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산성
부소산성(扶蘇山城)은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4번지 일대의 산성으로 사적 제5호 이다.
이 산성(山城)은 백제 성왕(聖王) 16년(538) 공주(公州)에서 이 곳으로 옮겨 123년간 사용한 사비도성의 중심산성(中心山城)으로 이중의 성벽을 두른 백제식 산성(百濟式 山城)이다.
성내에는 당시 군창터(軍倉址)로 전해오는 곳에서 탄화(炭化)된 곡식이 나오고 있으며, 사자루, 반월루, 고란사, 궁녀사가 성내에 있고 유명한 낙화암이 있어 관광지로 이름나 있는 곳이다.
[성의 정문 사비문]
사비문의 매표소를 들어서게 되면 좌측으로 우물이 하나 있다. 그 옆으로는 건물터가 있는데, 이 곳은 옛 궁궐터로 추정하고 있으나 정확한 자료등이 없음인지 덩그러니 남아 쓸쓸함을 준다. 우측으로 단풍이 곱게 물든 길로 접어 들어 약간의 언덕을 오르면서 붉은 단풍나무 아래에서 가족사진 한 컷하고 몇 발자욱 내 딛으니 이내 '삼충사'라는 사당이 보인다.
삼충사는 충남문화재자료 제115호 이다.
백제의 충신인 성충(? ~ 656), 흥수(? ~ ?), 계백(? ~ 660)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957년에 세운 사당이다. 성충은 백제 의자왕때 좌평으로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다가 투옥되어 식음을 전폐하고 죽은 충신이다. 흥수는 나.당연합군이 공격해오자 탄현을 지키라고 의자왕에게 간곡하게 당부하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계백은 신라 김유신장군의 5만군이 황산벌로 쳐들어오자 5천결사대로 싸우다가 황산벌에서 장렬히 죽은 장군이다.
[삼충사중건사적비]
삼충사의 정문인 의열문을 들어서면 잘 가꾸어진 잔디의 좌측편에 '삼충사중건사적비'가 있다.
[삼충사의 두번째 문 충의문]
충의문의 앞에 다다르자 사당쪽에서 아이들의 계속되는 질문과 역사학교 선생님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아이들의 부모와 역사학교 선생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삼충사(三忠祠) 전경]
경내는 사뭇 엄숙한 분위기여야 하지만, 재잘거리며 질문을 하는 무리의 아이들이 기특하다. 조금의 시끄러움은 조상님들이 이해해 주시리라,...
[영일루(迎日樓)]
영일루는 성내 동쪽에 있는 누각으로 문화재자료 제101호 이다.
부소산의 동쪽 산봉우리를 말하는데 원래 이 곳에는 '영일대'가 있어서 계룡산의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던 곳이라고 전한다. 1964년 5월 홍산에 있던 조선시대의 관아문을 옮겨 세우면서 이름을 영일루라 하였다.
기단은 정갈하게 다듬은 장대석을 1단으로 쌓고 주춧돌은 키가 큰 8각 장초석을 썼다. 기둥은 모두 원기둥으로 하고, 기둥위의 공포는 화려한 다포식으로 짜 올렸다. 아래층의 기둥이 특히 높아서 이 때문에 전체적으로 건물 폭에 비해 키가 큰 건물이 되었다.
영일루에서 좌측의 완만한 길을 오르니 넓은 '터'가 나온다. 안내문을 보니 '군창지'의 내력이 기록되어 있다.
[군창지(軍倉址)]
군창지는 부소산성 동남쪽에 있는 창고터로 문화재자료 제109호 이다.
발굴조사 결과 백제 때 세워진 창고터를 비롯하여 조선시대에 지어진 창고터까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평탄한 대지위에 마당을 가운데 두고 건물을 'ㅁ'자 모양으로 배치하였다.
동쪽과 서쪽 건물은 정면 10칸 측면 3칸이고, 북쪽 건물은 정면 18칸, 측면 3칸의 긴 평면으로 되어 있다. 남쪽 건물은 훼손이 심하여 확실치는 않으나, 서쪽에 치우쳐 안마당으로 통하는 대문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백제때의 4각형 및 원형의 주춧돌과 조선시대의 분청사기 및 백자조각이 출토되었다. 불에 탄 곡식은 조선시대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이므로 곡물을 저장하는 창고나 유사시에 필요한 피난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산 정상에 세워둔 '부소산성' 안내문]
정상 부분에 이르니 유리벽으로 만들어진 건물이 보인다. '수혈주거지'가 발굴되어 그 터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다.
[수혈주거지 내부]
이 유구는 1980년 발굴조사에서 노출된 3개소의 움집터 중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이다.
지표 아래 풍화암층을 깊이 70~90 정도 깎아 내려가 방 바닥을 이루었는데, 평면은 네모꼴로 한 변의 길이가 약 4이다. 남쪽변 중앙에는 출입계단이 있고 그 양쪽에 기둥구멍이 있어 출입시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절터의 가운데에는 기둥을 세웠던 4개의 구멍이 바닥에 네모꼴로 위치하여 있다. 또 부뚜막을 겸한 외골의 구들이 동쪽벽을 따라 시설되었는데 그 남쪽 끝에서는 구들골의 옆 방향에서 불을 지폈던 아궁이가 있고, 북쪽은 집 밖으로 굴뚝이 시설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또 방의 서북쪽에 'ㄱ'자형 얕은 구덩이가 파여 있는데, 그 위에 목재를 걸치고 짚 등을 깔아 침상으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움집자리 남쪽으로 좀 떨어진 비탈아래에 저장구멍과 목책을 세웠던 유구가 발견되었다.
이 움집자리는 아궁이 바닥에서 출토된 백제토기 뚜껑과 집 주위에서 출토된 무구류의 유물 등으로 보아 5-6세기 백제 병영의 집자리로 추정된다. 1991년 이 유구의 전시를 위하여 원래의 유구위에 전시관을 세우고 그 옆에는 추정 복원한 모형의 움집을 세웠다.
수혈주거지에서 서남쪽으로 이르는 곳에 '반월루'가 있다. 누각에 오르니 부여시가지가 한 눈에 쏘옥~ . 우측으로 백마강의 모습과 멀리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 온다.
[반월루]
'반월루'에 관한 기록이나 안내문이 없어 전하지 못해 아쉽다. 잠시 부소산성 둘러보기 1부를 마치고, 산성의 서쪽과 북쪽의 이야기 하고자 한다.
'충청도 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북 괴산(1) - 마애불좌상 (0) | 2012.07.14 |
---|---|
충남 공주(1) - 송산리고분군 (0) | 2010.09.01 |
충남 부여(3) - 부소산성 (0) | 2010.04.30 |
충남 부여(1) - 부여국립박물관 (0) | 2010.04.29 |
충남 부여(1) - 능산리고분군 (0) | 2010.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