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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기행

#부산광역시 동래구 #부산 복천동 고분군 #사적 제273호 #영보단비

by 포리시스 2022. 8. 30.

부산 <복천동고분군>은 옛 동래읍의 주산인 마안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내린 낮은 구릉 위에 위치하고 있는 사적 제 273호이다.

 

복천동 고분군의 야외 박물관

 

6.25 전쟁 이후 복천동 고분군이 위치한 구릉에는 판잣집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는데 1969년 주택 개량공사 중 우연히 확인되어 긴급 조사가 이루어졌다.

 

고분군 둘레길

 

이후 수차례의 수습 및 시굴 조사와 8차에 걸친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2세기 전반부터 7세기 초에 해당하는 200여 기의 무덤을 확인하였다.

 

먹구름 자욱했던 날 하늘 아래 고분군

 

구릉의 정상부에는 주로 4~5세기에 속하는 딸린덧널(으뜸덧널에 딸려 있어 주로 껴묻을 거리를 넣어 두는 매장 시설)을 갖춘 대형의 덧널무덤과 구덩식 돌덧널무덤이 있다.

 

복천동 고분군 전경 - 고분군 내 검은색 네모는 발굴지역을 조경수로 표시한 것 같다. 가운데 둥근건물이 야외박물관이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 철기류, 장신구류 등 10,000여 점에 이르며 철제 유물이 많다.

 

53호 무덤

 

특히, 단일 유적으로는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수량의 철제 갑옷이 출토되어 가야의 우수한 철기 문화를 잘 보여준다.

 

무덤의 내부

 

주요 유물로는 복천동(동아대학교) 7호분 출토 도기 말머리장식 뿔잔(보물 제 598호), 10, 11호분 출토 금동관(보물 제 1922호), 21, 22호분 출토 청동칠두령(보물 제2019호),

 

54호 무덤 부장품들

 

38호분 출토 철제갑옷 일괄(보물 제2020호), 10, 11호분 출토 도기 거북장식 원통형 기대(그릇을 얹는 받침대) 및 단경호(보물 제 2059호) 등이 있다.

 

53호 무덤 부장품들

 

<복천동 고분군 53호 무덤>

5세기 중엽에 조영된 대형 구덩식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묘]으로, 으뜸덧널[주곽]과 딸린덧널[부곽]을 갖춘 형식이다.

 

53호 무덤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어 당시 무덤 구조와 유물 부장상태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으뜸덧널은 구덩이[묘광]를 파고 내부에 돌덧널[석곽]을 설치하였다.

 

복천동 고분군의 야외박물관을 나오며 바라본 박물관과 동래읍성 북문 풍경

 

딸린덧널은 구덩이를 파고 내부에 나무덧널[목곽]을 설치한 것으로 추정한다. 으뜸덧널의 바닥이 딸린덧널의 바닥보다 160cm 더 깊다.

 

고분군의 발굴 무덤을 조경수로 표식해 놓은 것 같다.

 

토기, 철기, 목걸이, 귀걸이, 숫돌, 칠제품 등 모두 31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토기가 가장 많다. 토기 종류는 굽다리접사, 항아리, 그릇받침, 등잔모양토기, 신발모양토기 등 다양하다.

 

복천동 고분군 사적 표지석과 안내문

 

그중 등잔모양토기와 신발모양토기는 당시 가야인의 사후세계 관념과 부장풍습을 이해하기 좋은 자료이다.

 

멀리 동래읍성 북문 성곽과 장영실 박물관

 

굽다리접시는 복천동고분군 특징을 계승한 것과 신라, 아라가야(함안지역)의 특징이 반영된 것 등 다양한 형태가 확인되었다. 철기는 고리자루 큰 칼, 쇠도끼, 쇠손칼, 덩이쇠, 미늘쇠 등이 출토되었다.

 

복천동 고분군 야외박물관 전경

 

철기는 대부분 으뜸덧널에 부장되었는데, 복천동고분군의 다른 무덤에 비해 수량이 적고 무기류 비중이 낮은 점에서 무덤 주인공을 여성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딸린 덧널의 빈 곳에서 순장자의 유골로 추정되는 인골 흔적이 확인되었다.

 

사적 제 273호 복천동 고분군

 

<영보단비> 1909년 중앙정부에서 호적대장을 거두어들이려 하자 주민들은 조상들의 성명이 적힌 호적대장이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것을 우려하여

 

영보단비 - 복천동 고분군에서 박물관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마안산 기슭에 동래지역 13개 면의 호적대장을 모아 불태우고 이 위에 단을 쌓아서 <永慕壇>이라 하였다.

 

일제에게 조상의 이름 조차 내어주기를 거부하였던 후손들의 마음이 1915년 이 비를 세웠다.

 

이후 매년 음력 4월 23일 이 단에 모여 동래기영회 주관으로 제사를 지내며 잔치를 벌였으며 1915년 일제침탈로부터 우리의 것을 지켜내려는 의지를 다짐하며 <永報壇>이라는 비석을 세웠다.

 

호적대장을 지키려했던 조상님들의 소중한 의지도 발굴 문화재와 더불어 우리문화의 맥을 오래도록 이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