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객사는 조선시대 거제부 소속 7개 진영중 하나였던 「장목진」의 관아 건물이다. 진해만 일대를 방어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이영남 장군도 이 곳에서 전략회의를 했던 곳으로 전한다. 건물에 둘러진 담장과 비석 6개가 전부이지만, 쓰러져가는 객사를 재건했던 많은 분들의 노력과 정성을 알 수 있다. 객사 대청마루에 걸려있던 상량문의 내용을 옮겨 본다. 혹여 한자 해석이 잘 못 되었다면 지적해 주심 좋겠다.
일찍이 壬辰倭患(임진왜환)의 機微(기미)가 있을 때 이곳에 別鎭(별진)을 設置(설치)하였고 亂後(난후)에 當分間(당분간) 荒廢(황폐)하였으나 다시 鎭營(진영)이 復舊(복구)되였으며 官衙(관아)가 整備(정비)되여 客舍建物(객사건물)도 時宜(시의)을 따라 마련됩니다
장목진 객사 안내문
舊上樑文(구상량문)에 乙卯移建設(을묘이건설)과 瓦當(와당)에 康熙五年康熙五十年銘等(강희오년강희오십년명등)이 보임은 이를 立證(입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現在(현재) 客舍建物(객사건물)은 乾隆五十年乙巳正祖九年(건륭오십년을사정조구년) 西紀 一七八五年正月二十日 申時(서기 일칠팔오년정월이십일 신시)에 이곳 巽坐乾向(손좌건향)으로 移建(이건)하였는데 當時(당시)의 主幹者行別將(주간자행별장) 禦侮將軍(어모장군) 李珍國(이진국)임도 舊上樑文(구상량문)에 傳(전)하여 알 수 있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