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국립박물관은 충남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제1, 2, 3전시실과 박만식교수 기증실 그리고 야외, 특별전시실이 있다. 박물관 내부 자료가 없어 박물관 야외의 문화재만 올려본다.
당유인원기공비[唐劉仁願紀功碑]
보물 제21호이다.
[당유인원기공비각]
당나라 장수 유인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로 원래는 부소산에 있었다. 몸돌 앞.뒷면에 글을 새겼으나 심하게 마모되어 있어 알아보기 힘들다. 비몸돌과 머리돌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릿돌에는 여섯마리의 용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당유인원기공비]
비문에는 유인원이 당나라 고종에 의해 발탁된 이후의 활동상은 남아 있으나, 소정방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키고 백제 부흥운동을 평정한 그 이후의 행적은 비문이 지워져 알 수 없다. 비록 당나라 장수의 공적비이기는 하지만 비문에 의자왕과 태자 및 신하 700여명이 당나라로 압송된 사실과 부흥운동의 주요 내용, 폐허가 된 도성의 모습 등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상황을 아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현장 안내문>
동남리석탑[東南里石塔]
충청남도 지정문화재자료 제104호이다.
동남리석탑[東南里石塔]
부여 석목리 논절마을의 고려시대 절터에 있었던 것을 박물관으로 옮겨 세웠다.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몸돌을 올린 석탑이었으나, 아래층 기단의 일부만 남아 있고, 탑몸돌의 4층 몸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위층 기단의 맨 윗돌은 탑몸돌의 1층 몸돌을 괴어주는 부분 주위에 넓게 테두리를 두른 뒤 연꽃무늬를 장식하였다. 2층 몸돌부터는 갑자기 높이가 줄어들어 1층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쳐주던 받침돌만 남아 있다. 고려시대 후기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는 석탑이다. <현장 안내문>
보광사대보광선사비[普光寺大普光禪師碑]
보물 제107호이다.
[보광사대보광선사비각]
고려시대에 보광사를 크게 일으킨 원명국사의 공적을 새긴 비이다. 충남 부여군 성주산의 보광사터에 있던 것을 1963년 박물관으로 옮겼으며 비몸돌만 남아 있다. 비문의 앞면은 건립 당시인 고려 공민왕 7년(1358년)에, 뒷면은 조선 영조 26년(1750)에 새겼다.
[보광사대보광선사비]
비문에 의하면 원명국사는 19세에 등과하여 선원사에서 뜻을 펴오다가 공민왕 원년(1351) 입적하였다고 한다. 죽으면서 제자들에게 비나 탑을 세우지 않도록 당부하여 6년이 지나서야 비가 세워졌다. 이 비는 <보광사중창비>라고도 하며, 고려 후기의 간략화된 석비 양식과 불교사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현장 안내문>
[박물관 앞 교차로에 세워져 있는 '금동대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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