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문학촌'을 둘러보다
호반의 도시 춘천에 가면 1930년대 애절한 삶을 살았던 '김유정'을 만날 수 있다. 그는 29세의 짧은 생을 마감할때까지 우리들에게 친숙한 여러편의 소설을 남긴다.
많이 알려진 작품으로는 봄.봄, 동백꽃, 따라지, 노다지,..... 등이 있지만, 생애 30여편의 작품들이 아마도 짧았던 그의 생을 더욱 애닯게 비추며 이름 석자를 빛내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경춘선 '김유정역'에서 하차하여 3분거리에 '김유정문학촌'의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남춘천역에서 내릴 경우 버스(1번, 67번)나 택시를 이용하면 되고 약 10여분가량 소요된다. 입구에서 약 200여 미터쯤에 되는 곳에 아기자기 꾸며 놓은 설래마을의 토담가옥들과 함께 김유정문학촌을 만나게 된다.
[김유정 : 1908. 1. 11. ~ 1937. 3. 29]
30년대 한국소설의 축복
김유정은 1908년 1월 11일(음), 아버지 청풍 김씨 김춘식, 어머니 청송 심씨의 2남 6녀 중 일곱째로 춘천시 신동면 증리(실레마을)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이던 1914년 가족이 모두 서울 종로구 운니동(진골)으로 이사했다. 일곱 살에 어머니를, 아홉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재동공리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휘문고보에 검정으로 입학, 안회남과 같은 반이 돼 친하게 지냈다. 1929년 휘문고보를 졸업, 길거리에서 만난 박록주(1905~1979)에게 끊임없이 구애의 편지를 보냈지만 외짝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30년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했으나 출석일수가 적어 제적되자 실레마을로 내려와 조명희, 조카 김영수와 함께 야학을 하고, 농우회를 조직하는 등 농촌계몽운동에 힘을 쏟았다.
1933년 상경하여 안회남의 주선으로 『제1선』에 「산골 나그네」를 발표,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낙비」당선, 조선중앙일보에「금 따는 콩밭」, 「봄.봄」, 「안해」등을 발표했다.
1936년엔 박용철의 누이동생 박봉자를 짝사랑하여 31통의 혈서를 썼지만 회신은 받지 못했다. 사랑의 좌절, 극심한 병마 속에서도 「동백꽃」, 「가을」, 「정조」등 10여 편의 소설을 발표했다.
1937년 3월 29일, 안회남 앞으로 보낸 편지 「필승 前」(3. 18)을 끝으로 악화된 폐결핵, 치질을 고치지 못한 채 경기도 광주에 있는 누님 집에서 생을 마감했다. 1938년 단편집 『동백꽃』이 삼문사에서 발간되었다.
[김유정 단편집 《동백꽃》]
1938년(소화 13년) 12월에 조선문인전집 7권으로 삼문사 전집간행부에서 발간된 김유정의 단편집. 표제작 「동백꽃」을 비롯해 21편의 소설이 수록돼 있다.
사후 간행되었기 때문에 '작가의 말'이 없다. 작가의 유고 및 유품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이 지니는 가치는 높다.
작가의 이십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사진과 함께 필적을 확인할 수 있는 「소낙비」의 원고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표지만 바뀌어 세창서관, 왕문사, 장문사에서 같은 이름으로 간행되었다.
[사계절로 읽는 김유정 소설]
[봄]
그전날 왜 내가 사실 새고개 맞은 봉우리 화전밭을 혼자 갈고 있지 않았느냐. 밭 가생이로 돌 적마다 야릇한 꽃내가 물컥물컥 코를 찌르고 머리 위에서 벌들은 가끔 붕, 붕 소리를 친다. 바위틈에서 샘물 소리밖에 안 들리는 산골짜기니까 맑은 하늘의 봄볕은 이불 속같이 따스하고 꼭 꿈꾸는 것 같다. <봄.봄>에서,..
[여름]
음산한 검은 구름이 하늘에 뭉게뭉게 모여드는 것이 금시라도 비 한 줄기 할 듯하면서도 여전히 짓궂은 햇발은 겹겹 산 속에 묻힌 외진 마을을 통째로 자실 듯이 달구고 있었다.(중략) 밖에서는 모진 빗방울이 배춧잎에 부닥치는 소리, 바람에 나무 떠는 소리가 요란하다. 가끔 양철통을 내려 굴리는 듯 거푸진 천둥소리가 방고래를 울리며 날은 점점 침침하였다. <소낙비>에서
[가을]
산골에, 가을은 무르익었다. 아람드리 노송은 삑삑이 늘어박혔다. 무거운 송낙을 머리에 쓰고 건들건들, 새새이 끼인 도토리, 벚, 졸배, 갈잎들은 울긋불긋. 잔디를 적시며 맑은 샘이 쫄쫄 거린다.
산토끼 두 놈은 한가로이 마주앉아 그 물을 할짝거리고. 이따금 정신이 나는 듯 가랑잎은 부수수 하고 떨린다. 산산한 산들바람, 귀여운 들국화는 그 품에 새뜩새뜩 넘논다. <만무방>에서
[겨울]
방은 우풍이 몹시도 세었다. 주인이 그악스러워 구들에 불도 변변히 안 지핀 모양이다. 까칠한 공석 자리에 등을 붙이고 사시나물 떨리듯 덜덜 대구 떨었다. 한구석에 쓸어박혔던 아이가 별안간 잠이 깨었다. 칭얼거리며 사이를 파고들려는 걸 어미가 야간을 치니 도로 제자리에 가서 찍소리 없이 누웠다. <솥>에서
[김유정의 유품은 어디로 갔을까?]
그렇게 해서 유정은 죽은 후에 무덤도 없다. 그를 생각하고 어디다 머리를 숙일 수도 없으며, 그를 위하여 한묶음 향기로운 꽃을 사더라도 그것을 어디다 놓을지 모른다.
그의 육체적인 것이 세상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그가 일찍이 어느 여성에게 보내었던 한 장 혈서이다. 이것도 지금 내가 보관하여 가지고 있는데 언제 이것이나 깨끗한 땅에다 파묻어 주고, 그것을 - 유정지묘라고 하겠다.(중략)
유정이 남기고 간 것, 많은 유고와 연애편지 쓰다 둔 것과 일기, 사진, 책 이렇ㄴ 것들을 전부 내가 맡아서 보관하여 가지고 있는데, 한 가지 없어진 것이 있다. 그것은 다만 한 자 있던 그의 어머님 사진이다.
어디로 갔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기생사진까지 다른 것은 전부 내 손에 있는데, 이것만은 당최 보이지 않는다. <안회남의 「겸허-김유정전」 (문장, 1939. 10)에서,.... ※ 김유정과 절친했던 친구 안회남은 김유정 사후 유가족에게서 유품을 받아 보관하던 중, 1947년을 전후해 월북했다.
[김유정의 동백꽃은 동백꽃이 아니다?]
강원도 사람들은 생강나무 꽃을 동백꽃 혹은 산동백이라고 불러왔다. <정선아리랑>의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 싸릿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의 올동박이 바로 생강나무 노란 꽃이나 까만 열매를 의미한다.
「소양강 처녀」 (68년)의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에 나오는 동백꽃도 생강나무 꽃이다. 김유정 소설 [동백꽃]의 동백꽃은 남쪽 해안에 피는 상록교목의 붉은 동백꽃이 아닌 이 생강나무의 꽃이다.
김유정은 소설에서, 붉은 동백꽃과 구별이라도 하려는 듯이 '노란 동백꽃'이라 표현하고 있다. 당시 강원도의 동백꽃이 생강나무라는 것을 알 턱이 없었을 것인데도 '알싸한 그리고 향깃한 그 내음새' 라고 꽃 냄새를 절묘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김유정 기념전시관 속으로]
김유정의 생애 / 김유정의 연인들 / 현재까지 발간된 김유정의 책들 / 사진으로 보는 김유정문학촌의 어제와 오늘 / 박록주의 판소리음반과 축음기 / 김유정을 다룬 연구 저서와 논문 / 일제시대에 나온 담배 '희연' / 「봄.봄」 디오라마 / 작품이 발표된 잡지 / 동시대 작가들의 사진과 약력, 저서들 / 김유정의 마지막의 편지 「필승전」, 홍보영상물이 있다.
[김유정의 작품목록]
「산골 나그네」「총각과 맹꽁이」「소낙비」「노다지」「금 따는 콩밭」「금」「떡」「만무방」「산골」「솥」「봄.봄」「안해」「심청」「봄과 따라지」「가을」「두꺼비」「봄밤」「이런 음악회」「동백꽃」「야맹」「옥토끼」「생이 반여」「정조」「슬픈 이야기」「따라지」「땡볕」「연기」「정분」「두포전」「형」「애기」 - 발표 연대순 -
[사철 들꽃 축제]
김유정문학촌의 뜰에는 철마다 꽃들이 피어난다. 겨울을 앞두고 묻어두었던 감자(봄 감자)를 꺼낼즈음 「동백꽃」의 생강나무 노란 꽃을 시작으로 하여 발밑에 앙증맞은 꽃들이 피어난다.
양지꽃, 제비꽃, 할미꽃,.... 김유정문학제를 치르고 얼마 안 있어 5월, 이 꽃들에게 바톤을 넘겨받은 붓꽃, 꿀풀 꽃, 금낭화, 매발톱이 피기 시작한다. 어느덧 초여름, 흰 초롱꽃과 보랏빛 초롱꽃, 그리고 노란 기린초, 이제 여간해선 볼 수 없는 꽃들이다.
본격적인 여름이 됐다 싶으면 막 나리꽃, 원추리꽃이 핀다. 나 여기 있음을 아리려는 듯 뜰의 후미진 곳에서 피기 시작하는 벌개미취,...
이제 가을, 들국화의 계절, 산국, 감국, 개미취, 구절초의 세계가 펼쳐진다. 가을걷이를 하는 실레의 들을 바라보면서 피는 이 꼿들. <삶의 체험> 축제가 끝나면 곧 겨울의 문턱에 접어든다.
삭과가 터지면서 나온 목화의 솜을 닮은 눈꽃들이 나무마다 피어난다. 사철 내내 꽃들이 축제를 벌이는 곳. 김유정문학촌, 김유정문학촌에서는 김유정도, 들꽃들도 만날 수 있다. 보기만 해도 우리를 옛날 시골의 들길이나 산자락으로 데려가는 들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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