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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기행

#서울 성북구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 #정릉 #사적 제 208호

by 포리시스 2022. 9. 20.

<서울 정릉>

서울 정릉은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황후 강씨(? ~ 1396)의 능이다. 

 

매표소를 지나면 좌측 숲속에 재실이 있고, 그 앞 안내도를 지나면 홍살문이 나온다.

 

신덕황후는 태조의 경처(서울에서 결혼한 부인)로 있다가 조선 개국 후 현비로 책봉되었다. 방번, 방석 두 왕자와 경순공주를 낳았다.

 

수라간(좌), 정자각(중앙), 수복방(우) 그리고 비각(뒤)이 있다. 정자각의 뒤로 능침공간이다

 

정릉은 원래 한성부 황화방(지금의 중구 정동)에 있었으나, 태종대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정자각과 뒤의 정릉

 

그러나 능을 옮기면서 옛 정릉의 병풍석 등의 석물은 청계천 광통교 복구에 사용되었고, 왕후의 신주도 종묘에서 제외되는 등 수난을 당하였다.

 

수복방 - 능에서 화재나 부정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키는 수복이 근무하는 곳이다.

 

1669년(현종 10) 송시열 등의 건의로 종묘에 신주가 묘셔지고, 능도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조성되었다.

 

비각

 

혼유석(혼령이 노니는 곳이라는 뜻으로 '석상'이라고도 함) 앞의 장명등과 혼유석과의 받침돌인 둥근 고석만이 옛 것이고, 나머지는 현종 대에 새로 세워진 것이다.

 

신덕고황후정릉

 

<정릉 비각>

비각은 능 주인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나 표석을 세워둔 곳이다.

 

수라간 - 왕릉에 제향을 지낼 때 쯤 제사 음식을 간단히 데우는 등의 준비를 하는 곳이다.

 

정릉의 표석은 1899년(광무 3년)에 신덕왕후를 신덕고황후로 추존하고 1900년(광무 4년)에 옛 표석을 갈아서 만든 것이다.

 

정자각

 

<정릉 비문 역문>

순원현경 신덕고황후 강씨는 태조고황제의 두 번째 황후인데, 6월 14일에 탄생하여, 임신년(1392)에 조선을 개국하면서 현비로 책봉되었다.

 

매표소를 지나면 좌측 언덕으로 재실이 있다.

 

병자년(1396) 8월 13일에 승하하여 정축년(1397) 1월에 한성 황화방에 장사되었다가 태종 기축년(1409) 2월 23일에 양주 남사아리 경좌 언덕으로 이장하였다.

 

재실의 출입문

 

현종 기유년(1669)에 태묘에 부묘하고 순원현경의 휘호를 추가로 올렸고, 광무 3년(기해년) 11월에 고황후로 시호를 추존하였다.

 

재실의 행랑채가 작은 도서관으로 꾸며져 있다.

 

표석 전면과 음기를 삼가 써서 소자의 작은 정성을 표한다. 광무 4년(1900) 월 일 <비각 안내문>

 

재실 안쪽의 출입문

 

차량의 네비게이션에 의존하여 빼곡히 밀집된 주택 골목의 좁은 도로를 따라 어렵게 매표소를 찾았다. 경내를 산책하시는 분들이 제법 많다.

 

재실

 

신덕황후의 무덤이 홀대를 받아야만했던 원인,..... 아마도 사극 태종 이방원을 보신 분들은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태조 이성계는 신덕왕후의 소생인 8번째 왕자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자 방원의 불만은 극에 달하게 된다.

 

재실 공간

 

1차 왕자의 난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세자 책봉,.... 방원의 화가 신덕황후의 무덤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던 것인데,.....

 

재실 행랑채 공간에 마련된 작은 도서관

 

사적 제 208호로 지정된 이곳은 도심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주변 주민분들에게는 걸으며 사색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 아닐까 싶다.

 

재실의 행랑채 공간 - 작은 독서실

 

일천원의 입장료가 있다. 푸르름이 울긋불긋 바뀌는 계절이 되면 재실의 한옥과 어우러진 풍경이 참 아름다울것 같아 다시 한 번 다녀오고 싶다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