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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행

경기 고양(16) - 연산군시대금표비

by 포리시스 2011. 5. 14.

   연산군시대금표비(燕山君時代禁標碑)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10-2번지에 위치한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88호 이다.

 

   연산군때 세워진 이 비는 연산군의 유흥지인 고양에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기 위하여 세운 금표비로 무단으로 들어올 경우 처벌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연산군은 1494년 왕위에 오른 뒤 성균관 유생을 내쫓고, 선종(선종)의 본산인 흥천사(흥천사)도 마굿간으로 바꾸었으며, 한글의 사용을 엄금하는 등의 일을 저질렀다.

 

[연산군시대 금표비]

 

   이러한 일 때문에 결국 중종반정으로 임금자리에서 쫓겨나, 강화도 교동(교동)에 유배되었다가 그 해 세상을 떠났다.

 

[마을길 옆에 위치한 금표비와 안내문]

 

   이 금표비는 고양시 대자동에 있는 금천군 이변[태종의 7남(온령군)의 손자]의 묘역 안에서 발견되어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비의 크기는 높이 1.38m, 폭 0.54m, 두께 22.5cm이다. 이 비석은 금석문으로 희귀할 뿐만 아니라 문헌의 사실을 고증해주는 귀중한 예이다. <안내문>

 

[금표비 상층부위]

 

   비 앞면에는 [금표내범입자 논기훼제서율처참<禁標內犯入者 論棄毁制書律處斬>]이라고 새겨져 있다. 1504년(연산군 10) 고양군이 왕의 유흥지가 되었다가 1506년 중종반정으로 다시 고양군으로 복귀되었는데, 금표 구역은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파주시. 양주시. 포천시. 남양주시. 광주시. 구리시. 김포시 등이었다. <<연산군일기>>에는 1504~1506년에 이르는 금표의 내용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네이버백과>

 

[측면에서 본 금표비]

 

   국도변에서 마을길로 접어 들면서 100여미터 가량 진입을 하면서 길 우측에 위치한다. 자동차 네비에 <연산군금표비>에 대한 검색이 되지 대자동 산10-2번지에 대한 안내를 받아야 하는데, 네비에 너무 의존하다보면 쉬이 지나칠 수 있겠다. 목적지는 아직 진행형인데 커브길이라 속도를 줄이는 바람에 안내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금표에 대한 백성들의 저항이였는지 비의 상부가 많이 훼손되어 있고, 잡초가 무성한 가운데 알 수 없는 야생화가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