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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기행

#일관헌 #근민헌 #관청할망 #안할망

by 포리시스 2021. 5. 5.

'근민헌'은 객사의 서쪽에 있다. 언제 이 현판이 걸린 것인지 알 수 없다. 검색해 보니 '일관헌'이라고 확인된다. 

 

객사의 서쪽에 있는 현감의 집무실

조선시대의 정의현감이 정사를 보던 청사로 1899년 군수 강인호가 중수한 뒤에 불타버렸고 1903년 목사 홍종우가 일관헌으로 고쳐 편액하였다고 한다. 정면 4칸, 측면 2칸이고 좌.우 벽은 현무암 돌로 쌓았다.

 

근민헌 편액

근민헌의 뒤에 두 개의 비가 있다. 군수 채수강 청덕비(5년 동안 참한 정치를 펴서 호적을 보관하는 창고를 짖고, 향사를 다시 고쳐 모든 백성이 봄을 만난 듯 했다)와

 

군수 채수강 청덕비(좌)와 군수 강우진 불망비(우)

군수 강우진 불망비(변란을 대비하여 군수물자를 구입할 자본을 마련하였고, 호적을 정리할 종이를 비축하였으며, 천막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사용하도록 하였다)이다.

 

비의 뒤 모습

그 뒤로 관청할망(안할망)을 모신 전각이 있다. 안내문의 내용이다.

 

근민헌 뒤

관청할망은 정의 고을의 대표적인 무속신앙의 기도처로 고을의 관청 안에 있다하여 '관청할망' 혹은 '안할망'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관청할망 사당

예로부터 현의 관청인 일관헌 구내 서쪽의 크고 오래된 팽나무를 신목으로 하여 기왓장 위에 비녀. 구슬 등을 놓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후에 돌로 제단과 울타리를 쌓았다.

 

관청할망 사당 전경

1971년에 성읍리 사무소를 새로 지으면서 가깝게 닿게 되어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설치하게 되었으며 6.6 m2 가량의 나지막한 슬레이트 건물안에 시멘트 제단을 만들고 감실(사당 안에 신주를 모셔두는 장)을 만들어 <현해수호신지위>라는 위패를 모셔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곳으로 이용해 왔었다.

 

안할망신위를 안치하였다는 내용의 글

1991년 지금의 건물로 다시 고쳐 지었으며 위패를 <안할망신위>라고 바꾸어 모셨는데, 1996년 건물을 보수하면서 고증을 거쳐 제단 위에 감실을 마련 기왓장.비녀.옥구슬을 봉안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