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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행

행주문화제의 성공과 시민의 안전을 기원하는, 행주서원 고유례(告由禮)

by 포리시스 2026. 6. 16.

[ 행주문화제의 성공과 시민의 안전을 기원하는, 고유례(告由禮) ]

 

행주서원에 걸리 플랭카드

 

38회 행주문화제에 즈음하여 612행주서원을 방문했다. 이 곳을 방문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고유례를 관람하기 위해서다.

 

제례를 도와주실 분들 소개

 

고유례(告由禮)까닭을 고한다는 뜻으로 개인이나 조정에서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사당 또는 종묘에 제사를 올리면서 까닭을 밝힌 데서 유래했다 한다.

 

제향의 주재자는 고양문화원장님(우)이다

 

언젠가 행주산성 충장사에서 고유례를 지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이 곳 서원에서 제례 문화를 관람하기는 처음이다.

 

고유문(축문) 전달

 

이 곳 행주서원의 기공사에는 권율 장군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서원의 강당 앞 - 고유문(축문)을 들고 이동하는 제관 행렬

 

기록을 보니 19982충장사에 있던 장군의 영정이 도난 되었단다.

 

고유문(축문)과 제관행렬

 

이후 2023년 권오창 화백이 그린 표준 영정이 모셔졌고, 2025228일 이곳 기공사로 교체 봉안하며 고유례를 지냈다는 내용이다.

 

기공사 앞 내삼문 앞 계단 - 초헌관은 고유문(축문) 보다 뒤에 따른다

 

장군의 영정은 갑옷을 입은 이전의 모습과 달리 관복을 입은 모습이다.

 

내삼문으로 들어서는 제관 행렬

 

문과 급제한 문신이라는 점 등이 이유였던 것 같다.

 

권율 장군의 영정이 봉안된 기공사

 

제례를 시작하기 전에 사회자님은 행주문화제의 성공기원과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고유례를 진행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고유문(축문)을 든 제관이 기공사의 문턱 앞에 머물러 있다.

 

<행주서원>은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왜군과 싸워 큰 공을 세운 권율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842(헌종 8)에 건립된 서원이다.

 

사당의 내부에 있던 또 다른 제관이 고유문(축문)을 건네 받는다

 

조선 후기에 헌종은 고양 서삼릉에 행차할 때마다 임진왜란 때 공적이 높은 권율 장군의 제향을 지낼 건물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겼다.

 

제관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이에 왕명을 내려 행주대첩이 일어났던 산성의 아래쪽 한강가에 사당을 짓게 하고 기공사라 하였다 한다.

 

제관들이 관세위 앞으로 이동하고 있다.

 

권율 장군은 1582(선조 15)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 때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다.

 

관세위 - 제향 때 제관이 손을 씻는 자리

 

1593(선조 26)에 전라도 병력을 인솔하여 행주산성에 주둔하던 중 왜군 3만 명과 싸워 24천 명을 사살하는 행주대첩 전과를 올려 그 공로로 도원수가 되었다.

 

고유례의 집례(의식을 집행하는 사람)

 

왜군이 철수한 선조 37년에 노환으로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가 세상을 떠났다.

 

초헌관을 제외한 제관들이 배례한다

 

죽은 후 선무공신 1등에 영의정의 벼슬을 받았고, 시호를 충장공이라 하였다.

 

제관들이 손을 씻고 있다.

 

예전에 서울사직단에서 사직대제를 관람하였던 기억이 있다.

 

제관들이 손을 씻고 있다

 

국왕이 직접 참여하는 국가행사로 어가행렬까지 연결지어 보면 규모면에서 굉장히 장대한 행사였다.

 

무슨 역할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곳 서원에서의 고유례 초헌관은 고양문화원장님이다.

 

기공사 내 제향공간

 

절차면에서 보면 사직대제와 그리 크게 다르지는 않을거라 여긴다.

 

관세위 앞 초헌관과 찬례

 

대화가 오가던 경내 분위기가 사뭇 정숙해졌다. 제례가 시작되었다.

 

초헌관을 기다리는 중이다

 

관리사 앞에는 고양문화원장님을 비롯하여 제례에 함께 해 주실 분들이 도열해 있다.

 

초헌관

 

한 분 한 분 호명되며 소개가 이어졌다.

 

초헌관이 잔을 올리고 있다

 

이어 관리사에 보관중인 고유문(축문)을 운반하는 예를 올린 후 행렬을 지어 기공사로 이동한다.

 

술 잔을 올리는 초헌관(고양문화원장님)

 

강당 앞을 지나고 뒷 쪽 기공사 앞 내삼문으로 행렬이 이어진다.

 

고유문의 독축 - 제관 이하 모든 분들이 부복한다.

 

행렬은 내삼문의 계단을 오른다.

 

배례하는 초헌관

 

고유문(축문)의 운송자는 삼문의 계단 가운데(신도) 문으로 향하고, 나머지 행렬은 우측의 문을 이용한다.

 

 

초헌관

 

고유문(축문)을 운송하시는 분은 내삼문의 가운데 문으로 들어서 기공사의 가운데 계단(신도)으로 오르고,

 

찬례(초헌관을 모시는 사람)와 초헌관

 

초헌관 이하 제례 행렬은 우측으로, 행사 참관인은 좌측으로 이동을 한다. 이때 기공사 계단을 오른 고유문(축문)은 기공사 내에서 기다리던 제관에게 전달된다.

 

찬례와 초헌관

 

기공사 좌측 계단 위에 위치한 사회자의 식순에 따라 고유례가 시작 된다. 초헌관을 제외한  제관들은 배례한다.

 

상을 물리는 제관들

 

우측에 도열한 초헌관을 제외한 제관들의 손씻는 의식이 거행되고, 각각 제관들은 제례의 위치로 이동한다.

 

음복의 잔을 건네는 제관

 

초헌관의 손씻는 의식이 거행되고, 이어 제단 앞으로 이동한다. 초헌관은 술을 한 잔 올리고, 이어 고유문(축문)이 독축된다.

 

음복하는 초헌관

 

고유문(축문)의 독축이 끝나자 초헌관은 배례를 마친 후, 처음 자리로 이동을 한다.

 

음복하는 초헌관

 

초헌관은 다시 기공사 문턱 앞으로 이동을 하여 제관들로부터 잔을 건네받아 음복을 한다. 

 

처음의 자리로 이동하는 초헌관

 

이어 제자리로 돌아가 배례한다.

 

배례하는 초헌관

 

초헌관은 고유문(축문)을 소지하기 위해 이동한다.

 

초헌관을 망료위로 안내하는 찬례

 

초헌관은 제관에게 고유문(축문)을 전달한다.

 

망료위 - 초헌관으로 부터 고유문(축문)을 건네받는 제관

 

고유문(축문)을 전달받은 제관들이 소지하기 위해 이동한다.

 

고유문(축문)을 소지하고 있는 제관

 

고유문(축문)이 다 타고나면 초헌관 이하 제관은 제자리로 이동을 한다.

 

고유문(축문)의 소지를 확인하고 있는 제관

 

초헌관(고양문화원장)을 제외한 모든 제관이 배례한다.

 

고유문(축문)의 소지를 마친 제관들

 

제관 한 명이 초헌관에게 나아가 예를 표하며 제례를 마친다.

 

초헌관 이하 제관들이 망료위에서 제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나름 신경을 많이 썼는데, 사회자가 구령하는 한 마디 한 마디를 정확하게 옮겨졌는지 모르겠다.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보통 음식을 익혀서 올리는 기제사와 달리 제수가 생식으로 올려져 있고,

 

자리로 이동하는 초헌관과 제관들

 

많은 음식이 차려지지 않아 제사상을 간소화하려는 노력의 결과로 보여진다. 

 

기공사 제향공간

 

무더운 날씨임에도 제례를 주관하고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 전하고 싶다.

 

기공사에서 퇴실하는 제관들

 

시대의 흐름 속에 편리함으로 인해 옛 문화가 많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아쉽다.

 

기공사에서 퇴실하는 제관들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해 자리에서 묵묵히 우리의 맥을 이어가는 모든 분들에게 또한 존경을 표하고 싶다.

 

모든 제관들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큰 마음 먹지 않으면 체험하기 힘든 유교의 문화, 제사의 문화를 이렇게 관람해 보았다.

 

초헌관을 제외한 제관들이 배례를 한다

 

제례 용어들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되지 못한 부분들이 많을거라 여긴다. 

 

초헌관에게 다가가는 찬례 - 모든 제례가 끝났다

 

혹여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 주시기를 바란다.

 

제례가 끝나고 초헌관(고양문화원장) 말씀

 

글을 통해 제례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작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충장공 권율 상

 

또한 권율 장군과 행주산성에 대한 지난 역사를 음미하는 시간이 되어도 참 좋겠다.

 

기공사

 

 

행주서원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