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도성 스탬프투어(1)
요즘 각 지역마다 둘레길이 많이 조성되어 있다. 서울에는 도성의 성곽을 따라 역사체험을 할 수 있는 <서울한양도성스탬프투어>라는 둘레길이 있다. 사대문의 스탬프를 모두 찍으면 완주기념 매달을 받을 수 있단다. 도성은 한 나라의 도읍 외곽으로 쌓은 성을 말하는데, 도성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울집 아이들과 함께 걸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지만, 급한 마음에 나홀로 떠나 본다.
[와룡공원, 말바위쉼터 가는길]
이른 아침부터 속도를 높여 꾸준히 걷는다면 아마도 빠듯하게 한나절이면 족하겠지만,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산책을 한다는 마음으로 걷는다며 아마도 네댓번은 구간을 나누어 걸어야 할 것 같다. 처음 서울에 왔을때에는 낙산 인근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살았다. 물론 지금은 헐려 그 자취를 찾을 수도 없지만,... 한여름 밤에는 친구와 성벽에 올라 소주 한 잔 하면서 시내 구경을 많이 했다.
[성곽 밖의 오솔길]
구간구간 평지의 성곽이 많이 헐리게 된 것은 1899년부터 일제강점기에 전차가 신설되면서라고 한다. 그 사이 사이로 빼곡허니 주택과 빌딩이 진을 치고, 많은 차량의 주 도로가 횡하니 지나가게 된 것 같다. 일부 구간에서 정갈하게 다듬어진 석축의 성곽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는듯 싶어 나름 뿌듯하게 여겨진다. 인왕산 성곽을 내려오다가 만난 어느 어르신의 말씀에 의하면 복원도 좋지만, 성곽을 너무 높이 쌓아 조망권을 해치고 있다는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런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복원의 의미가 더 크다 싶다.
[말바위쉼터 - 전망이 좋은 곳]
한양 도성에는 4대문(동-흥인문, 서-돈의문, 남-숭례문, 북-숙정문)과 4소문(북동-홍화문, 남동-광희문, 남서-소덕문, 북서-창의문)이 있지만, 돈의문과 소덕문은 전차의 신설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겠다. 성곽은 내사산을 이어주고 있는데, 내사산은 성곽의 사방을 이어 위치한 네 개의 산(동-낙산, 서-인왕산, 남-목멱산(남산), 북-백악산) 이다.
[전망대에서 본 성북동]
1394년 태조는 한양으로 천도한 뒤 제일 먼저 종묘.사직.궁궐을 짓기 시작하고, 이듬해 9월 정도전을 시켜 내사산을 잇는 약 19km에 이르는 성터를 확정하여 이듬해 1월에 성을 쌓는 일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공사는 조직적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600척(약 180m)을 한 단위로 해서 전체를 97구간으로 나누어 일을 분담시켰고, 각 구간마다 천자문의 첫 글자인 '천(天)' 자에서 시작해 97번째 글자인 '조(弔)'자까지 순서대로 자호를 매겨 구별하였다고 한다.
[성곽 안쪽길]
성벽을 따라 가면서 그 글자들을 확인해 보려 하였지만, 내 눈에는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다만, 창의문을 지나 인왕산 성벽을 오르는 길에서 여러글자가 새겨진 것을 보기는 했지만 그와 연관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한양 도성은 1396년 1월 9일부터 시작해서 49일 만에 대부분 마무리 되었다고 하고, 동원된 인원이 무려 11만8천여명에 달했다고 하니 엄청나게 짧은 시간에 도성이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겠다. 당시 사상자도 많았다고 한다.
[말바위 안내소]
처음 도성을 축조할 때에는 평탄한 곳에는 토성을 쌓았고 험하고 높은 지역에는 석성을 쌓았다고 하나 그 후 무리한 겨울철의 공사 등으로 장마철이 지나자 성벽이 무너지는 등 피해가 속출하였는데, 8월 6일부터 9월 24일까지 2차 공사를 시작하여 사대문과 사소문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이때 축조된 도성의 골격이 조선말기까지 이어지고, 세종과 숙종 때 중요한 개축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성곽 사이로 본 삼청각 - 전통문화예술 복합공간]
이 성곽길의 구간중 다소 어려운 곳이 홍화문(북동)에서 돈의문(서대문)의 구간일 거다. 북악산(342m)과 인왕산(338m)의 두 산을 연장해서 넘어야 하기 때문이고, 숙정문에서 창의문 사이의 구간은 통제구간이기 때문에 출입시간과 임시 출입증도 발급 받아야 하는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북대문 - 숙정문]
성곽길 여행 첫 날이다. 며칠을 이어 꾸준하게 성곽길을 걸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막무가내로 난 성대 후문쪽에 위치한 <와룡공원>으로 올랐다. 이곳에서 출발하여 독립문공원으로 내려올 때까지 약 4시간 반가량 소요되었던 것 같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특별한 것이 있다면 예전에 자전거 국토종주를 할 때와 같이 구간마다 스탬프를 받는것이였는데, 숙정문(말바위쉼터)에서 그만 깜빡깜빡~~~~ ㅠㅠ
[숙정문 - 산중이라 그런지 음습하다 싶다]
기온이 많이도 내려가 있었다. 잘려진 성곽 밖으로의 진입로를 나서니 도심 성곽의 숲길이 시작된다. 시원한 여름철이라면 아마도 매미소리를 들으면서 성곽길을 걷는 맛도 참 좋을거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구간구간 성벽을 쌓아놓은 돌들의 색상이 다소 틀려보이기는 하지만 창의문에 도달할 때까지는 대체로 양호하게 보존된 성벽이라 여겨진다.
[숙정문 - 성 안쪽]
성곽의 축조시기에 관한 구별법이 안내문에 게재되어 있다. 태조 5년(1396)의 성벽은 큰 메주만한 자연석을 다듬어 쌓았고, 세종 4년(1422)의 성벽은 장방형 돌을 기본으로 하면서 사이사이에 잔돌을 섞어 쌓았으며, 숙종 30년(1704)의 성벽은 가로 세로 2자 석재를 정사각형에 가깝게 규격화하여 튼튼하게 쌓았는데, 장정 4명이 들 수 있는 무게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곽길을 둘러보며 시대별 축조된 방식을 쉬이 구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겠다.
[성벽 축조시기 구별 - 가운데는 태조 때 성벽]
이번 성곽길에서 가장 가 보고 싶었던 곳이 북대문인 <숙정문>이다. 숙정문은 오랜시간 시민에 개방되지 않았다. 돈의문을 제외한다면 사대문을 다 보는셈이기에 큰 의미를 두었다. 말바위쉼터의 이정표가 있기는 하지만 어느 바위를 지칭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부근에 성곽 안으로 넘나드는 철골구조물이 시설되어 있는데, 주변 경관이 잘 조망되는 곳이라 전망대의 역할도 해 준다.
[후기 숙종 때 성벽]
성곽의 안쪽길을 따라 가면 <말바위안내소>다. 이곳에서부터는 출입표를 교부 받아야 한다. 사진 촬영 등이 극히 제한된 구역이라 내심 아쉬우면서도 조심스레 주변 성곽을 기준해서 담으며 걸었다. 솔나무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성곽길에는 차가운 바람이지만 제법 솔향기가 전해지는 듯 싶다. 잠시 걸으니 도성의 북문인 숙정문이 나온다. 등산객 때문인지 문은 개방되어 있다.
[1.21사태 소나무]
안내문이다. <숙정문>은 서울 성곽의 북대문으로 사적 제10호 이다. 남대문인 숭례문(예를 숭상한다)과 대비하여 '엄숙하게 다스린다' 는 뜻으로 지어졌다. 태조 5년(1396) 처음 서울 성곽을 쌓을 때는 지금 위치보다 약간 서쪽에 있었으나 연산군 10년(1504)에 성곽을 보수하면서 옮겨졌다.
[북악산 정상]
처음에 지을때에는 <숙청문>이라 하였으나 16세기 이르러 이름이 바뀌었다. 숙정문은 본래 사람의 출입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서울 성곽 동서남북에 4대문의 격식을 갖추고, 비상시 활용할 목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평소에는 굳게 닫아두어 숙정문을 통과하는 큰 길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북악산 정상의 표지석]
다만 가뭄이 심할 때에는 숙정문을 열고 남대문을 닫아두었다고 하는데, 이는 태종 16년(1416)에 기우절목(기우제 시행규칙)을 만들면서 북쪽은 음, 남쪽은 양이라는 음양의 원리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처럼 숙정문 지역은 풍수지리적으로 음기가 강한 곳이었기 때문에 조선 후기의 학자인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는 "정월 대보름 전에 민가의 부녀자들이 세 번 숙정문에 가서 놀면 그 해의 재액을 면할 수 있다" 는 풍속을 전하고 있다.
[표찰]
그러나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저서에서 "숙정문을 열어놓으면 장안 여자들이 음란해지므로 항시 문을 닫아두게 했다" 는 정반대의 속설을 전하고 있다. 숙정문은 오랫동안 문루가 없이 월단(무지개 모양의 석문)만 남아 있었는데 1976년 북악산 일대 서울성곽을 보수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현재에도 복구를 위함인지 문루에는 통금표시가 되어 있다.
[창의문 - 인조반정 때 능양군의 의군이 들어왔던 문]
해발 293m 지점의 표지석은 <청운대>이다. 북악산 정상이 아주 가까이 뵐 만큼 자리하고 있는 봉우리이지만, 능선에서 거의 성곽과 나란히 하고 있다. 부근에 <1.21사태 소나무> 가 있다. 1968. 1. 21. 북한 124군부대 김신조 등 31명이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침투하여 경찰과 교전중 북악산 인왕산 지역으로 도주하였고, 당시 우리 군경과 치열한 교전중에 이 소나무에 15발의 총탄 흔적이 남게되었고 이후 이와 같이 명명하였단다.
[창의문 안쪽 - 좌측으로 차량의 도로가 나 있다]
해발 342m의 북악산 정상이다. 표지석에는 <백악산>이라 새겨져 있는데, 같은 이름일거라 여겨본다. 시원스레 내려다 보이는 서울 도심의 시가지,... 그리고 뒷쪽으로 멀리 북한산 자락의 모습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대거 무리의 학생들과 등산객 그리고 연로하신 분들도 이길의 정상을 찾았다.
[고 최규식 경무관]
멀리 강원도 동해에서 오셨다는 연로하신 어르신,.... 어르신께서 일행들과 헤어졌다며 걱정을 하셨다. 창의문으로 내려오는 길을 가파랐다. 함께 내려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주 오래전에는 성북동에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디가 어디인지 전혀 모르겠다신다. 성곽길을 따라 독립문공원에서 합류하기로 했다고 하시는 것으로 보아 성곽길 투어에 나서심이 맞는것 같다.
[정종수 경사 순직비]
창의문에 도착하니 마침 한무리의 어르신 일행들이 점심 먹거리 준비를 위해 채비중이다. 모두들 상봉이라도 하신듯 여기저기서 웃음소리와 격려의 말씀들이 오간다. 참으로 구수하다 싶다. 짧은 동안 말벗이라도 되어드린 것이 좋았나보다. 무척이나 고맙다며 배낭에서 곶감 두개를 꺼내 주신다. 참 달고 맛있었다.
[윤동주 문학관]
<창의문>은 돈의문과 숙정문 사이 능선의 소문이지만 제법 대문처럼 규모가 크다. <자하문>이라고도 하며 경기도 양주 등 북쪽으로 통행을 하는 사람들은 숙정문이 닫혀 있어 이 문으로 통행을 하였다고 한다. <인조반정> 때 <능양군>을 비롯한 의군이 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반정을 성공시킨 유래가 있는 곳으로, 누문 다락에는 인조반정 때의 공신의 명단을 적은 게판이 있다고 하는데,... 센서가 감지될까 문루에 오르지는 못했다.
[창의문 - 인왕산으로 오르면서]
창의문 입구에는 <1.21사태 소나무>와 관련하여 당시 현장에서 무장공비와 교전중 전사한 고 최규식 경무관 동상과 고 정종수 경사의 순직비가 세워져 있다. 많은 이들이 오가면서 한번쯤을 고인들을 떠올려 생각해 봄직하다 여겨진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 공원내 야외 공연장]
창의문 서쪽능선으로 오르면 <인왕산>이다. 내사산 중 서쪽에 위치한 산이다. 두 산이 가까이 있음인지 양쪽 능선이 제법 가파르다. 동해에서 오신분들도 아마 이곳으로 오를것인데,.. 멀리서 도성 나들이를 하시고 제법 힘든 하루를 보내실것 같다. 서쪽 능선으로 오르는 길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조성되어 있다. 기념관과 작은 야외무대, 그리고 아담한 <서시정> 의 정자가 세워져 있다.
[서시정]
성곽에서 내려다 보이는 도성 안의 모습은 운무에 반사되는 햇님 탓인지 뿌옇게 보이지만, 반대로 뒷쪽 세검정 쪽으로 마을은 산속에 모아 놓은 아담한 마을 같다. 저 능선으로 북한산성과 교두보 역할을 했던 <탕춘대성>의 성곽길이 이어질 거다. 창의문 밖 세 개의 동이름 유래가 눈에 띈다. <부암동>은 세검정 길가에 있는 높이 2미터의 <부침바위>에서, <홍지동>은 탕춘대성의 관문인 홍지문에서, <신영동>은 영조 때 총융청을 신영동으로 이전하여 새로 영조되었다고 하는데서 각각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성벽에 새겨진 글 - 구획과 연관이 있는지?]
능선의 성곽을 오르면서 땀에 흠뻑젖은 듯 싶다. 이미 나와 반대의 방향으로 많은 분들이 지나쳤다. 앞으로 흰 얼음이 매달려 있는 바위를 올라야 인왕산의 정상이다. 정상의 바위를 빗겨 하얀 석축물이 눈에 띈다. 이 쪽의 구간이 제작년부터인가 복원하였던 곳일 터이다. 조망권을 많이 해친다며 이야기했던 곳,... 정상에는 표지석도 없다. 다만 커다란 바위 하나가 홀로 서 있다.
[멀리 북한산 능선과 부암동, 홍지동, 구기동,..]
다소 추운 날이라 여겨지지만 자크를 열어 놓으니 후덥찌근한 땀을 앗아가는지 바람이 참 시원하게 느껴진다. 한켠에 마련해 놓은 성벽위의 오래된 석축물이 기념으로 놓여진듯 싶다. 저 멀리 남쪽으로 보이는 타워까지는 언제갈까나?,... 내리막의 성곽길에는 따사로움의 햇살에 녹아듬인지 언땅이 질퍽하게 부풀어 올라 그림자 진 곳으로 걸었다.
[인왕산 정상]
이곳 성곽의 도심쪽 아래로 사직공원 보인다. 사직공원에는 <사직단>이 있다. 궁궐의 동쪽에는 <종묘>가 그리고 이곳 서쪽에는 <사직단>이 위치해 종묘제례 때 처럼 매년 초에 제례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알고 있다. 언젠가 행사때 가 보아야겠다. 도성의 성곽길을 걷는 사람들이 참 많음을 알았다. 며칠이 더 걸릴지는 모르지만, 꼭 완주 해 보고 싶다.
[인왕산의 성곽 - 최근 복원한 거라 깨끗하지만 옛스러움은,...]
다음 여행길의 시작은 와룡공원이나 사직공원에서 출발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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