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신묘> 강원도 양양군 조산리에 있는 강원도 기념물 제73호 이다. 남대천의 강하구 낙산해수욕장 부근에서 낙산사 방면으로 곧게 뻗은 길을 가면서 약 400여미터 가량 지점의 좌측에 있다.
<동해신묘>는 신라 때 이래 동해용왕신에게 제사 지낸 제단으로, 고려 공민왕 19년(1370) 강릉 안인포에 설치되었다가 성종 21년(1490)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으며, 조선초기에 중사(중사 : 국가적 제사로 대.중.소사의 규모중 중간)로 제정되었다. <동해신묘>는 서해의 풍천, 남해의 나주지방과 함께 바다신에게 매년 2월과 8월에 풍년을 기원했던 곳이며, 나라에서는 제사에 사용할 향과 축문을 내려 보냈다.
이곳 <동해신묘>는 조선 경종 2년(1722)과 영조 28년(1752)에 양양부사 채팽윤과 이성억에 의해 건물이 다시 지어졌고, 정조 24년(1800) 어사 권준과 강원도 관찰사 남공철의 요청으로 재차 중수되었다. 그러나 순종 2년(1908)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으로 인해 비석이 잘리고 건물이 철폐되었다가 1993년부터 양양군에 의해 복원사업이 추진되었다. 현재 동해신묘 옛터에는 남공철에 의해 1800년에 세워진 동해신묘중수기사비가 남아 있다. <안내문에서>
다음 내용은 <디지털강릉문화대전>에서 옮겨온 글이다.
[정의] 우리나라 동해안 강릉 정동의 동해신을 모신 곳.
[개설] <동해신묘>의 창설연대는 자세하지 않으나 명나라 태조가 고려 공민왕(恭愍王) 19년(1370)에 고려에 사절을 보내서 국내산천에 제사를 행하고 임금이 목욕재계하여 친히 축문을 고하였다 한다. 조선왕조가 세워지면서 이성계가 왕위에 올라 명나라 법전에 따라 동해묘를 중건하였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사해(四海)가운데 첫 번째로 동해신(東海神)의 신호(神號)를 내렸다는 기록이 들어 있다.
이러한 방증으로도 동해신묘의 창건시기를 이 시기로 상정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동해신묘의 건립 연대를 고려 공민왕 19년 즉 1370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조선 초기 사전(祀典)이 정비되면서 동해묘는 중사(中祀)로 제정되었다. 태종 14년(1414) 8월 예조에서는 동해는 양양, 남해는 나주, 서해는 풍천으로 정하고 치제를 관에서 주관하였다.
<동해신묘>의 본래 위치는 『양주지』에 의하면 강릉 안인포에 있었으며 성종 21년(1490)에 수군만호영(水軍萬戶營)이 양양읍 조산리로 이전함에 따라 이건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매년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내는데 관우의 신위를 봉안하고 분향을 했으며, 일체의 예법을 중국 명나라 광덕왕의 예법에 따랐다고 한다. 애초에 정동촌에 있었던 당시 관우신위를 봉안한 것인지, 옮겨지면서 그와 같이 된 것인지 또는 본래 정동촌에서는 용왕신위였는데 관우신위로 바뀐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명칭유래] <동해신묘>는 동해 용왕신을 모신 사당이라는 뜻이다.
[건립경위] <동해신묘>의 건립 연대를 고려 공민왕 19년 즉 1370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허균이 쓴 「중수 동해용왕비문」에 의하면 경위가 밝혀져 있는데 즉 “강릉부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하여 비석을 세워 후대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내게 글을 청하므로 나는, 우리나라 사해 용왕을 위해 사당을 세우되 지리의 중앙이 되는 곳을 가려 설치하였는데 강릉은 동해의 한 가운데이고, 정동(正東)이며 더욱이 고을 한 가운데가 상개(爽塏)한 곳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정동이라 이름 불렀으며, 신라 때부터 이곳에서 용왕께 제사지냈다.”고 한 내용으로 미루어 동해 정동에서 제사를 올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위치] <동해신묘>는 본래 정동진에 있었으나 현재는 양양 조산리에 이전되어 있다.
[형태] 고려 공민왕 19년(1370) 강릉부 정동촌에 세워진 동해신묘는 조선조 성종 21년(1490)에서 중종 31(1536) 무렵에는 이미 양양으로 옮겨졌다. 또한 동해신묘의 신위도 허균 당시에는 동해 용왕으로 봉안되었다. 그것은 정동진에서 신라시대부터 동해 용왕을 신으로 모신 제의가 행해졌으므로 이곳에 동해신묘를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조 영조(1724~1776) 연간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양양부」의 “동해묘는 정전(正殿) 6칸, 신문(神門) 3칸, 전사청(奠祀廳) 2칸, 동서재(東西齋) 각 2칸, 백천문(百川門) 1칸으로 그 규모를 기록하고 매년 정초 세수(歲首)에 별제(別祭)를 거행하고, 중춘과 중추에는 상제(常祭)를 올린다. 제사에 쓰일 향축은 나라에서 보내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동진의 동해신묘도 이러한 규모로 유추되나 전하는 자료가 없다.
[금석문] 허균이 1605년에 쓴 「중수동해용왕비문」은 글만 남고 비석은 없어졌고 남공철(南公轍)에 의한 「동해신묘중수기사급명(東海神廟重修記事及銘)」(1800년)만이 양양 동해신묘에 있다.
[현황] 『양주지』에 의하면 동해신묘가 본래는 강릉에 있었는데 성종 21년 경술에 수군만호영(水軍萬戶營)을 강릉으로부터 대포성(大浦城)에 이전할 때에 양양 조산으로 같이 이건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현재 강릉 정동진 동해신묘가 있던 곳에서는 제사를 지내지 않고 양양 조산리 동해신묘 묘에서는 매년 정초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의의와 평가] <동해신묘>는 동해를 지키는 신에게 국가에서 중사의 격으로 제사를 올린 것으로 우리나라의 정동인 강릉 정동진에서 그 제사를 지냈다. 정동진이 국가적인 치제의 중심이었음을 알려주는 자료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장정룡, 『강원도민속연구(江原道民俗硏究)』(국학자료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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