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장>
"잃은 소 없건마는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을씨 분명타 하면
찾은들 지닐소냐.
차라리 찾지 말면
또 잃지나 않으리라."
<신불교> 제9집, 1937년 12호
서울 성북구 성북로 29길 24에 있는 심우장은 사적 제 550호 이다.
이 집은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자 <<님의 침묵>>의 시인인 만해 한용운(1879~1944)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살았던 곳이다.
동쪽으로 난 대문으로 들어가면 북쪽으로 향한 기와집인 심우장과 관리동 그리고 만해가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 등이 있다.
심우장은 전체 규모가 5칸으로,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온돌방, 오른쪽에 부엌이 있다.
부엌 뒤쪽에는 식사 준비를 하는 찬마루방이 있다.
한용운의 서재였던 온돌방에는 <심우장>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 이름은 깨우침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불교 설화에서 따온 것이다.
심우장이 있는 성북동 일대는 1930년대 서울이 확장되면서 주거지로 개발되었는데,
이 집은 당시의 여느 집과는 다르게 검소하고 소박한 외향을 보여 준다.
한용운은 조선 불교를 개혁하려고 했던 승려이자 조국의 독립에 힘쓴 독립운동가이며 근대 문학에 큰 업적을 남긴 시인이었다.
한용운이 만년을 보낸 심우장은 그의 이같은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역사 현장으로 1985년 7월 5일 서울시 지정문화재 기념물 제 7호로,
2019년 4월 8일 사적 제 550호로 승격하여 지정되었다.
<심우장과 김동삼>
일송 김동삼(1878~1937)은 만주 지방 항일 무장 투쟁의 지도자로서 대한독립선언과 민족유일당 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31년 하얼빈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겪다 1937년 4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만해 한용운이 그의 주검을 수습하여 심우장에서 5일장을 치러주었다.
일제의 엄중한 감시 속에 치러진 장례식에는 조헌영, 조지훈 부자도 참석하였다.
<오도송>
남아란 어디메나 고향인 것을
그 몇사람 나그네 근심 잦단 말을 일런는가
한마디 큰소리 질러 삼천 대천 세계 뒤흔드니
눈 속에 복사꽃 붉게 붉게 피네
만해 한용운은 39세가 되는 1917년 12월 3일 늦은 밤 백담사의 암자인 오세암에서 진리를 깨치고 <오도송>을 지었다.
<마저절위>
마저는 절구공이가 갈고 닳아서 바늘이 되었다는 뜻이며, 절위는 책을 묶은 가죽 끈이 닳아서 끊어져버렸다는 뜻이다. 쉬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으로 제자 효당 최범술에게 써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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