의 성 내부 기록물

 

그러던 어느 날 건봉사 스님이 이화진의 집을 찾아와 시주를 얻으려 하자 시주대신 소똥을 퍼주었다.

 

화진포의 성 내부 기록물

 

그러자 스님은 염불을 외며 소똥을 바랑에 받아 넣고는 답례로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말하며 돌아서 나갔다.

 

화진포의 성 내부 기록물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며느리는 얼른 쌀을 퍼서 스님께 드리며 "우리 아버님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라며 빌었다.

 

화진포의 성 내부 기록물

 

그러자 스님은 들은 체도 않고 화진포 고개의 고총산까지 올라갔다. 며느리가 쫓아오는 것을 보고 딱 멈춰서며 며느리에게 말했다. "왜 자꾸 나를 쫓아오시오?"라고 묻자 며느리는 사정을 하며 또 용서를 빌었다.

 

화진포의 성 내부 전시 유물

 

그러자 스님은 시주를 받으며 "그대는 나를 따라 오면서 무슨 소리가 나더라도 절대 돌아보지 말라."고 말했다.

 

저멀리 금구도인가보다

 

며느리가 얼마 동안 스님 뒤를 따라 걷는데 갑자기 뒤에서 "쾅"하고 하늘이 무너질 듯 한 큰 소리가 나자 며느리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다 봤다.

 

고성통일전망대

 

그러자 하늘에는 폭우가 마구 쏟아지고, 이화진이 살던 집이며 논밭이 순식간에 모두 호수가 돼 버렸다.

 

전망대에서 본 해금강

 

스님은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고, 며느리는 애통해 하다 그만 돌이 되어 버렸다. 그 일 이후 고을에 큰 홍수가 나고, 농사는 흉년이 들기 시작했다.

 

금강산에서 이어지는 해금강 능선

 

이 마을 사람들은 착한 심성을 가진 며느리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겨 고총서낭신으로 모셨는데 그 후로 농사도 잘 되고 전염병도 사라졌다고 한다.

 

앞에 검은 섬이 송도. 군사분계선. 그 뒤로 구선봉

 

화진포라는 이름도 바로 이화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351고지 전적비

 

[화진포 성]

1937년 일본 군부는 비행장 부지로 사용하기 위해 외국인 선교사들의 별장이 있던 원산의 휴양촌을 강제 철거키로 결정하였다.

 

351고지 작전기념비

 

대신 원산 해변에서 해안을 따라 남으로 약 1백 마일 떨어진 이상적인 장소를 선교사들의 휴양지로 제공하였다.

 

전시 유물

 

선교사로서 당시 휴양지 이전에 대한 실행위원이었던 서우드 홀 박사는 독일에서 히틀러 공포정치를 피해 망명해 온 독일인 베버에게 조그마한 별장 하나를 바다에 연한 암벽위에 짓게 하였다.

 

6.25전쟁체험전시관

 

독일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베버는 1938년 회색돌로 지은 원통형 2층 건물을 현위치에 지었는데 마치 유럽의 작은 성을 닮은 모습의 멋진 건축물이었다.

 

전시 유물

 

[셔우드 홀, 1893~1991]

셔우드 홀은 평양 감리교 선교 개척자인 캐나다인 아버지 윌리엄 제이미스 홀과 조선에서 병원, 학교, 교회 사업을 활발히 전개한 어머니 로제타 혀우드 사이에서 태어났다.

 

체험관 내부

 

셔우드 홀은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과 캐나다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함께 공부한 미국인 의사 메리안 바텀리와 결혼하여 한국에서 의료 선교 사업을 하여 큰 업적을 남겼다.

 

#중공군 뱃지

 

1932년에는 결핵치료를 위해 한국 최초로 크리마스 씰을 발행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일제시대에는 간첩으로 몰려 형무소 생활과 한국으로부터의 강제 추방을 당하는 등 심한 핍박을 받기도 했다.

 

#모택동뱃지

 

조선 사람의 질병 퇴치를 위해 온 가족과 함께 헌신한 선교사이며 파란 눈의 조선인인 셔우드 홀은 그의 부인 그리고 부모와 함께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북한군 모장

 

아래 글은 고성군홈페이지에서 옮겼다. 화진포의 성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석조 건물로 지어져 당시 건축물로는 제법 화려함이 엿보입니다.

 

#미그15 전투기

 

그러나 이 별장은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훼손돼 방치되다가 지난 64년 육군에서 본래의 건물을 철거하고 지금의 1층 건물로 재건축, 장병 휴양시설로 애용해 왔습니다.

 

탄창주머니

 

화진포의 성에는 옛 별장의 모습을 담은 사진자료를 비롯해 김일성 가족이 사용했던 응접세트 등 각종 유품이 모형물로 만들어져 전시됩니다.

 

모형

 

화진포의 성의 절경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은 마주 보이는 금구도라 불리는 바위섬으로 화진포 해변에서 3백여 미터 떨어진 금구도는 거북 모양을 닮은데다 가을철이면 이 섬에서 자라는 대나무 숲이 노랗게 변해 섬 전체가 황금빛을 띱니다.

 

여름에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건너가 해초, 전복 등을 따며 해수욕을 즐기고 겨울철에는 천연기념물 201호인 고니를 비롯한 철새가 군무를 펼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