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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기행

서피랑 이야기

by 포리시스 2026. 6. 2.

[서피랑 이야기]

통제영 세병관에서 강구안을 내려다보며 우측에 위치한 언덕이 서피랑이다. 동쪽의 동피랑과 뒷산 여황산(북피랑)으로 연결되는 성곽이 이어지는 곳이다.

 

서피랑 오르는 계단에 설치된 의자

 

통영 ‘근대역사길’의 <초정 김상옥 거리>를 걸었다. 김상옥(1920~2004)은 일제강점기 마산에서 활동한 시인이다. 호는 초정. 시인 김상화의 동생이다.

 

봉선화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하여 1939년 김용호, 함윤수 등과 함께 「맥」동인으로 활동하다가 시조 「봉선화」를 『분문장』에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하였다.

 

초정 선생님이 살았던 곳

 

194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낙엽」으로 등단하여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하였다. 항일운동에 관계하여 몇 차례 투옥된 적이 있다.

 

안내문과 조형물

 

해방된 후 부산, 마산, 삼천포 등지에서 교원 생활을 했다. 1956년부터는 마산 고등학교에서 재직하였다. 이어 부산 여자 고등학교, 경남 여자 고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였다. <디지털창원문화대전>

 

서피랑 이야기

 

[봉선화] - 김상옥

 

비 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99계단의 박경리 선생님

 

누님이 편지 모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서피랑으로 오른 99계단과 주변 풍경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 주던

하얀 손 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 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노라

 

통영 소설가 박경리

 

[명정골의 세 공주 거리]

 

새터시장 ~ 충렬사 ~ 서문고개에 이르는 거리를 말하며, 옛날부터 명정골에 공주의 탄생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서피랑 등대

 

이곳에서 첫 번째 공주(박경리 선생)와 두 번째 공주(윤보선 대통령의 부인 공덕귀 여사)가 태어났으며, 옛 충무시청 터 앞에는 언젠가는 세 번째 공주가 태어날 것을 기다리고 있는 서피랑 왕자 조형물과 

 

서포루

 

안녕, 아빠와 아들, 연인, 서피랑 이야기, 두 손 모아, 아이와 물고기, 동행 등 재미있는 인사 조형물 10점이 거리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안내문>

 

주택 사이 녹지대가 충렬사다

 

[서포루]

 

통영성의 서쪽에 있는 포루다. 동피랑과 마찬가지로 가파르고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나 절벽이 서쪽에 있다하여 서피랑으로 불렀다.

 

서피랑에서 내려다 보는 통영항 주변 풍경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통영의 강구안은 절경이다. 시가지의 높은 피랑(벼랑) 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에서 유래한 토박이 지명이며, 한자 지명으로는 「서산 西山」이라 칭했다.

 

서포루 현판

 

[통영 문화동 배수시설]

 

등록문화재 제 150호이며 1933년 건립한 이 시설물은 일제강점기에 이 지역 일대에 물을 공급하던 배수시설이다.

 

서포루

 

통영 시내가 잘 보이는 야트막한 야산 위에 있으며 육각형태의 건물에 돔형 지붕과 아치형 입구를 만들고, 석조를 돌출시켜 장식하였다. 근대 배수시설 건축 양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통영 문화동 배수시설

 

또한 이곳은 조선시대 뚝기(纛旗, 둑기)를 모셨던 뚝사당(纛祠, 둑사)이 있었으며, 일제강점기 초기 공설운동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서피랑에서 내려다 본 강구안 풍경과 멀리 남망산 중턱에 디피랑이다.

 

서피랑에서 한참 동안 강구안을 바라보았다.  수면위로 오가는 배들의 흔적이 없어 더욱 더 평온해 보이기만 하다. 마치 도심이 감싸안은 호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