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나 만의 택리지를 꿈꾸며,...
강원도 기행

#강원 영월 #장릉 #단종 #노산군 #엄흥도 #추익한 #영월 가볼만한 곳

by 포리시스 2010. 4. 18.

  단종은 조선의 제6대 임금이다. 1441년에 태어나서 1457년 10월 24일(세조 3년)에 영월에서 죽었다.

이름은 홍위. 아버지 문종과 어머니 현덕왕후 사이에 태어났고, 왕비는 정순왕후이며, 1448년(세종 30)에 왕세손에 책봉되고,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세자로 책봉되었다.

 

 

[강원 영월군.읍 영흥리 소재 사적 제196호인 장릉]

 

 

   단종의 죽음에 관한 배경은 이렇다. 문종은 자신이 병약하고 세자의 나이가 어리므로 황보 인, 김종서 등에게 세자가 즉위하게 되면 보필을 당부한다. 그리고 집현전 학사인 성산문, 박팽년, 신숙주 등에게도 좌우협찬을 부탁하는 유언을 내린다.

 

 

 

 

 

 

 

[장릉의 문인석과 석양 : 왕릉에는 석상을 2쌍 이상 배열하지만 추존왕릉(사후 왕으로 추존 된)에는 1쌍의 배열한다고 한다.] 

 

 

 

  1453년 단종을 보필하던 황보 인, 김종서 등이 수양대군에게 제거 당하자 수양대군은 군국의 모등 권력을 장악하게 되고 왕은 단지 이름뿐이 왕이 된다. 1455년 단종을 보필하는 중신을 제거하는데 앞장섰던 한명회, 권람 등이 강요하여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된다.

 

 

 

[ 정자각(배위청) : 한식날인 단종제향 때 제물을 올리는 곳으로 정자각 또는 배위청(拜位廳)이라 한다.]

 

 

 

   1456년 성산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유성원 등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모두 처형되고, 1457년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유배된다.

 

 

 

[신도와 왕도 : 좌측은 신도(신이 다니는 길) 우측은 왕도이다. 신도로 사람들이 다닐 수 없다고 한다. 길 뒷쪽으로 영천이 보인다. 정조때 박팽년의 후손인 영월 부사 박기정이 수축한 우물로, 단종제를 올리는 한식때 제정(祭井)으로 사용했다. 일설에 의하면 보통때는 조금씩 샘이 솟았으나 매년 한식날 제사 지낼 때에는 물이 많이 솟아 올랐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 

 

 

   그 후 수양대군의 동생이며 노산군의 숙부인 금성대군이 다시 경상도의 순흥에서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사사되자, 노산군에서 다시 강등되어 서인이 되었으며 끈질기게 자살을 강요당하여 마침내 1457년(세조 3) 금부도사 왕방연이 가지고 온 사약을 마시고 죽는다.

 

 

[배식단사 : 정조 15년(1791)에 건립된 곳으로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받친 충신위(忠臣位) 32인, 조사위(朝士位) 198인, 환관군노위(宦官軍奴位) 28인, 여인위(女人位) 6인을 합하여 264인의 위패(位牌)를 모셔놓은 곳이다. 매년 한식날 단종제향후 제사를 지낸다.]

 

 

[수복실] 

 

   단종의 시신은 동강에 던져지게 되는데, 이때 영월에는 호장 엄흥도라는 분께서 모두들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시신을 거두려 하지 않았지만 그는 관까지 준비하여 암장을 한 뒤 가족들과 함께 몸을 숨겼다고 한다.

   현종 때 송시열의 건의로 그의 자손이 등용되고, 영조 때에는 그의 충의를 기리는 정문이 세워졌다. 뒤에 공조참판에 추증되고, 영월의 창절사에 배향되었다고 한다.

 

 

 

[정려각 : 정려각은 1726년(영조 2년)에 어명으로 세운 비각으로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정여문이다. 비석은 1833년(순조 33년)에 가필하여 같은 해에 또 다시 증축하였으며, 1876년 (고종 13년)에 고종이 증시하기를 '충의'라 하여 1879년 (고종 16년) 비석에 있는 것을 다시 고쳤다.] 

 

  단종의 영정은 원래 곤룡포를 입고 용상에 앉아 있는 형상이었으나, 200년이 흐르는 동안 형태가 훼손되어 불사르고 비슷한 모양을 그려 모셨다고 하는데 6.25전쟁때 재차 훼손되었고, 그 후 운보 김기창 화백이 한 때 한성부윤을 지낸 충신 추익한 선생이 백마를 탄 단종에게 머루를 진상하는 모습으로 그려 영모전에 모셔져 있다. 영모전의 현판은 우남 이승만 대통령의 글씨이다.

 

 

 

[단종의 영정 : 충신 추익한이 머루를 진상하는 모습의 단종 영정으로 장릉 내 단종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는 모사품이다.]

 

 

[낙촌비각 : 단종의 묘인 장릉(莊陵, 사적 제196호) 경내에 정면·측면 1칸 규모의 작은 비각이 있는데, 그 안에 낙촌기적비(駱村紀績碑)가 보호되어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낙촌 박충원(朴忠元 1507~1581)이 영월군수로 재임할 때 단종의 묘를 찾아냈던 사연을 기록한 비석이다. 1974년 5월 박충원의 후손들이 건립하였으며, 비문은 유학자 성낙서(成樂緖 1905~1988)가 썼다.]  <안내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